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풍요와 거품의 역사 - 돈이 지배한 광기와 욕망의 드라마
안재성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7월
평점 :
돈이라는 게 참 무서운 점이 많다. 금전적인 문제로 친구를 잃거나 가족끼리 싸움이 나는 것을 우리는 굳이 매체를 통하지 않더라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돈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물론 돈의 긍정적인 면은 부인할 수 없다. 화폐라는 편리한 개념이 없었다면 지금의 풍요는 없었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 양날의 검은 현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쭉 함께해 왔다.
경제 분야 전문 기자인 저자는 ‘돈 문제’에 민감한 인간 조직의 역사를 이 책에 담아냈다. 우리가 배워왔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의 이면에는 항상 돈 문제가 우선해 있었으며 이를 잘 풀어나간 쪽이 승리를 쟁취해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배경에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많은 요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돈 문제라는 것이 언제나 전면에 내세우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기에 그럴듯한 다른 이유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이런 포장을 벗겨내고 돈이 지배한 인간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파헤친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지금의 암호화폐와 유로존 문제까지, 방대한 범위와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두 가지 예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8세기, 지중해를 장악했던 이슬람 해적과 교역한 이탈리아 상인들의 사례와 적국인 프랑스를 간접적으로 자원한 영국 베어링스 은행의 사례이다.
8세기 무렵 북아프리카를 장악한 이슬람 세력은 주로 해적업에 종사하면서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유럽의 크리스트교도들을 침략하고 약탈했다. 이들 ‘사라센 해적’들은 같은 이슬람교도는 공격하지 않고 성전이라는 명분으로 ‘이교도’의 재물만을 따라다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해적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한 것은 이탈리아의 해상세력이었다.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아말피와 같은 해상도시들은 해적들에게 식량, 무기, 목재 등을 제공했고 심지어 노예 거래도 서슴지 않았다. 같은 이탈리아 동포의 고통은 물론 교황청의 압력과 종교적 파문도 이들의 이윤 추구에 대한 집착에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때 벌어드린 막대한 부가 이후 르네상스 시대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때 영국 베어링스 은행의 행위는 한술 더 뜬다.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영국과의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해 미국에 당시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던 루이지애나를 판매한다. 신생국가였던 미국은 전액을 현금으로 지불할 능력이 없었고 1,200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베어링스 은행에서 빌리게 된다. 베어링스 은행의 자금이 자국을 침략하려는 프랑스군의 군자금으로 사용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영국 침략은 없었지만, 이는 명백한 이적 행위였고 비판받아 마땅했다. 놀랍게도 베어링스 은행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이 사건을 자신들이 ‘국제 신용도가 높고 유서 깊은 은행’이란 것을 자랑하는 데 사용했다. ‘자본에는 국경이 없고, 자본가들에게는 애국심도, 고결함도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이익뿐이다.’라고 했던 나폴레옹의 유명한 발언은 딱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를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다시 바라봤다는 점이 색다른 책이었다. 수험생활을 함께했던 역사와 경제라서 더 반갑기도 했고 그 내용이 어렵지도 않아 마지막 페이지까지 흥미를 잃지 않았다. 찝찝하긴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기에 지금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돈’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