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책과 글이 쏟아지는 시대다.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문장들 사이에서도 결국 마음을 울리는 것은 진솔함이 아닐까 싶다. 5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유의 결을 지켜온 월간 교양지 <샘터>의 문장들이 그러하다. 대단하다고 일컬어지는 인물부터 우리 곁의 이웃까지, 다양한 삶의 궤적을 담은 글 중에서도 엄선된 100개의 문장을 필사하며 느꼈다. ’샘터‘라는 이름처럼 마르지 않는 샘 같은 순수함과 열정. 그것은 내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생생한 이 문장들을 읽으며,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되돌아본다. 바쁘다는 핑계로 등한시했던 가족과 친구들, 각박한 사회 속에서 멀어진 이웃과의 거리, 그리고 일상에 치여 외면해온 문제들까지.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을 담아 눌러 쓴 글이기에 그 여운은 더욱 깊게 다가온다. 특히 이 필사집의 매력은 단순히 읽고 쓰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부터 깊은 사유가 필요한 질문, 차마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까지. 이 과정은 단순한 필사를 넘어 삶을 더 치열하게 고민하게 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 가끔은 투박해도 진심이 담긴 글 한 줄이 더 위로가 될 때도 있죠! 여러분도 잊고 지내던 소중한 가치들을 이 문장들 사이에서 되새겨보는 건 어떠실까요😊
북한군 포로인 요한. 눈 속에 파묻혀 코만 나와있던 그를 사람들은 스노우맨이라고 불렀다. 그는 종전 후 본국 송환을 거부하고 중립국 브라질로 간다. 요한은 일본인 재단사 밑에서 옷을 고치고 언어를 배우며 그곳 사람들과 정이 들어간다. 말수가 적고 조용한 그의 일상에 문득 떠오르는 고향, 친구 펭, 아버지, 포로수용소의 날들. 그리고 그를 품어준 재단사 기요시와 거리의 아이 둘. 담백하고도 담담하게 서술되는 1, 2부를 거쳐 3부에서 그의 어린 시절 고향과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며 감정의 빈 공간이 빈틈없이 채워진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울컥,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른다. 500쪽이었던 소설이 200쪽 분량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읽을수록 정말 한 문장 한 문장이 깊고도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소설임과 동시에 이념 따위 상관 없던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에 휘말리며 겪는 감정들이 전해져 마음 아팠다. 나무 같은 요한의 시간. 가만히 멈춰 있는 듯 보이는 한 사람의 생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계절의 변화를 겪는다. 전쟁을 겪고 황폐해졌던 요한에게 옷을 고치고 만드는 것이 무너진 정신을 고치는 작업이지 않았을까. +) 한국 전쟁이 끝난 후 포로들의 거취 문제에 대해 그동안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한국계 미국인 작가에게서 이런 내용의 작품이 나왔을까 궁금했다. 알고 봤더니 작가의 할아버지가 탈북민이셨다고...#도서제공
누구나 살아가며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이 책은 일상 속 드리워진 그늘에 한 줄기 빛이 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11편의 이야기들 중 몇 편만 소개하자면📍거짓말 컨시어지, 속거짓말 컨시어지‘거짓말쟁이’는 나쁘지만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여러 사람의 일상을 구해주기도 한다. 이 두 편의 이야기에서는 서로 전혀 엮일 일이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거짓말’을 통해 하나로 엮이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 말도 안 되는 조합이 왜 이리 다정하고도 위로되는 걸까.📍추가 나눔의 전말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168자루의 초록색 볼펜. 그 펜으로 이어지는 인연이 마치 할아버지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듯한 모습이다.📍술집에 이천 번이나 가고 난 뒤에은퇴를 앞둔 상사의 송별회를 열 술집을 찾아야 하는 요코이. 취향저격을 위해 분투하며 한 사람의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 집요할 정도지만 그래서 재밌다. 계산해 보면 40년 간 한 직장을 다닌 사람이 그 근방에서 안 가본 술집이 있을까. 세대가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취향을 궁금해하며 키워지는 우정 비슷한 느낌이 왜 이렇게 따스할까.📍방과 후 시간의 그녀나머지 공부 시간에 심지어 자기보다 낮은 학년의 수업에 들어오는 선배 호리우치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나에.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인데 의연한 태도의 호리우치를 본받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보다는 적당히 먼 거리의 관계에 대한 조명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관계 속에서 얻는 위로와 다정함 속 각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 돋보이며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를 믿고 나를 먼저 챙기는 것, 내 일상을 궁금해하고 안부를 물어봐주는 사람들의 소중함인 것 같다. 여기에 일본 소설 특유의 잔잔한 감성을 느낄 수 있어 매우 힐링하며 읽었다!#도서제공
흑해. 검은 바다. 이 바다를 떠올렸을 때 내 머릿속도 같이 까매진다. 아는 게 없어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담 책으로라도 알아가야하는게 독서인의 숙명. 호기심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흑해를 지칭하던 여러 이름들로 지어진 목차는 흑해의 변화하는 다양한 모습을 담아냈다. 폰투스 에욱시누스(환대하는 바다)로 시작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Black Sea, 흑해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바다 주변에서 벌어진 복잡한 역사들에 점점 빠져든다. 단순히 지루한 역사의 나열이 아니다. 겨울엔 바다가 얼어붙어서 돌고래들이 뛰어오르려 할 때 머리를 부딪히기도 하고 남자들의 수염에서 고드름이 맺힌다는 묘사들이 중간중간 튀어나오며 픽 웃게 만들기도 한다. 호시탐탐 땅을 노리던 영웅들의 격전지에서 제국적 욕망의 대상, 경쟁하는 국가 경쟁의 일부가 되기까지. 흑해를 둘러싼 민족, 언어, 종교, 무역, 자원 등 여러 주제에 관한 역사가 모두 담겨 있는 이 책. 역사적 복잡성과 그 맥락을 알고 나니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진 기분이다. 2004년 출간된 책이지만 옮긴이가 짚어주는 최근 동향과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흑해가 갖고 있는 여러 이슈들까지. 왜 지금 우리가 흑해에 주목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러나 바다를 정복하는 것은 여태까지의 역사가 보여주듯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온몸이 조각조각 갈기갈기 찢긴 남자가 발견된다. 자신이 일하던 제약회사 연구소 근처에서 살해당했다. 이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와 점점 드러나는 제약회사의 실체와 음모. 제약회사의 음모라면 뭔가 식상해보일 수도 있지만 과거로 인해 정의를 잃은 형사와 오히려 과거로 인해 정의에 집착하는 형사의 선명한 대비감, 그 시대 사람들의 경찰과 범죄에 대한 시각, 작가 자신만의 철학을 곳곳에 녹여낸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전혀 식상하지 않다. 살해범의 정체 또한 놀랍다. 설마?하며 아리까리한 채 읽고 있다가 그 정체가 밝혀졌을 때의 충격이란. 그러면서 ‘마녀의 후예’란 말이 나에겐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도 볼 수 있지만 사람의 악을 물려받게 된 동물들의 이야기로도 읽혔다. 아주 치밀한 잔혹동화 같은 이야기다. 책을 다 읽은 후 표지로 돌아오는 순간 책의 제목을 다시 바라보며 순간 섬뜩해졌다. 남겨진 이야기들을 암시하며 의미심장하게 끝나는 결말까지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치 못하게 한다. 이게 작가의 초기작이라니••• 오히려 초기작이라 과감해보이는 면도 눈에 띄어 더 재밌다!! 그동안 시치리의 다른 작품들을 드문드문 읽어왔지만 이로서 시치리 월드에 입문. 앞으로 발간될 <히트업>! 빨리 읽고 싶어 현기증 나요;; 이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