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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말은 ㅣ 독고독락
낸시 풀다 지음, 백초윤 그림, 정소연 옮김 / 사계절 / 2025년 9월
평점 :
“나는 날마다 나를 환대하지 않는 세상에 맞추어 가는 법을 배운다”
내가 SF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가 아름다운 문학의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낸시 풀다의 『내가 하려는 말은』은 자폐와 알츠하이머 치매를 소재로, 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그 감정을 대하는 방식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진 두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 「움직임」 .͙·☽
‘시간적 자폐’를 갖고 있는 주인공 한나는 시간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 때마다 토슈즈를 신고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춤을 춘다. 한나의 부모님은 시냅스 이식을 통해 한나의 자폐를 치료하려 하지만, 한나는 이 결정에 대해 고민한다. 한나가 본인이 처한 상황을, 마음을, 시간을, 가족을 대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됨과 동시에 한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영원히 그 시간의 세계에 남을까, 보통 사람들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될까.
༊*·˚ 「다시, 기억」 .͙·☽
알츠하이머 치매를 치료받은 엘리엇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공간, 낯선 사람 속에서 깨어난다. 그가 치매를 앓던 동안 사라진 기억들은 복구될 수 없었던 듯 보인다. 그의 아내와 자녀, 손주들은 엘리엇을 번갈아 찾아와 그들의 추억을 끊임없이 얘기하지만 엘리엇에게 그 모든 이야기들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이야기로 느껴질 뿐이다.
낸시 풀다의 이 세계 속에선 자폐, 치매 두 질병 모두 ‘치료 가능한’ 질병이다. 두 질병 모두 보통 사람과는 다른 언어의 세계 속에 놓여있다는게 특징일텐데 작가는 이러한 특성을 그녀만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낸다. ‘부모님은 내 시간의 척도에 맞추어 말하는 법을 모른다. 그들의 대화는 초 단위, 때로는 분 단위다. ··· 내가 생각을 정리해 완벽한 답을 찾는 데는 며칠, 때로는 몇 주가 걸린다(p.30)’,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자라나거나 무너지고 있다. 이에 비하면 단어들은 납작하고 무의미하다(p.40)’,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알지 못한 채, 정신없이 내달리는 문장들에 갇히고 싶지 않다(p.42)’, ‘자신이 하는 말 중 너의 기억이라는 미끄럽고 험준한 바위에 자리 잡는 단어가 몇 없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름들과 일화들이 너에게 친숙한 무엇과도 연결되지 못하고 빠르게 잊히며 스쳐 지나간다.(p.57)’.
그녀의 소설에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선택이라는 결정 앞에 놓여있고 결국 둘은 같은 선택을 내린다. 본인의 의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맞추어 살아가고자 하는. 밑줄을 안 그을 수 없는!! 아름다운 문장들로 표현되는 두 사람의 결정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감동의 파도가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짧은 소설이지만 이렇게 큰 울림을 주다니 놀랍다. 너무 좋다🩵🤍🩶 다른 독고독락 시리즈들까지 너무 궁금해짐!
이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