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드식으로 보자면 꿈은 상징이다.
그러니까... 해몽이 중요하다는 거지.
그렇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다고 인정할만한 여러 사례들을 가지고 있다.
상징들은 주기적으로 여러번 반복된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이 상징들을 인식하고, 꿈임을 알아채고, 이 꿈이 이제 어떻게 전개 될지 즐기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이다.
이 상황은 얼핏 보면 데카르트와는 반대로 가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이다.
데카르트를 따르자면 꿈에서 이게 꿈임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확장하면, 현실에서 이게 꿈이 아님을 확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꿈에서 깨어나면 현실인가? 물론 전혀 아니다. 상당한 경우에서 내 꿈은 중첩되어 있다.
즉 꿈을 깨면 또 다른 꿈이고 또 깨더라도 역시 또 다른 꿈속에서의 꿈이며...등등
다행스럽게도 상당한 수준의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현실과 꿈을 구분하는 것이 실용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없어 보인다.
그럭 저럭 실용적인 몇가지 꿈 판별 요령으로서, 물론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지만, 이 상징들이 기준이 된다.
그러나, 사실, 꿈임을 알아채는 가장 많은 경우는 죽은 사람을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죽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전의 생시때 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대한다.
그러다 서서히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며 그들의 계속된 출몰에 싫증을 내게 되고 (죽은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가지고 있는 기억외에 새로운 정보가 있을리 없으니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 지루해진다)
드디어 한마디 하게 된다. 너 죽은지 오래 됐거든 혹은 형 태워서 묻은게 나거든 혹은 자꾸 보이면 묘 파내서 화장 할겁니다.
이지경에 이르게 되면 순식간에 그 꿈에서 깨어 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꿈에서만 깨어 난다는 것이다.
일어나 방문을 나서 보면 거실 소파는 또 다른 일단의 죽은자들로 채워져 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에게서 눈꼽만치도 겁 먹지 않는다. 그냥 내 대뇌 뉴런사이에 끼여 있는 단백질 결정체로서의 기억 쪼가리에 불과하니까.
또 다른 명백하게 정의된 상징이 내 꿈에 있다.
한여름, 세그루의 미루나무, 시냇물, 매미울음소리, 한줄기 찬 바람.
죽음을 의미한다.
정확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죽은자, 그리고 그로 부터의 어떠한 메세지가 있음을 알리는 벨소리 같은 것을 의미한다.
이십대 단한번, 이 상징이 현실이라 확신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나타났을때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