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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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커머스에서 판매된 옷을 리뷰하는 유튜브 영상, 이른바 '테무깡'과 '쉬인깡'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은 영상을 보고 저렴한 옷을 구매하고 또 다른 영상에서 새로운 옷을 발견하며 끊임없이 소비한다. 이 현상은 ‘울트라 패스트패션’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 유행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바로 버려진 옷이다. 《헌옷추적기》는 그 버려진 옷의 행방을 추적하며 패션 산업의 그림자를 낱낱이 드러낸다.


책은 세 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첫째, 한국은 세계 헌옷 수출국 4~5위라는 사실. 둘째, 국내 헌옷의 이동 경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셋째,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 헌옷이 현지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자는 직접 헌옷에 스마트태그를 부착하고 위치를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우선, 서아프리카 가나 아크라의 해변은 헌옷으로 가득하다. 해변의 200m 높이 절벽은 쓰레기산이며, 매주 1,500만 벌의 중고의류가 들어오지만 그중 40%가 곧바로 폐기된다. 현지에서는 이를 ‘죽은 백인의 옷’이라 부른다. 빠르게 변하는 패션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저렴하고 품질이 낮은 옷이 쏟아지고, 결국 재고와 헌옷은 소비자의 손에 돌아가지 못한 채 쓰레기산으로 향한다. MBZ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년에 1억 톤의 의류가 생산되고, 생산된 옷 4벌 중 3벌은 헌옷의 무덤에 쌓이며 남미와 아프리카의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해마다 약 30만 톤의 헌옷이 수출되지만, 통계에는 허점이 많아 정확한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어렵다. 외신 보도는 주로 유럽과 미국의 헌옷 사례를 다루고 있고, 국내에서 동일한 방법을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에 저자는 국제탐사보도 콘퍼런스에서 들은 외국 기자의 사례를 참고해 한국 헌옷의 실제 행방을 추적하기로 한다.


그렇게 추적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기부받은 헌옷에 스마트태그를 부착하고, 국외로 이동하는 동안 신호를 기다렸다. 옷이 해외로 나가는 데 최소 한 달 반 이상 걸리고 기술적 한계로 추적이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막연하고 초조했다.


두 달이 지난 후, 153벌 중 30%가 해외에서 발견됐다. 말레이시아, 인도, 페루 등 동남아시아와 남미에 주로 분포했으며, 일부는 중고의류 수입금지국에서도 발견되었다. 대부분은 민간 영역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 수출되지 않은 나머지 헌옷은 소각되거나 매립지로 향했다. 특히 인도에서는 재활용 목적 일부 판매가 이루어지지만 상당량은 품질과 상관없이 소각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대기 오염은 주변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며, 일자리 창출과 건강의 균형이 맞바뀌는 현상을 보여준다. (재활용 공장이라 부르고 표백이라 말하는..)


책은 데이터나 문장을 나열하지 않는다. 현장 사진과 글자를 통해 소비자에게 돌아오지 못한 헌옷이 사람들의 삶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값싼 옷 뒤에는 노동착취와 인권 침해가 숨어 있으며, 경제적 효율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유럽에서 논의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국내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저자는 정부의 적극적 정책 마련,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그리고 소비자의 ‘오래 입기’라는 작은 실천까지, 모두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기 좋은' 구호에만 머물지 않고 패션 산업 전체에 대한 성찰과 행동을 요구한다. 《헌옷추적기》는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입고 버리는 옷과 직결된 현실임을 직면하게 만든다. 오늘 내가 입은 티셔츠 한 장, 그 속에 숨은 환경과 노동의 그림자를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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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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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조선의 한양과 오늘의 서울에 관한 이야기인지, 혹은 한국 미술사의 변화를 따라가는 여정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어린 시절 피아노와 바이올린, 성악, 발레, 한국무용, 미술, 가야금, 장구까지 거의 모든 예술 교육을 경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예술적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씩 내려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고 싶어 대학원에 왔고, 예술과 사상을 공부하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았다. 근대 미술을 향한 애정과 현대 미술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예술가들을 만나며 스스로도 용기를 얻었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다.


도시와 그림이 포개지는 한겹. “도시는 시대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이 달라진다.” 사라지는 풍경에는 도시의 변화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음을 토로하는 슬픔도 스며 있다. “치열한 도시 속에서의 오늘이 괴로웠다면 지나간다고 다독여보고, 어제가 아쉬웠다면 새로운 날을 기대해본다.” 책은 이렇듯 묵묵하게 오늘과 어제를 잇는다. 예술가들의 작품에는 열정과 냉정, 분투하는 도시의 공기가 모두 녹아 있다. 저마다의 사정과 마음이 드러나 있어서인지 그림은 더 풍부한 색채로 보인다. 특히 작가 인터뷰가 함께 실려 있어 작품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림이란 풍경만 담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와 개인의 일생까지 품어내는구나 싶었다. 과감하고 의도적인 붓질, 사랑하는 도시의 불빛을 기억하는 마음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일정한 테마 아래 서로 대화하듯 배치된 두 점의 그림, 그에 얽힌 설명과 작가의 일화는 시대와 예술의 서사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만든다. 내면의 욕망, 시대의 핍박 같은 것들이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특히 나혜석의 <자화상>처럼 시대를 흔들어놓은 이들의 용기도 오래 남는다. 이름조차 몰랐던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들의 시대적 낭만과 계절감을 따라가는 일이 즐거웠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히 만족할 만한 책이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지 않지만, 한국 인구의 절반이 살아가는 도시의 하늘은 어떤 모습일지 종종 궁금하다. 이 책은 서울을 중심으로 풍경과 이야기를 펼쳐놓는데,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한 면모가 사실은 내게 조금 먼 세계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속하지 않은 공간을 다루고 있기에, 작품 속 도시를 바라보는 감각도 어쩐지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아주 조용하고 작은 소외감이 스며들었다. 마치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풍경 앞에 나만 한 발 떨어져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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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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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힘을 잃었다. 그 말이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민주주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좋아지게 하려면 필요하지만, 우리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그 체제는 정당성을 잃기 때문이다. 삶을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삶이 희생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 간단하면서도 기본적인 문장은 지금 한국 정치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양 정당, 어느 쪽도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당들은 이름을 바꾸고 구호를 바꿨지만, 정치의 방식은 몇 년 전과 다르지 않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지지층의 안전지대, 즉 팬덤 정치에 의존하며 변화의 책임을 회피한다. 여대야소의 상황이든 여소야대의 상황이든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약자를 위한다는 말은 공허했고, 정치는 불공정 논란과 보복의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을 더 지치게 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정당조차 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원칙도 잊힌 채 극단주의자의 큰 목소리만 정치의 무대 위로 올라왔다.

책은 2024년부터 연재된 칼럼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다시 작동할 수 있을지 분석한다. 과반 득표 실패, 중도, 보수의 이탈, 공포 마케팅에 의존한 선거 구도 등 정치가 작동을 멈춘 여러 징후를 짚어낸다. 검찰이 정치 문제를 대신 판단하게 된 상황은 정치 기능의 부전이 어떤 헌정 위기를 낳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등장한다. 미디어의 양극화와 혐오의 일상화, 정책 실종, 막말과 흠집 내기로 소비되는 정당정치의 현실 역시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하지만,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균형감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제목은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지만 실제로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수에 대한 지적은 분명하고 날카롭지만, 진보에 대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민주당 역시 왜 과반 지지에 실패했는지, 어떤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지에 대한 진단이 깊게 다뤄지지 않았다. 양 정당 모두에 실망한 독자의 시선에서 본다면, 책의 관점이 어느 정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정치는 약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쓰여야 한다. 그러나 정당들은 울타리 안의 지지층이 원하는 어젠다에 집중한 나머지 외연 확장보다는 왜소화의 길을 선택했다. 타협과 포용, 연대로 세상을 바꾸던 정치의 힘은 사라지고, 열성팬 정치와 포퓰리즘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견을 존중하고 대안을 두고 경쟁하는 장”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공간도 위축되고 말았다.

이 책은 한국의 정치가 왜 망가졌는지 돌아보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진짜로 ‘좋은 정치’를 이야기하려면 어느 쪽의 편에 서 있다고 의심받지 않을 만큼의 깊이와 균형이 필요하다. 지금의 한국 정치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그 지점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을 위한 정치야말로, 정치의 기본이며 '좋은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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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 도깨비 편의점 2 특서 어린이문학 13
김용세.김병섭 지음, 글시 그림 / 특서주니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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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정말 궁금했다.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적인 요소가 이야기 속 메시지와 잘 섞여 있어서 읽는 내내 정말 흥미로웠다. 마치 그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 책은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후회의 시간을 되돌려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건네준다. 나 역시 학창시절 거절당한 기억 때문에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현서나 선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그때 나에게도 이런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서와 선우는 외롭고 상처받은 아이들이다. ‘둘이서라면’이나 ‘무지개 색연필’ 같은 도구는 아이들에게 특별했다. 하지만 엄청난 마법으로 인한 효과 보단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도구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도구가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으니까. 나에게는 그런 마법의 아이템은 없었지만, 용기를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느꼈다. ‘변화는 내가 시작하는 것부터’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환상과 현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세계관에 있다. 비형이라는 인물의 과거가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어둠 속에서도 끝내 빛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무지개 색연필’에서 진정한 연결이 이루어지는 장면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야기의 대상은 아이들이지만, 읽다 보면 어른인 나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작은 상처와 두려움이 있으니까. 그래서 이 책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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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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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제목부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 받았다고? 판타지 소설인가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넘겨보니 저주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구성했던 이야기에서 비롯된 일들을 저주라 치부하며 그 벽장에 자신을 가둔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소설을 소개하는 글 중에 "내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지 않는 법, 그것은 내가 속한 세상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외려 저주 속에 머물다 보면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둠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외부의 적이 있어야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환각이라 할지라도 그 거짓말이 사람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저주받은 희망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죄책감이 만들어낸 결과가 어떤 모습일까. 그 위험한 희망이 축복인지 더 큰 저주인지에 대한 답은 이 책 속에 있다.

이 이야기는 정말 사소한 저주에서 시작된다. 한 초등학생에게 해리포터에서 저주받은 것처럼 우식 또한 저주받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인생의 고민이 탈모에 국한되어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근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단하게 악착같이 살아가야 겨우겨우 유지할 수 있는 삶이었다. 어린 시절 생각했던 역사적 사명?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해나 안 끼치고 살면 다행이지 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런 우식에게 어쩌다 세 번의 자가 격리 명령이 떨어지며 의도치 않게 폐를 끼쳤다. 바이러스 취급을 당하며 사회적 낙인을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우식은 휴식 기간 여러 가지 일을 하던 중 휴먼북인 <휴먼북 조기준>이라는 책을 읽게 된다. 격리 전문가 조기준? 이보다 더 시의적절한 책은 없는데, 왜 최저가 할인 북 코너에 분류된 걸까? 그렇게 열람하게 된다. 소년의 과거와 우식의 현재가 교차하며 뭔가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는 가전 수리 서비스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 마태공과 함께 온라인상의 흑역사를 지워주는 디지털 세탁소 ‘더 빨래’를 운영하고 있다.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늘 윤리적이지는 않았고, 공공의 선에 부합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때론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일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기도 해서 그것을 외면하고 이득을 얻기도 한다. 결국에는 이 세탁소가 향하는 길이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명으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어딘가 어색한 조기준의 이야기, 마태공 선배의 전국 각지 사과 소동이 벌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저편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나갈 퍼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길을 벗어날 용기가 없던 우식에게 사실 팬데믹이라는 위기는 ‘변화의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소설은 질병에 얽힌 사람들과 과거의 죄책감에 대한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어 더욱 흥미를 유발한다. 비극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잘 팔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처럼 자극은 언제나 손쉬운 선택지다. 나도 그와 같은 글을 써보려 시도도 해봤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서 우러나지도 않았고 손끝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내가 쓰려고 했던 건 자극적인 것에 반응을 유도하는 글이 아니라 나의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을 담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누군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자극적일까. 그래서인지 소설은 무엇이 진실인지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실 소설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우리가 그 어두운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 사실에 대해 불편해하며 외면하는 척하면서도 끝내 그 이야기의 전말을 알고 싶어 하는 우리의 모순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때론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의 휴먼북은 어떤 모습일까. 등급에 따라 나눠져서 조금은 충격을 먹을 테지만 나의 휴먼북이 살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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