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가 세상을 구한다는 헛소리,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을 숭배하는가
달리아 나미앙 지음, 조민영 옮김 / 원더박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성공한 사람은 쉽게 '영웅'이 된다. 우리 또한 성공한 사람이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기업가는 혁신가가 되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낸 사람은 미래를 앞당기는 선구자가 된다. 특히 자신의 힘으로 부를 일군 슈퍼리치에게는 평범한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 역할까지 요구한다. 그들이 가진 돈과 기술, 영향력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비롯된다.

달리아 나미앙의 『슈퍼리치가 세상을 구한다는 헛소리,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을 숭배하는가』는 바로 이 믿음에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저자는 록펠러의 녹색혁명부터 일론 머스크의 화성 식민지 구상에 이르기까지, 초부유층이 기술과 자선, 혁신을 내세워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해온 역사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 문제의 해결자인지, 오히려 오늘날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심화하는 구조의 일부는 아닌지를 묻는다.

책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도발 사회'다. 저자는 슈퍼리치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부와 특권을 끊임없이 과시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주거조차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대한 요트와 사설 도시, 우주 개발과 화성 이주 같은 프로젝트가 선망의 대상으로 소비되는 현실이다. 문제는 부의 격차 자체만이 아니다. 극심한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그 격차를 이상하거나 부당한 것으로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의 시선까지 함께 문제 삼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들을 숭배할까? 저자는 그 이유를 부와 성공에 대한 사회적 동경에서 찾는다. 우리는 부유한 사람의 성공을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성공한 기업가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막대한 재산은 뛰어난 능력의 증거처럼 받아들여진다. 그 과정에서 그 부가 어떤 제도와 사회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또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상대적으로 가려진다는 것이다.

자선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억만장자가 기아나 교육,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은 현실에서 일정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만으로 구조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지 묻는다. 빈곤과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그 결과를 일부 보완하는 방식이라면, 자선이 문제의 원인까지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은 인간에게 더 많은 시간과 자유를 가져다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더 빠른 속도와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시간을 절약해주는 기술이 정작 절약된 시간을 휴식이 아니라 더 많은 노동으로 채우게 만든다면, 기술 발전을 인간의 진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확장한다. 전쟁과 재난, 빈곤과 난민의 모습은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소비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보는 것과 그 고통이 발생한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강렬한 이미지가 현실의 원인과 책임을 가리는 순간, 타인의 고통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아니라 소비되는 장면에 머물 수 있다.

『슈퍼리치가 세상을 구한다는 헛소리,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을 숭배하는가』는 이러한 질문을 상당히 공격적인 방식으로 던진다. 제목부터 '헛소리'라고 단언하고, 슈퍼리치를 해결사가 아니라 오늘날의 문제를 만들어내고 심화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때문에 책의 논리가 때때로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과 기술, 기업가 정신이 만들어낸 긍정적인 가능성보다 그 이면의 불평등과 권력에 훨씬 더 강한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어도 그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수 있었다. 왜 기술과 자본을 가진 사람에게 미래를 맡기려 할까. 결국 이 책이 묻는 것도 거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왜 그들에게 세상을 구해달라고 기대하는가. 오래 겪은 불평등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슈퍼리치의 능력과 성취를 인정하는 것과 그들에게 사회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기술의 가능성을 믿는 것 역시 기술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과는 다르다.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는 것보다 우리가 어떤 제도와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5시 도깨비 편의점 4 특서 어린이문학 21
김용세.김병섭 지음, 글시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의 인정과 박수에 의존하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일어설 힘을 잃어버리곤 한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야 안심하고,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려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놓치기도 한다. 『25시 도깨비 편의점 4』는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휩쓸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리에게 질문을 건넨다. “정말 이것이 옳은 일일까?” “나는 지금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가?”


도깨비 편의점의 마법에는 분명 '힘'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대신 해결해주는 만능의 힘은 아니다. 때로는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지만 결국 선택하고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실수 없이 잘하고 싶다는 마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완벽하게 해내는 것보다 두려움과 부족함을 안고도 한 걸음 내딛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법은 나를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표현하지 않으면 쉽게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깊이 사랑하고 아껴도 말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닿지 않고, 마음속에만 간직한 진심은 때로 오해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용기는 단순히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진짜 용기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꺼내어 상대에게 건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받아들여질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알 수 없더라도 말이다.


『25시 도깨비 편의점 4』가 이야기하는 힘은 도깨비 편의점의 마법에만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의 박수나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자신의 마음을 믿고 선택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을 건넬 수 있는 힘. 그 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안에서 시작된다. 책장을 덮고 나면 나 역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호메로스 지음,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개봉 전, 오디오북과 요약본을 통해서만 접했던 『오뒷세이아』 이야기를 김헌 교수의 완역본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영화로 먼저 이야기를 접한 뒤 원전을 읽으니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들이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에도 미처 알지 못했던 맥락과 인물들의 감정이 있었고, 오뒷세우스가 지나온 긴 여정을 직접 따라가고 나니 『일리아스』까지 원전으로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759페이지라는 어마어마한 분량과 조금은 읽기 어려운 문장들도 있었지만, 거의 3주에 걸쳐 드디어 완독했다. 한 사람의 귀향을 따라가는 이야기 안에 신과 인간, 명예와 욕망, 환대와 무도함, 가족과 죽음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오뒷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이후를 비춘다.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지만, 영웅들에게는 그때부터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된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그리고 전쟁과 그 이후 자신이 저지른 일의 대가를 치르는 길이다. 수많은 영웅들이 귀향을 시도했지만 그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 고통받는 인물이 오뒷세우스다. 그는 칼립소에게 8년 동안 붙잡혀 있었고, 수많은 섬과 바다를 떠돌며 동료들을 하나둘 잃는다. 그러나 그의 고난이 신들의 심술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포세이돈의 분노로 귀향이 늦어졌지만, 그 분노를 불러온 것 역시 오뒷세우스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오뒷세이아』의 영웅들은 완벽하지 않다. 지혜롭지만 오만하고, 용감하지만 두려워하며,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욕망에 흔들린다. 그런 모습은 오뒷세우스를 비롯한 인물들이 왜 ‘인간’, ‘필멸자’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무도함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었다.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폴리페모스, 거듭된 경고에도 욕망을 참지 못했던 오뒷세우스의 동료들, 그리고 이타카에서 주인의 집과 재산을 차지했던 구혼자들까지 결국 자신이 한 행동과 마주한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그 과정까지 모두 신이 대신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으로 스스로 파멸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오뒷세우스의 귀향과 함께 텔레마코스의 성장도 인상적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무력하게 구혼자들의 횡포를 바라보던 소년은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 길을 떠나면서 자신의 목소리와 용기를 갖게 된다. 신의 도움이 그의 성장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결국 그 길을 걸어간 것은 텔레마코스 자신이었다. 한 사람은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집을 떠나고, 다른 한 사람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여정은 결국 이타카에서 만난다. 759페이지의 긴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니 『오뒷세이아』는 한 영웅의 모험담이라기보다, 무엇을 잃고 나서야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알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뒷세우스가 페넬로페에게 자신의 긴 여정을 들려주는 마지막 순간, 24권의 이야기가 하나의 긴 귀향으로 완성되는 듯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문장이 나를 사로잡는다. 누군가에게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내가 알고 있다는 감각. 어쩌면 그 마음이 나로 하여금 ‘듣는 일’을 처음 인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입을 열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을 사랑하게 됐고, 그들로부터 진짜 이야기를 들으려고 부단히 애썼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듣는 것이 삶과 연결된다고 말한다. 과거에 내가 들었던 말이 현재의 내게 도착해 나를 계속 듣는 사람으로 만든다. 책의 이름처럼 귀로 들어서 머리로 이해한 후 심장으로 삼키는 과정을 거쳐온 것 같다. 내가 지금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과거에 내가 들었던 수많은 말들이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쉽게 들리지 않는다는 말에 긍정하게 됐다. 그래서 듣는 일은 귀보다 마음이 하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는 잠시 멈추게 된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해야만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오히려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지, 어떤 의미와 언어를 읽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들려오는 말들도 있다. 때로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와 마주해야 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 앞에 서야 한다. 듣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자는 ‘들어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다르다고 말한다. 들어주는 것이 상대의 말을 받아주는 일이라면, 듣는 것은 그 말과 나 사이에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가깝다. 듣는 것은 답을 주고받으며 호흡하는 일이다. 상대의 말에 즉시 답을 내놓기보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말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까지 살피는 일이다. 귀로 들리는 말뿐 아니라 눈동자의 방향과 표정, 침묵과 현장의 공기까지 읽어내는 것. 듣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필요로 할때도 있다.


책은 잔잔하게 이어지다가 뒤로 갈수록 감정이 터지며 격해지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저자에게 듣는다는 것은 소통의 기술을 넘어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들어보기로 했다. 듣는 사람의 위치에서 이 불완전함을 마주해보기로 한다. 온전히 변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들으려는 노력을 반복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오히려 빛났다.


바깥에서 내면으로 돌아오는 이 '듣기'의 본질은 그 사람의 삶을 내 안에 잠시 머물게 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내가 나로 가득 차 있으면 남의 말 같은 건 담을 수 없다. 내 삶이 무거운 것처럼 남의 삶도 무겁기에, 듣고자 할 때는 내 삶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가진 생각과 판단을 잠시 밀어내고 다른 사람의 삶이 들어올 자리를 만드는 일. 당장 무언가를 해결하지 못하고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잠시나마 나를 넓혀가는 일이다. 내가 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원 배달 톡 :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
박현숙 지음, 윤세정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무심코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그때는 정말 간절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소원이 된다면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아이들이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작품에서 소원은 무언가를 이루어 주는 마법에 그치지 않는다.

진경은 어릴 때 학교에 가기 싫어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소원’을 빈 적이 있다. 주의 사항을 잘 읽어보라는 말이 있었지만, 당시의 진경에게는 소원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그렇게 무작정 빌어 우체통에 넣은 소원은 오랫동안 잊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선생님이 된 진경에게 어느 날 ‘늦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조각 케이크 기프티콘이 도착한다.

선생님이 된 진경은 어느 날 시온이 학교에 나오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교장 선생님인 아버지와 시온의 어머니가 이유를 묻지만, 진경 역시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시온의 앞에 설 때마다 의문의 소리가 들려오고,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를 따라 말하게 된다. 상황은 점점 복잡해진다. 선생님이 학생을 차별한다는 소문까지 퍼지고, 가율과 가온은 절교하기에 이른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진경에게는 어느 것 하나 쉽게 수습할 수 없는 일들뿐이다.

사건의 진실은 뒤늦게 이루어진 소원에 있었다. 어린 시절 진경이 빌었던 소원이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소한 소원은 뜻밖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학생들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오래전 스쳐 지나간 소원이 현재의 진경을 가로막은 것이다. 학교를 가기 싫었던 그때의 마음은 이미 사라졌음에도.

이 이야기는 소원을 함부로 빌지 말라는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말을 하고 감정을 느낀다. 좋아하던 일이 어느 순간 귀찮아질 수도 있고, 싫었던 일이 다시 좋아질 수도 있다. 그때의 감정은 분명 진짜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순간의 감정을 너무 쉽게 ‘소원’으로 전환한다. 지금 싫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지기를 바라고, 지금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진경이 어린 시절 무심코 빌었던 소원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소원을 빌기 전에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어쩌면 소원을 이루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내가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다행인 소원도 있을 것이다. 그 무심코 빌었던 소원이 시간이 지난 후, 내 마음이 변한 뒤에도 나를 따라올수도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