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배달 톡 :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
박현숙 지음, 윤세정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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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무심코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그때는 정말 간절했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소원이 된다면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아이들이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작품에서 소원은 무언가를 이루어 주는 마법에 그치지 않는다.

진경은 어릴 때 학교에 가기 싫어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소원’을 빈 적이 있다. 주의 사항을 잘 읽어보라는 말이 있었지만, 당시의 진경에게는 소원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그렇게 무작정 빌어 우체통에 넣은 소원은 오랫동안 잊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선생님이 된 진경에게 어느 날 ‘늦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조각 케이크 기프티콘이 도착한다.

선생님이 된 진경은 어느 날 시온이 학교에 나오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교장 선생님인 아버지와 시온의 어머니가 이유를 묻지만, 진경 역시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그런데 시온의 앞에 설 때마다 의문의 소리가 들려오고, 진경은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를 따라 말하게 된다. 상황은 점점 복잡해진다. 선생님이 학생을 차별한다는 소문까지 퍼지고, 가율과 가온은 절교하기에 이른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진경에게는 어느 것 하나 쉽게 수습할 수 없는 일들뿐이다.

사건의 진실은 뒤늦게 이루어진 소원에 있었다. 어린 시절 진경이 빌었던 소원이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소한 소원은 뜻밖의 오해를 불러일으켜 학생들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오래전 스쳐 지나간 소원이 현재의 진경을 가로막은 것이다. 학교를 가기 싫었던 그때의 마음은 이미 사라졌음에도.

이 이야기는 소원을 함부로 빌지 말라는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말을 하고 감정을 느낀다. 좋아하던 일이 어느 순간 귀찮아질 수도 있고, 싫었던 일이 다시 좋아질 수도 있다. 그때의 감정은 분명 진짜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순간의 감정을 너무 쉽게 ‘소원’으로 전환한다. 지금 싫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지기를 바라고, 지금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진경이 어린 시절 무심코 빌었던 소원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소원을 빌기 전에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어쩌면 소원을 이루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내가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때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다행인 소원도 있을 것이다. 그 무심코 빌었던 소원이 시간이 지난 후, 내 마음이 변한 뒤에도 나를 따라올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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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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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주혜 리의 《비밀의 들판》은 가족에게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역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기 위해 시작한 여정은 어느 순간 아버지가 완성하지 못한 과업을 이어가는 일이 된다. 아버지가 품었던 질문은 어느 순간 저자의 질문이 되었고, 저자는 할아버지 ‘이철하’의 생애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철하의 삶은 한 가족의 역사에 머물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의 동맹휴학과 서대문형무소 투옥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과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독재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한국사의 격동과 맞닿아 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한 시대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0여 년에 걸친 추적은 쉽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탐사 보도와 구술사, 1차 사료를 확인하고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기록을 찾는 일도 어려웠지만, 할머니가 오랫동안 함구했던 기억에 다가가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할머니에게 남편은 생존을 위해 덮어두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가 할아버지를 독립운동가 이철하가 아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었기에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의 기록을 지우고, 그의 이름을 감추고, 그에 대한 기억마저 묻어두어야 했을 테니까. 그렇게 할아버지의 이름은 남았으나 그의 생애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었다.

그래서 저자가 “왜 그 괴로운 일을 알고 싶냐”는 할머니에게 과거를 이해하고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설득하는 장면은 중요하게 다가온다. 저자가 알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만은 아니었다. 왜 그는 독립운동가가 아닌 ‘공산주의자’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 이름 뒤에 가려진 삶은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한 사람에게 씌워진 낙인을 걷어내고, 그 안에 있던 한 인간의 삶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조상의 부와 명예를 자신의 자랑으로 내세우지만, 모든 가족의 역사가 자랑할 수 있는 것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억은 너무 아파서 말하지 못하고, 어떤 과거는 살아남기 위해 숨겨야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감춰진 이야기는 어느 순간 가족 안에서 ‘비밀’이 된다. 살아남기 위해 비밀에 붙여두었던 과거를 다시 꺼내어 들여다보는 일은, 어쩌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삶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저자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뿌리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복원하는 가족사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한 사람의 여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만 남기기 쉽다. 훌륭했던 조상, 성공했던 순간, 자랑스러운 가문의 이야기는 기억하고 싶지만, 가족에게 상처를 남긴 사건이나 감추고 싶었던 과거는 외면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렇게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순간, 뿌리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을 수 없다.

그래서 《비밀의 들판》이라는 제목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곳에 묻혀 있던 것은 단순한 가족의 비밀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말해지지 못했던 한 사람의 삶이었고, 그 삶을 둘러싼 시대의 기억이었다. 가족에게 그 과거는 오랫동안 수치였을 수도 있고,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숨겨야 하는 위협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20년에 걸쳐 그 비밀을 추적한 끝에 마주한 것은 전혀 다른 이름이었다. ‘반역자’로 기억되던 사람은 훗날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다. 가족에게 숨겨야 할 과거였던 그의 삶이 다시 역사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저자가 찾은 것은 할아버지의 명예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왜 그토록 그 역사를 알고 싶어 했는지, 가족이 왜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역사 위에 서 있는지를 함께 알아갔을 것이다. 이 책에서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과거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기억과 가족이 오랫동안 감춰온 상처까지 마주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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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노은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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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까. 슬픔, 분노, 기쁨처럼 이름이 분명한 감정은 비교적 다루기 쉽지만,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해야 할지도 쉽지 않다. 때로는 무엇 때문에 힘든지조차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쉽게 설명하지 못했던 모호한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마음을 구체화하는 과정은 단순히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일은 결국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름 없이 웅크리고 있던 감정을 하나씩 들여다볼 때, 비로소 나와 관계를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방법이 아니다. 책은 ‘요즘 어때?’라는 질문에 습관적으로 ‘괜찮아요’라고 대답하기 전에 잠시 멈춰보라고 말한다. 단 5초라도 지금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 목과 어깨의 긴장이나 배의 불편함처럼 몸에서 나타나는 신호를 먼저 살펴볼 수도 있다. 하루를 마치며 ‘오늘 기분을 잘 모르겠다’라고 적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정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이 올라오면 가장 먼저 ‘내가 예민한가?’, ‘내가 잘못했나?’라고 묻는다. 하지만 감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한 대상이라기보다 현재의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신호에 가깝다. 서운함이 생겼다면 왜 서운한지, 불안하다면 무엇이 불안한지 살펴보는 것이 먼저다. 감정을 없애거나 억누르기보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태도는 중요하다. 책은 트라우마를 다룰 때 먼저 평가하기보다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당시 느꼈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며, 사실과 해석을 구분해볼 것을 이야기한다. ‘이별했다’는 사실과 ‘나는 버림받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에 일어난 사건보다 그 사건에 덧붙인 해석 때문에 더 오랫동안 고통받는다. 그래서 과거를 다시 바라본다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경험에 붙어 있던 해석을 다시 살펴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구분하면서,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바라본다.

윌프레드 비온이 말한 ‘소극적 능력(Negative Capability)’은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태를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고 견디는 힘을 뜻한다. 우리는 불안할수록 빨리 답을 찾고 싶어 한다. 상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이 관계가 무엇인지 당장 결론을 내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때로는 그 결론을 서두르는 것이 오히려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마음에 즉시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충분히 바라보고, 머물러보고, 때로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인정하는 것. 그렇게 모호함을 견디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마음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그렇게 해석했던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니면 타인의 기대를 내 욕망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질문을 통해 타인의 목소리를 하나씩 걷어내다 보면 비로소 그 아래에 있던 나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마음을 위로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괜찮다고 다독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내가 왜 힘든지,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그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천천히 살펴보게 한다. 빠르게 변하고 복잡해지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운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막연한 위로보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름 없는 감정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하며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마음의 모양을 보여준다. 타인이 붙여준 이름에 갇혀 있지는 않았는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이라면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고 조금 더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일이 아닐 것이다. 때로는 이름을 붙이고, 때로는 잘못 붙은 이름을 떼어내고, 때로는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을 조금 더 기다려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무엇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복잡한 마음을 단순히 달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이해할 수 있도록 곁에서 언어를 건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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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의 가성비 - 대한민국, 누가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
정욱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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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과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종종 등장하는 용어다. 그러나 그 의미와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은 오랫동안 진영 간의 소모적 공방과 정쟁의 도구로 소비되어 왔다. 자주국방을 강조하면 한미동맹을 경시하는 것으로, 반대로 동맹을 중시하면 자주국방을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식이다. 그 사이에서 정작 우리가 어떤 국방을 표방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반세기 넘게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자주국방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자주국방의 가성비》는 이러한 문제를 정치문제가 아닌 비율과 효율이라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인구절벽, 재정적 한계, 지정학적 대변동과 같은 복합적 위기 속에서 국방을 군사력 증강이 아닌 민생과 국가 재정 그리고 안보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문제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한국 안보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을 내린다. 2003년부터 2025년까지 천문학적 국방비를 지출했음에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에 대해 분석하며 단순하게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으로는 국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군 내부의 육군 중심 기득권 구조와 지휘구조 개편에 대한 저항, 무기체계와 병력 운용의 비효율성, 여기에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맞물리면서 국방 개혁이 번번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특히 저출산으로 인한 병력 절벽 상황에서 형식적인 경계근무나 비효율적인 병력 운용을 개혁하고 과학화 첨단화된 국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현재 한국이 직면한 현실을 생각하면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하다.

이 지점에서 책이 던지는 질문은 ‘얼마나 강한 군대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한정된 국가 자원으로 어디까지의 안보를 확보할 것인가’에 가깝다. 국방비 역시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에서 나오며, 병력과 예산을 국방에 투입하는 만큼 복지·교육·산업·저출생 대응 등 다른 국가적 과제에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든다. 따라서 국방력의 강화가 곧 무조건적인 국방비 증액을 의미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자원으로 가장 효과적인 전력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성비’라는 문제의식 자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자주국방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을 얼마나 투자했으며, 그 투자가 실제 안보 역량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를 따져보자는 저자의 문제 제기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하지만 책의 대안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효율성을 높이는 것과 안보의 목표 자체를 낮추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고 국방의 범위를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축소하자는 제안은 현실적인 충돌을 줄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일 수 있지만,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체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에 관한 헌법적·안보적 관점과 충돌할 여지가 크다. 특히 유사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이 군사분계선 이남에서 끝날 것이라고 전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방어해야 할 공간과 국가의 전략적 목표를 먼저 축소한 뒤 그에 맞춰 국방력을 계산하는 방식이 과연 ‘효율적인 자주국방’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핵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비핵화 무음 처리’와 핵 동결을 전제로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구상은 당장의 긴장을 낮추고 현실적인 평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핵 동결을 평화의 조건으로 받아들인다면, 대한민국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장기간 공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핵무기를 가진 쪽과 그렇지 않은 쪽 사이의 비대칭성이 그대로 남는다면, 그것을 ‘평화’라고 부르기에는 해결되지 않은 안보 불균형이 너무 크다. 평화를 위해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현실을 이유로 위협 자체를 감수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결국 책의 핵심적인 한계는 ‘가성비’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비용으로 보고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에 있다. 국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지켜야 할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목표 자체를 낮추는 것은 다르다. 전자가 국방개혁이라면 후자는 자칫 국방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리 효율적인 군대라 하더라도 지켜야 할 국가의 범위와 감수해야 할 위협의 수준을 지나치게 낮춘다면, 그것은 ‘적은 비용으로 더 강한 국방’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국방의 목표를 낮춘 것’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구체적인 해법에는 동의하기 어렵더라도 지금까지 자주국방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다시 질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로 병력이 줄어들고 국가 재정의 부담은 커지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국방을 유지할 수는 없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얼마를 투입할 것인지, 어떤 군사력이 실제로 필요한지, 그리고 한미동맹과 자주국방을 어떤 방식으로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결국 자주국방의 해결책은 무조건 더 많은 돈을 쓰는 데 있지도, 반대로 돈을 적게 쓰는 데 있지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안보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그 목표를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저자가 제시한 ‘자주 국방의 가성비’에 동의하기 어렵다면 질문은 더 선명해진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자주국방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과 그에 따른 대답은 이 책이 남기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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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짬뽕과 말러 교향곡 5번 특서 청소년문학 49
탁경은 지음 / 특별한서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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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고 또 자신이 비교대상이 되곤한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 더 특별한 사람, 더 인정받는 사람을 바라보며 비교 대상에 올린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삶'을 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보다 낫거나 더 괜찮아 보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여름짬뽕과 말러 교향곡 5번』은 그 당연하게 여겼던 마음에 질문을 던지는 청소년 소설이다.

이 책은 특별한 사건으로 열어가지는 않는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말을 건네는 등나무, 여름날의 짬뽕, 그리고 말러의 교향곡처럼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을 조합하여 '성장'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이야기는 독특한 설정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주인공의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비춰 주는 세상이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등나무가 들려주는 '기다림'의 의미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은 배우면서도 정작 자신을 기다리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조금만 늦어도 실패라고 여기고, 조금만 부족해도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그러나 등나무는 씨앗이 수십 년, 때로는 백 년을 기다리듯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방식이다.

그 기다림은 자연스럽게 용기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세상은 쉽게 "용기를 내라"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결심 하나를 하기 위해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그래서 "죽어라 도망만 치고 싶다"는 주인공의 고백은 나약함이 아니라 너무나 현실적인 마음으로 다가온다. 작품은 도망치고 싶은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을 충분히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직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장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품은 채 한 걸음을 내딛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작품은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인상적이다. 우리는 흔히 이해가 관계의 출발이라고 생각하지만, 소설은 "이 세상은 이미 너와 다른 사람들로 꽉 차 있어"라고 말하며 그 믿음을 뒤집는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사랑하게 되면 이해되지 않는 것조차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해가 사랑의 조건이 아니라 사랑이 이해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역설은 이 책의 독특한 제목과 맞닿아 따뜻한 시너지를 뿜어낸다.

친구들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웠다는 고백 역시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소중한 사람이 생길수록 잃을 가능성도 커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 관계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먼저다. 그래서 관계를 피하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작품은 우정이란 드러난 마음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쉽게 꺼내지 못한 마음까지 함께 보듬는 일이라고 말한다. 결국 상처받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보다 상처를 감수하면서도 다시 사람에게 다가가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서 다시 시작된다.

특별함보다 고유함을 선택하는 순간, 비교는 더 이상 삶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누군가보다 뛰어나야 하는 삶이 아니라 나답게 존재하는 삶인 것이다. 성장의 끝에서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청소년 성장소설이면서도 동시에 어른들을 위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소설은 서두르지 말라고 말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오래 기다려 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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