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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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꼭 다 읽고 말아야지!’ 결심했던 도스토옙스키. 비교적 짧은 <가난한 사람들>,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거쳐 <죄와 벌>까진 완독했으나 뒷심 부족으로 <백치>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책장에 사두기만 했고, <악령>은 중도 하차하고 말았었다.

<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는 내가 얕게나마 더듬거리며 이해했던 그의 세계와 인물들을 생생하게 깨워내는 책이다. 거장의 굴곡진 삶이 작품 속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친절하게 짚어주는 문장들을 읽다 보면, 덮어두었던 그의 소설들이 당장이라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어렵게만 다가왔던 도스토옙스키 장편 소설들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은 물론, 번역자가 10년의 긴 세월 동안 텍스트와 씨름하며 한 인간으로서 고뇌하고 성장한 기록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내 책상 한켠에 자리를 내어두고 꾸준히 꺼내보고 싶은 책.

인간의 영혼에 깊은 관심을 두고 그들을 연민했던 작가. 앞으로 나아가라는 뻔한 말 대신, 잠시 멈추어 한 인간의 내면을 오래 바라보라는 조언이 담겨 있어 읽는 내내 참 많은 생각이 스쳤다.

도스토옙스키의 세계로 첫 발을 내딛고 싶은 이들에게, 혹은 읽었으나 뚜렷한 인상을 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이 안내서를 추천한다. 친절하면서도 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책이 술술~ 읽힘!! 당장 오늘 밤부터 <죄와 벌>의 첫 페이지를 다시 열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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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담아, 엄마가
일리아나 잰더 지음, 안은주 옮김 / 리드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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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았던 베스트셀러 작가의 우발적인 죽음. 하지만 그녀의 추모식에 모인 이들은 슬픔 대신 각자의 이익을 계산하기 바쁘다. 딸 매켄지 역시 엄마의 죽음 앞에서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하지만 엄마의 죽음에도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는 딸 매켄지 앞에 죽은 엄마의 편지가 도착한다. 우연인지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던 편지는 매켄지가 발을 들이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집요하게 반복된다.

사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전개는 나를 매켄지의 불안한 내면 한복판으로 밀어 넣는다. 서로 애정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가족과 그들이 사는 거대한 저택 안에 숨죽이고 있는 비밀들이 하나씩 파헤쳐 질 때마다 한숨을 쉬게 한다. 휴우~

+)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었다. 정말 몇 장 안 남기고서까지 그래서 도대체 ㅇㅇ는 뭔데!!! 씩씩대며 읽게 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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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스즈키 고지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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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iquitous : 동시에 어디에나 존재하는

단순 ‘손녀 찾기’인 줄로만 알았던 일상적인 추리극이 생태계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SF스릴러로 확장되는 전개가 압도적이다.

남극의 고대 얼음이 불러온 집단 의문사와 15년전 발생한 이단 종교의 의문사 사이의 상관관계. 그 중심에는 지구 생명체의 99%를 차지하면서도 늘 배경으로만 취급받던 '식물'이 있었다.

인간이 모든 생태계의 정점에 서있다는 오만을 비웃듯 소설은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거대한 음모를 펼쳐낸다. 이건 어디서 본 적도 없는 독특한 스릴러임과 동시에 작가가 이 세계관을 위해 정말 많이 공부하고 준비했구나 생각했다.

과학적 근거 위에 쌓아 올려진 여러 썰들(아담과 이브는 식물이 조종한 뱀에 의해 인지 혁명을 겪었다는 둥,,)을 읽어나가며 나도 모르게 “정말 그런가?”란 생각이 들었다. 사이비가 어떤 방식과 근거로 사람을 세뇌할 수 있는지까지 생각이 치닫자 오싹하기도 했다.

‶ 현생 인류의 학명인 'Sapience'는 '지혜', 그 어간인 Sap'은 '식물의 수액'이라는 뜻이죠. 동시에 'Sap'은 붉은 핏물'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과연 이건 우연일까요? (p. 145) ″

무려 4부까지 예정된 거대한 세계관인 만큼, 식물의 설계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그리고 인간은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작품이다. 기억하라, 어디에나 존재하는 식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늘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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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
아오사키 유고 외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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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를 위해 일곱 명의 작가가 헌정 소설을 쓰다니.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대체 어떤 거장이길래 이런 기획이 가능했을까? 호기심으로 집어 든 이 책은 앤솔러지에 대한 내 편견을 기분 좋게 깨버렸다. 첫 편부터 ”아, 좋다!“ 탄성이 나오더니,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엔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 끈, 밧줄, 로프
사망한 여자의 몸에 남은 흔적. 사건 해결 후 제목과 맞물리는 마지막 비유가 머리를 강하게 때린다.

👩🏻‍🎓 클로즈드 클로즈
교복 도난 사건 뒤에 숨겨진 애증. 사춘기 소녀들과 중년 남성 콤비가 만나는 장면이 묘하게 정겹고 감동적이다.

👻 히무라 히데오에게 바치는 괴담
괴담조차 논리로 격파하는 히무라와 아리스 콤비. 하지만 결코 풀리지 않는 마지막 괴담의 여운이 길다.

🪞블랙 미러
가장 박진감 넘쳤던 단편. 알리바이에 이용당했다는 설정과 이동 경로를 추리하는 치밀함에 머리는 조금 아팠지만(ㅋㅋ) 몰입감은 최고였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안티의 수수께끼
사촌의 귀여운(?) 비밀에 웃음이 터졌다. 이런 사소한 것조차 추리의 영역이 될 수 있다니, 추리 소설의 세계는 참 넓다.

🪷 행각승 지장 스님의 낭패
과거 단골 술집의 추억과 다시 마주한 비디오 가게 주인. 아련한 향수가 느껴지는 작품이자 여러 트릭들의 향연.

🫆시체의 실루엣은 말한다
여자친구가 꾸며놓은 범죄 현장과 다잉 메시지. 추리 소설에 진심인 사람들의 에너지가 흥미진진하다. 근데 마지막 의미는 뭘까?

여기 실린 모든 이야기 전부 아리스가와의 세계관을 모르고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그가 창조한 인물과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이게 베스트다!“ 싶은데, 다음 편을 읽으면 또 생각이 바뀔 정도로 거를 타선이 없는 완벽한 앤솔러지였다. 마치 고수들이 펼치는 화려한 대결을 직관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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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숲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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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의 ’집 시리즈‘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어떻게 세 이야기가 단 하나도 겹치지 않고 각기 다른 결로 소름 돋게 만드는지 매번 감탄하게 된다. 앞선 <화가>와 <흉가>를 거치며 쌓인 내성이 무색하게도, 세 번째 작품은 괴담과 미로, 그리고 원한이 뒤섞여 훨씬 더 복잡하고 교묘해졌다. 거기다가 기존 <마가>였던 제목이 <괴담의 숲>이라는 새로운 제목과 표지로 다시 돌아옴!!

엄마의 재혼과 새아빠의 직장 문제로 오게 된 삼촌의 거대한 별장. 그곳에서 마주한 기묘한 일들과 ”숲에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당부. 아이를 유괴한다는 신의 괴담과 호박 남자의 전설이 뒤엉켜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안심할 수 있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순간이 의심스러워 엄청나게 몰입했지만 결말은 예상치를 완전히 빗나갔다. 특히 이야기의 결말을 지나 슬며시 고개를 드는 반전까지 그야말로 압권이다.

책을 덮고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본다. ”너도 장차 처세에 능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라는 삼촌의 첫 대사를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주인공 유마가 과연 얼마나 ’처세‘에 능했는지 되새기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 재미가 상당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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