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주문 - 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개정증보판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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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성 혹은 젠더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을 마주할 때, 긴장감이나 피로감이 느껴지곤 한다. 꼬투리를 잡아 상대가 항복을 외칠 때까지 비난을 끝내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 <출근길의 주문>을 펼쳤을 때, 첫인상 역시 다르지 않았다. 책의 어떤 문장들은 날이 서 있고, 때로는 강한 어조로 순간적으로움찔하게 만드는 지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이 책의 본질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오래 일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이유는 수많은 선배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남성들과는 다르게 여성들에게는 롤모델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조직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연차가 쌓였을 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고 하나 여성들이 결혼하면 출산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는 여성 선배와 동료들을 지켜봐 온 저자의 안타까움이 여기에서도 느껴졌다.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아등바등 버티다가 지치는 이들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의 강한 어조이었다.

처음엔 성별로 구분하는 문장들에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현실 속에서 출산 휴가를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여성 선배를 떠올리자, 책의 메시지가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여성이라는 단어보다 메시지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였다. 사실 현대 사회는 지적하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이 책이 사회 선배로서의 조언으로 보였다. 사회 초년생부터 후배를 둔 직장인이 모두 해당할 것이다. 책에서는 일터에서 나약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자립하기 위한 기본 예절과 실전 대처법을 다루고 있다. ‘예의를 차리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면서도 무례하지 않은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미움 받지 않기 위해 또, 튀지 않기 위해 과도한 쿠션어를 남발하곤 한다. 누군가 알아채 주길 바라는 모호한 암시는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좋지 않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언어 습관을 과감히 걷어내고, 내 뜻을 명확하게 전달하되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태도를 갖추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바로 조직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의견을 내는 당당함이 무례함이나 꼰대 짓으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구하지 않은 가르침은 그저 자기 자랑이나 잔소리에 불과하다는 말과 입은 무겁고 뒤탈은 없어야 비로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나도 힘들었으니, 너도 당해봐라." 식의 옹졸한 마음 대신, 평범한 개인들이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나로서 내 삶의 키를 꽉 잡는 것, 쓰임을 위해 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것. 오늘도 출근길의 주문을 외우며, 우리는 일터에서 한 뼘 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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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일에게 (청소년판) - 숨이 막힐 때 주문처럼 특서 청소년문학 47
김선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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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다정했으면 좋겠다. 설령 다정스러움을 배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내일이나 마찬가지인, '내일'의 아이들에게 다정함을 베풀면 얼마나 좋을까. 김선영 작가의 장편소설 <내일은 내일에게> 속 아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위태로울 만큼 비정하다. 살아내는 것 자체가 속도가 나지 않는 ‘저지대’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은 자신도 위태로움을 느낀다. 목적의식 없이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이 잔인한 세계에 작가는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작위적인 구원 대신 누군가의 다정함을 조금씩 밀어 넣는다. 비록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그 다정함이 곁에 존재한다면, 오늘을 겨우 버텨낸 아이들도 마침내 다가올 내일을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이 작은 온기가 비정한 현실을 ‘회복’의 가능성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소설이 비추는 공간은 햇빛이 들지 않는 '저지대'다. 재개발도 비껴간 동네. 주인공 연두가 살아가는 이 낙후된 동네는 주변과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결핍이 대물림 되는 현실도, 앞이 막막한 미래도 연두에겐 달갑지 않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 속에서도 연두는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것도 멈추지 않는다. 변화는 뜻밖의 공간에서 시작된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카페 이상'에서의 아르바이트에서부터다.

바깥의 세상과는 다르게 부드러움과 달콤한 향기가 퍼지고, 사장님의 손에 의해 따뜻한 온기가 내려지면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린다. 이전과는 달라진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니 혼자인 것 같았던 저지대의 밤이 다르게 보였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이 부드러운 완충지대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커피를 내리는 행위는 단순히 음료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나와 타인의 세상을 조율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온전히 초점을 맞추는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통해 누군가의 세상을 본다는 건, 타인에게만 맞추어지던 시선이 마침내 내 안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다. 아마 연두는 이상 카페의 사장님처럼 다정함을 가득 품고 있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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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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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처음 마주한 타인과 인사를 나눈 직후, 정적을 깨는 질문은 정해져있다.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일수도 있지만 우리사회에선 그렇게 사용되지 않는다. 대개 나이는 관계의 방향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좌표'이기 때문에 호칭 정리를 위한 '질문'으로 사용되곤 한다. 나이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말을 놓을지 높일지, 상대보다 앞서 걸어야 할지 뒤에 서야 할지를 정할 수 있는 규칙은 사람 그 자체보다 '숫자'에 먼저 집중하게 만든다. 『나이 묻는 사회』는 바로 이 익숙한 장면에서 출발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나이라는 지표가 어떻게 우리 삶을 규제하고 차별의 근거로 변질되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책은 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나이에 대한 시선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봐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다. 서른 해의 간격을 넘어 친구가 되는 일은 가능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나이가 관계의 시작에 앞서 확인되어야 할 우선순위가 되는 순간, 우리는 한 사람을 온전히 마주할 기회를 잃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잇값'이라는 단어는 사실 무서운 언어다. 이는 본래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표시하는 유연한 지표여야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을 재단하고 구속하는 틀로 작동한다. 이 보이지 않는 규범은 전 연령대에 걸쳐 멸칭을 만들어내며 서로를 향한 치열한 '나이 전쟁'을 부추긴다. 생애 주기를 따라다니는 이 멸칭은 혐오의 언어로서 유머로 소비되며 사회에 수용된다. 그러나 혐오는 유머가 될 수 없다. 특정 연령대를 뭉뚱그려 비하하는 표현들은 차별적인 관행과 제도로 이어지며, 결국 우리 모두를 그 연령대에 걸맞은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몰아넣는다.

우리 사회는 마치 인생이라는 도로 위에 보이지 않는 '속도 제한' 표지판을 세워둔 것 같다. 서른에는 무엇을, 마흔에는 어디쯤을 통과해야 한다는 압박은 "이 나이에는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가혹한 채찍질이 된다. 이러한 사회적 기대는 개인의 고유한 삶의 속도를 부정할 뿐이다. 획일화된 트랙 위에서는 그 무엇도 자유로울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불평등을 전제로 한 위계질서가 녹아 있는 한국어 체계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정해진 틀에 가둔다. 집단주의적 잔재는 'MZ세대'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로 수많은 청년을 하나로 묶어버리고, 행정 편의에 따라 그들의 호칭을 마음대로 바꿔 부르며 주체가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상대가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숫자의 높고 낮음으로 권력을 행사하려는 태도는 진정한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특히 이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두드러진다. 한 사람의 한 번의 발언이나 행동이 순식간에 'X세대의 전형', 'MZ의 특성'으로 일반화되고, 그렇게 형성된 고정관념은 실제 관계 속에서 편견으로 굳어진다. 우리는 어떤 세대의 대표자가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서사를 가진 개인이다. 커뮤니티의 목소리가 한 세대 전체의 목소리인 양 소비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가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이 묻는 사회』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다. 멸칭을 입에 올리기 전에, 특정 나이의 누군가를 고정된 시선으로 보기 전에,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묻는다. 이 책은 제도나 사회 구조를 바꾸기에 앞서, 오늘 내가 마주친 사람에게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먼저 다가가는 작은 실천을 권한다. 차별의 피해자인 동시에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이 순환을 끊는 첫 번째 걸음은 서로를 향한 태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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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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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은 불편함을 응시하고 체화하며, 노동과 노동자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책은 우리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모아 다양한 직업과 삶의 형태를 아우른다.

작가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의 청소 노동자를 이야기한다. 입구에서부터 감탄을 자아내던 웅장한 건축 양식, 기차역으로 만들어진 둥근 천장과 어디서든 인생 사진이 나오는 멋진 구조. 하지만 이 공간을 '일터'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순간 감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바다를 걸레질하는 것처럼 막막해 보이는 너른 면적에, 천문학적인 초고가의 사물들이 잔뜩 놓인 미술관은 노동자에게 잔인하고 까다로운 땀의 공간이었다. 작가는 얼결에 렌즈를 바꿔 끼우듯 여행자의 눈으로 입장해 노동자의 눈으로 퇴장했다. 고흐의 그림보다 청소 노동자의 뒷모습이 더 짙은 잔상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시선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그분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묵묵히 일하고 있을 텐데, 왜 굳이 노동의 고단함에 초점을 맞춰 동정 어린 시선으로 봐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며 그것이 섣부른 동정심이 아님을 깨달았다. 안 보일 때는 안 보이지만, 보이기 시작하면 너무나도 잘 보이는 우리 주변의 '그림자 노동'. 작가는 누군가에게 동정을 표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노동이 실은 얼마나 치열한 감각인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본 적이 없기에 완전히 스며들 수는 없었지만 그 감각만큼은 명확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시선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그분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묵묵히 일하고 있을 텐데, 왜 굳이 노동의 고단함에 초점을 맞춰 동정 어린 시선으로 봐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며 그것이 섣부른 동정심이 아님을 깨달았다. 안 보일 때는 안 보이지만, 보이기 시작하면 너무나도 잘 보이는 우리 주변의 '그림자 노동'. 작가는 누군가에게 동정을 표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노동이 실은 얼마나 치열한 것인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본적이 없기에 완전히 스며들수는 없었지만 그 감각 만큼은 명확했다.

이 책에는 살기 위해 일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생업'의 표정들이 담겨 있다. 작가는 그 사람들을 향해 '어떤 삶을 가치 있게 볼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살며시 던진다. 이 책은 그 단단하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연대이자 헌사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우리 곁의 어떤 뒷모습들이 오래도록 눈에 밟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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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비밀이야 특서 어린이문학 18
박현숙 지음, 김진아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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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비밀이야』는 ‘비밀’과 ‘고자질’의 경계를 다루는 내용이다. 좋게 말하면 솔직함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고자질쟁이일 수도 있다. 비밀은 ‘너만 알고 있어’라는 약속을 바탕으로 관계 속에서 둘만의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하는 순간 비밀은 더 이상 비밀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너만 알고 있어’라는 약속을 어기는 배신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로 인해 소외되고 비판받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정말 비밀이라면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누군가와 나눈 말을 타인에게 전하는 일은 그 신뢰를 가볍게 여기는 비겁한 행동처럼 보인다.

박현숙 작가는 어린 시절 스스로를 ‘고자질쟁이’였다고 고백한다. 한두 번의 고자질은 습관이 되었고, 그로 인해 친구들이 자신을 피하는 소외감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입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남에 대한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킬 건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 뿐만 아니라 관계 안에서 신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아이의 눈높이에서 찬찬히 풀어낸 그림책이다. 어른도 쉽게 정답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무겁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긴다. 비밀 하나를 둘러싼 작은 소동이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여지가 충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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