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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ㅣ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평점 :
스스로를 ‘문장수집가’라고 말하는 저자는 독학으로 글쓰기를 배우면서 우표 수집가가 우표를 모으듯 책에서 문장을 차곡차곡 모았다고 한다. 그 소중한 문장들 가운데 ‘쓰기’에 관련된 104개의 문장과 한 문장 한 문장에 담긴 저자의 이야기가 책에 가득 담겨 있다. 문장의 주인들도 니체 등의 철학자에서부터 동서양의 작가까지 다양하다.
글쓰기 기술을 알려주는 실용서는 분명 아니다. 그런 내용을 원한다면 이 책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쓰기의 말들’은 ‘쓴다’라는 행위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애증을 통해 본인의 삶 전반을 뒤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뭔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전에 읽었던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도 이와 유사한 감상을 줬었는데 이번에 다시 느꼈다.
노트에 옮겨 적은 문장이 많다. 지금 모으고 있는 문장과 정보들이 훗날 어떻게 나에게 다가올까. 그저 텍스트로만 남지 않았으면 한다.
23p 글쓰기는 나만의 속도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안전한 수단이고, 욕하거나 탓하지 않고 한 사람을 이해하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뒹굴더라도 연꽃 같은 언어를 피워 올린다면 삶의 풍경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미련이 내게 준 선물이다.
50p 내 안에 파고들지 않는 정보는 앎이 아니며 낡은 나를 넘어뜨리고 다른 나, 타자로서의 나로 변화시키지 않는 만남은 체험이 아니다. - 황현산
107p 슬픔이 노폐물처럼 쌓여 갈 때 인간의 슬픔을 말하는 책은 좋은 자극제다. 슬픔을 ‘말하는 법’을 배우고 슬픔을 ‘말해도 괜찮다’는 용기를 준다.
179p 참으로 얄궂다. 쓰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쓰기 전엔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쓰고 싶어서, 써야 하니까, 쓰지 않으면 안 될 어떤 필연적 상황에서 한 문장씩 밀고 나간 흔적들이다. 그 ‘실물’을 만지작거리며 나를 다독인다. 저번에 썼으면 이번에도 쓸 수 있다.
211p 굳어버린 지각과 감성이 아니라 흔들리는 감정과 울분이 사유를 갱신하는 글을 낳는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글)이 어디 있으랴.
229p 지구본 위에 어디쯤 한 점으로 놓여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연결되는 상상을 한다. 서로가 보내는 고독의 신호를 읽어 내는 우정의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