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안정 - '결혼'이 만드는 꿈과 불안, 그 너머 관계의 기하학
안희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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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던 20대를 지나 어느덧 30대. 하나둘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며 ‘아, 나도 결혼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문득 복잡 미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이거 혹시 의무감 아닌가? 남들 다 하니까 따라 하고 싶은 건가? 나 정말 결혼이 하고 싶은 걸까?’

병원에서 일하며 생사의 기로에서 연명의료를 고민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자주 접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했더라도 법적 보호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하는 관계를 목격할 때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결정의 순간 앞에서 그저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모습들.

그렇기에 나는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의 법적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결혼의 존재하는 이유라고 막연하게나마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점은, 내가 그토록 필요하다고 느꼈던 ‘법적 관계’가 누군가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속박이자 구속이라는 심리적 저항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사랑해서 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는 지금, 결혼이 경제적·사회적·심리적·제도적 안정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제목인 《사랑과 안정》이 더욱 깊게 와닿았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각자의 가정 환경이나 가치관, 지향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여기, 그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선뜻 총대를 메고 나선 이가 있다. 저자는 9명의 목소리를 통해 결혼의 세세한 결들을 하나씩 포착해 내며 우리에게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이 책은 결혼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을 꿈꾸던 이든, 별 생각이 없던 이든 책을 덮고 나면 생각이 더 복잡해질 것이다. 과연 내가 정말 결혼을 원하는지부터 시작해, 내가 꿈꾸는 관계의 모습, 그리고 여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임신·출산·육아의 현실적인 고민까지.

평생 고민해도 명확한 끝은 없을 질문들이겠지만, 나에게 있어 그 고민의 첫 문을 열어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깊은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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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바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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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니, 이게 삼십 년 전 소설이라고...?!?

추리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숨에 몰아친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 후기😋

”아껴 읽어야지“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첫 장을 펼치자마자 푹 빠져서 결국 하루 만에 완독해 버렸어요. 의미심장한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제 영혼도 어둡고 추운 설산 속 펜션으로 둥실 떠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마리아 님은 언제 집에 돌아왔지?“
의문의 수수께끼를 남긴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오빠. 그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주인공 나오코와 친구 마코토는 중세풍 펜션 ’머더구스‘로 향합니다. 매년 찾아오는 수상한 단골들, 그리고 각 방에 숨겨진 영국의 전래 동요 속 암호들까지.

암호 해독을 다룬 본격 미스터리는 거의 처음이었는데, 동요 뒤에 숨겨진 트릭이 선사하는 몰입감이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근데 저만 그런가요...? 🙈
읽을수록 범인이 누구인지는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데, 주인공들이 각 방을 돌며 동요 가사를 찾아내도 제 추리는 매번 턱턱 막히더라고요. 아직 미스터리 짬밥이 한참 부족한가 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진실이 완성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더 미친 듯이 책장을 넘기게 되었던 것 같아요!

몇십 년 전에 나온 책이라는 게 무색할 만큼 촌스럽기는커녕, 마치 각 방과 그곳에 묵는 손님들이 눈 앞에 그려지는 듯, 오히려 한 편의 스타일리시하고 키치한 미스터리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 이런 배경에 밀실 살인~ 크~ 고전 그 자체죠!!

거기다 에필로그의 반전까지...!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게 절로 느껴졌습니다.

여름에는 서늘한 오싹함으로, 겨울에는 눈덮인 설산의 분위기로 언제 읽어도 완벽할 책. 작가님은 떠나셨지만, 초기작을 읽으며 청년 시절 통통 튀던 작가님의 목소리를 마주하는 듯해 벌써부터 작가님이 참 많이 그리워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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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회한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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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리의 세계관이 특별한 이유는 탄탄한 재미 위에 세밀한 사회적 현실을 녹여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리즈마다 인물과 설정이 엮여 있어, 다른 작품을 읽다가도 익숙한 이름을 만나는 반가움이 있다. (모르고 읽어도 문제는 없음!!)

이번 <히포크라테스 회한>은 그 매력이 한층 더 짙어졌다. 미쓰자키를 향한 도발적인 협박문으로 시작하는 이번 이야기! 안 그래도 부검 예산이 부족해 팍팍한 와중에 자꾸 혼란을 주는 상황들에 내가 다 열이 받기도;;

이번 편에서는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인물들의 성장이다. 의사는 차갑고 이성적일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상황에 휘둘리고 고뇌하면서도 한 걸음씩 나아가던 마코토가 이번 책에서는 한층 단단해져 돌아왔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시신의 배를 가르고 손을 넣는 마코토와, 단서를 찾기 위해서라면 쓰레기통도 마다하지 않고 뒤지는 고테가와. 사건을 거듭하며 딱딱 맞아떨어지는 두 사람의 합과 관계성을 보는 재미도 훌륭하다.

부검을 기피하는 일본 사회의 씁쓸한 현실은 여전하다. 하지만 죽은 자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유족을 부단히 설득하는 마코토의 모습은 1, 2권과는 차원이 다르다. 진정한 법의학자로 거듭나고 있는 마코토의 성장에 절로 박수를 보내게 되는 책.

그래서 다음 시리즈는 또 언제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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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인연 붉은 박물관 시리즈 3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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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시청의 미제 사건들이 모이는 곳, 범죄 자료관! 일명 ‘붉은 박물관’이 드디어 시리즈 3편 <죽음의 인연>으로 돌아왔습니다...!

일단 히이로 사토시 관장의 얼굴이 그려진 힙한 표지부터 시선 강탈! 그동안 ‘설녀’ 같다는 묘사로만 떠올리며 궁금해했는데, 제 상상이랑 거의 비슷해서 신기했어요.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 살짝 소개하자면, 붉은 박물관의 냉철한 관장 ‘히이로 사토시’와 경시청 수사 1과에서 사고 치고 쫓겨난(?) 형사 ‘데라다 사토시’ 콤비가 묻혀있던 미제 사건들을 파헤치는 추리 소설입니다!

매 단편마다 독자에게도 사건의 증거가 똑같이 주어져서, 두 사람과 함께 머리를 굴리며 추리해 나가는 형식이 이 시리즈의 진짜 묘미예요. 1, 2편에서는 절반 정도 비슷하게라도 정답을 맞혔는데, 제 느낌엔 이번 3편은 난이도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 (결국 한 편 겨우 맞혔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의심하고 머리를 쓰며 읽는 재미가 훨씬 커졌어요! 한 편이라도 맞출 때의 쾌감이란...🤩 평소에 단편보다는 묵직한 장편을 선호하는 편인데도, 매 단편마다 구성이 어찌나 탄탄한지 ’극호‘를 외치며 읽었습니다.

추리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 작가와의 팽팽한 두뇌 싸움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당장 붉은 박물관으로 입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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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이인열 지음 / 온프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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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꼬꼬무>, <용감한 형사들> 같은 범죄 비하인드 프로그램에 진심인 분들, 여기 주목!🙋🏻‍♀️

현실이 영화보다 더하다는 말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들 뒤에는 언제나 묵묵히 땀 흘리는 형사들의 진짜 삶이 있다. 특히 잔혹성에 가려진 형사들의 진짜 노고를 보여주는 <용감한 형사들>을 참 좋아하는데, 아니 마침 이 책 <408>의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고 낯익은 것 아닌가!

이인열 작가의 소설 <408>은 실제 강력계 형사 출신인 저자의 날것 그대로의 경험이 투영되어 강력한 사실감과 흡입력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작품은 시작부터 독특하다. 실제 수사보고서를 펼쳐 든 듯한 타임라인과 서식의 목차는 나를 단숨에 사건의 중심부로 순간 이동시켰다.

이야기는 이른 아침, 강남의 한 오피스텔 408호에서 시작된다. 두 여성이 자고 있던 방에 한 남자가 침입해 한 명을 흉기로 찌른 후 다른 한 명을 성폭행, 살해한 후 달아난다. 기가 막힌 건 그 와중에도 피해자를 씻기고 뒷처리까지 다했다는 사실. 다행히 처음 흉기에 찔린 피해자가 살아 남아 신고하고 수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범인과 형사들 사이의 치열한 심리전이 펼쳐진다.

특히 엄청난 인원이 오고 가는 복잡한 도심가의 오피스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사 과정은 그야말로 ’현실 그 자체‘였다. 사건 해결을 위해 사방으로 뛰는 형사들과 달리, 도무지 협조해 주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는 읽는 나까지 괜스레 화가 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소설 속 상황만으로도 이렇게 속이 터지는데, 진짜 현실은 오죽할까, 실제론 얼마나 더 힘들까 싶어 고개가 절로 저어지기도. 심지어 윗선에서의 압박, 팀간 경쟁, 사비까지 써가며 밤낮 없이 수사에만 매달리는 디테일한 현실 고증을 마주할 때마다 실제 형사로 근무하셨던 작가님의 묵직한 내공과 면모가 제대로 드러난다.

이 소설은 범죄의 자극성에 매몰되지 않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형사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땀방울을 정면으로 비춘다. 베테랑 수사관들의 예리한 직감과 집요함, 푹푹 찌는 여름날 씻을 시간조차 없이 현장을 뒹굴며 오직 검거만 생각하는 악바리 정신. 그리고 평범한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고충까지. 책을 읽는 내내 이건 보통 사명감으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생각에 감탄했다.

잔혹한 범죄에 가려져 있던 형사들의 진짜 열정과 사명감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이 묵직하고 생생한 수사 기록을 권한다.


*이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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