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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걸음 - 세계는 왜 뒷걸음질 치는가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1월
평점 :
비판은 엄격하고 무자비해야 한다.
저자 움베르토 에코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이탈리아 일간지에 기고했던 칼럼, 강연문 등을 주제별로 모은 책이다. 전쟁과 평화, 생명, 음모론, 교육, 다민족 사회, 시온주의와 반유대주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 중심을 정치와 대중 매체가 가로지르고 있다. 글의 방대한 범위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한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기호학자, 철학자, 미학자 등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으며 그 사유의 깊이 또한 매우 깊다.
책의 제목 ‘가재걸음’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뒷걸음질, 즉 퇴보하고 있는 세계를 의미한다. 책에 수록된 저자의 글이 세상에 나온 시간은 2000년대 초반이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면서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가장 컸을 시기에 저자는 신랄하게 일침을 가한다. 전반적으로 논조가 강하고 날카로우며 풍자 또한 함의하고 있는 바가 명확해서 직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주제를 담고 있는 칼럼이 한 권의 책에 수십 편이 모여있어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일간지에 실린 칼럼들답게 당시 이탈리아를 이끌었던 베를루스코니 정권의 ‘미디어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이 책의 많은 부분을 이루고 있다. 집권 전에도 이미 많은 언론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정권을 잡은 뒤에도 언론 장악에 공을 들인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교묘하게 여론을 이용한다는 점을 꼬집는다. 168페이지의 ‘새로운 체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이러한 비판이 필요하지 않은 국민에게만 전달된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단지 이탈리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담담함과 안타까움 사이에서 죽음을 사유하던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마지막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에코는 2016년에 눈을 감았고 2011년 불명예 퇴진했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올해 5월 복권되었으며 정계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자세히 아는 내용이 아니기에 더 언급하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