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32
이효석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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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언젠가 여행지에서 보았던 하얀 안개꽃처럼 작은 꽃들이 한 밭 가득 피어 바람결에 흔들리는 걸 본 적 있다. 무릎을 살짝 치고 올라와 허벅지, 허리까지 피었었는데 이게 메밀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떠올린 게 이효석님의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이었다.

산허리에 걸린 길을 걸으며 장돌뱅이 조선달과 허생원은 그 옛날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으로 아름다웠던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뒤따라 오는 동이에게는 그 이야기가 들리지 않지만 함께 읽는 독자들의 숨죽인 긴장감이 소롯이 느껴진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

학교에서 단체로 노루를 잡도록 시키는 일에 회의를 느끼는 학보는 죽은 노루를 보고 입맛을 잃지만 어머니가 차려준 노루고기-모르고 먹었던-를 먹고 입맛을 찾는다는 사냥, 어른을 무서워하지 않는 홍수를 동경하는 아이들이 홍수를 통해 담배를 배워가는 이야기가 담긴 고사리, 금단의 과일 능금을 따고 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받고 여자 친구 복녀에게도 채인 을손은 자신의 비참한 모습이 꼭 키우는 수탉 같아 보여 자신에게는 큰 재산-한 달 수업료와 맞먹는-인 수탉을 죽이고 만다는 이야기 수탉, 이외 들과 석류, 산과 돈, 도시의 유령 등 서정적이면서도 전원적인 풍경 아래 사춘기 혹은 그 시절을 살아난 이들의 애잔한 삶들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짧은 단편들이지만 이효석님 소설 특유의 분위기와 느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학교 다닐 때 읽었었는데 오래 되어 잊고 있었던 이야기도 있었고 메밀꽃 필 무렵처럼 내내 가슴에 담고 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자라는 지금 우리 세대 아이들도 한국 문학의 큰 줄기가 되었던 이효석님의 글을 마음으로 느끼며 그리며 읽었으면 좋겠다. 

쫙 펼치면 어른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아주 자그마한, 합리적인 가격의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이효석님의 마른 풀냄새 나는 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네버엔딩 스토리에서 펴낸 메밀꽃 필 무렵.

여기 저기 지하철 안에서 아이들의 가방 속에서 나와 손에 펼쳐 든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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