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밤
꼬박 2시간을 더 들여 1배속으로 보았다.
(요즘 영화는 주로 32배속으로 본다)
브렛 핏이 더 나이 먹으면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훨씬 매력적이 될지 그냥 그렇고 그런 늙은이가 될지.
졸리랑 살아서 그런지 왠지 무지 우아스러 보인다.
중늙은이 삘을 내기 위한 분장 탓인지 Q값을 과도하게 잡아 화면이 뭉개져서 그런지
왜 브렛 핏이 로버트 레드포드를 생각나게 할까.
데이빗 핀쳐는 스타일리스트로 기억하고 있넌데
그도 나이를 먹어가는지 이런 긴호흡의 잔잔함도 끌어 가는구나??
라고 잠시 착각하게 할 정도로 들어나지 않는 교묘함들이 큰 그림을 고급스럽게 만들어 가는 걸 보니...
역시 나이 든게 맞나 보다.
죽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대면해야 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누가 알겠냐마는
이 하이랜드 식 설정은 꾀나 매력적이라, 죽지 않는다니 이보다 더 한 매력이 머가 있을 것인가, 돈 많이 벌었다.
(속편이 대체 몇개나 만들어 졌나?)
한사람은 늙어가고 또 한사람은 어려져 가서 (어색한 말이다. 의미하는바 자체 때문일 것이다)
시간축으로 심각한 미스매치가 생긴 벤자민 버튼 식의 설정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이야기다.
사실은
두 경우 모두 특별나지 않다.
영원히 살던, 노인으로 태어나서 아기로 죽던, 아에 그냥 태어나서 그냥 죽던 하등 다를 바 없다.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고 헤어지고
대뇌속의 외경스런 메카니즘에 의한 감정의 추억이 죽음에 의해 파괴되든 뇌세포에 구멍이 뚤려 치매로 사라지든
무한히 짧은 만남에 영원한 이별이든
그렇다고 해서
그녀와의 만남의 의미에
조금만치도 손상이 가는 것은 아닌것이다.
내 몸은 퇴행의 순리를 따라가지만
정신은 역행한다.
늙은 몸의 유용성 만큼이나 별 볼일 없는 정신을 갖고 태어나지만
나 들어 가는 몸에 반비례 하여 예리함 감수성 그리고 포괄적인 이해력은 20대의 팽팽한 아름다운 몸 만큼이나 가치를 지니게 된다.
늙어 태어나서 젊어져 가는 건 생각 만큼이나 그렇게 경이로운 건 아니다.
맘 속에 누구를 품고 있느냐 인거지
굿 나잇 데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