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산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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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연금술사>로 국내 인지도를 얻은 파울로 코엘료의 신화적 이야기. 실제로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만큼 종교적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 내면은 ‘인간’에 대한 얘기이므로 성경보다는 판타지+성장 소설로 바라보는 것도 좋은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종교라는 거부감 때문에 이 좋은 소설을 읽지 못한다니, 슬프지 않도록 조금 열린 마음을 갖는 건 어떠한가.

 

• 전반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엘리야가 사는 나라, 이스라엘. 국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이하며 국가 전체의 개종을 계획하는데, 기존의 기독교 세력(엘리야 같은 예언자들)이 걸림돌이 될까 봐, 기독교 세력을 전부 제거하기로 한다. 엘리야는 다행히 자신을 저격하려는 궁수로부터 도망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새 왕비의 나라였던 아크바르로 떠난다. 아크바르에서 어느 과부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자신의 영적 능력을 인정받아 나름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크바르에서 전쟁이 터지며 위기에 놓이자, 엘리야는 그제서야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힘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무너진 성벽이 우리 삶의 지평을 열고 우리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자각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인생을 그대로 살아내기로 했지요.” (305쪽)

 

 

• 성경, 특히 천사의 말은 지독히 이해하기 어렵다. <다섯번째 산>의 천사도 불친절한 말을 전하는데, 참된 기독교인이라면 의심 없이 따르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거다. 개인적으로 중학교 때까지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의구심이 들지언정 일단 따라야 하고, 결과가 좋지 않다면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시련이니 다시 이겨내면 된다고 배웠다.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순종을 배웠다. 소설 속 엘리야도 초반에는 천사의 말대로 고향을 떠나고 새로이 정착한 곳에서 천사의 말을 따라 사명을 착착 해낸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천사의 말이 점점 “네가 내 부탁을 들어주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에서 “네 일 정도는 네가 스스로 해야 한단다.”라는 태도로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 후반부 전쟁에서도 결말에서도 천사는 엘리야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하기를 바라고, 엘리야는 고뇌 끝에 자신의 판단으로 사건을 잘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결과, 소설 초반의 천사가 했던 말(예언?)이 이루어지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개인의 주체성이 매우 큰 역할을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 정말이지, 종교를 떠나서 생각해도 스스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명령을 받아 수행하기만 하는 자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자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건 그저 말이 잘 통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책을 마치며 나는 여태 수동적인 삶을 살았는지, 능동적인 삶을 살았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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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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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책들, 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전부 너의 다른 삶이야. 이 책만 제외하고. 이 도서관은 네 도서관이거든. 널 위해 존재하지. 사람의 삶에는 무수히 많은 결말이 있어. 이 서가에 있는 책들은 모두 네 삶이고, 같은 시간에 시작해. 바로 지금, 4월 28일 화요일 자정에. 하지만 이 자정의 가능성이 모두 똑같지는 않아. 비슷한 삶들도 있지만 아주 다르기도 해.”

“말도 안 돼요. 이것만 제외하고요? 이 책만?” 노라는 회색 책을 엘름 부인 쪽으로 내밀었다.

엘름 부인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래. 그 책만 제외야. 그건 네가 한 글자도 쓰지 않고서 쓴 책이지.”

“네?”

“네 모든 문제의 근원과 해답이 담겨 있는 책이란다.”

“이게 무슨 책인데요?”

“《후회의 책》이야.” (53~54쪽)

 

• 후회.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낄 불온한 감정. 간혹 그 감정은 스스로를 옥죄어 후회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선택을 하게 만든다. 이번 책의 주인공 노라 또한 연속적으로 맞이한 불행 속에서 죽을 택하고, 천국도 지옥도 아닌 도서관에 도착한다. 어찌 된 영문인지 예전 학교의 사서 선생님인 엘름 부인을 만나고, 그녀로부터 자신의 또 다른 인생을 담은 책을 받아 읽게 된다.

 

• 미국 아마존 장기 베스트셀러라 하여 읽어 보았다. 대중의 선택은 아무래도 공감과 따스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평행세계를 담은 책을 읽어가며, 지난 후회를 돌아보고 현재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책. 후회라는 공감대를 형성하여 독자로 하여금 책에 쉽게 몰입하게끔 했고, 전체적으로 따스한 톤이 자살을 선택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치고는 책 전체를 몽실몽실한 꿈을 꾸는 것처럼 만든다. 그러나 후회를 다루는 무게가 아쉬웠다. 책 제목처럼 자기 전에 가볍게 읽기에는 너무나 좋지만, 바꾸어 말하면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었다.

 

• 분위기나 설정 그리고 평행 세계를 담은 책이 등장하는 점에서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 <어바웃 타임>을 제작한 영화사에서 영상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액션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가족의 사랑을 평행 세계의 형태로 보여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굉장히 합이 잘 맞은 것 같은 생각은 나만 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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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 Flow -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최인수 옮김 / 한울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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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생각은 옅어지고 시간은 금세 흐른다. 그리고 그 집중력만큼 일을 처리하는 효율이 오르고, 결과도 좋아질 것이다. 그런데, 그 집중이라는 거, 의도적으로 꺼내 쓸 수는 없을까? 습관이 될 수 없을까? 저자는 그런 집중의 순간을 ‘플로우’라 부르며 플로우를 사용하기 위한 요령을 책에 풀어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 경험과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가 최적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의식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방법 또한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값지게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57ᄍᆃᆨ)

 

• 저자는 우리가 몰입(플로우)를 경험하기 위해서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1번, 명확한 목표. 2번, 즉각적인 피드백. 3번, 과제와 실력의 균형. 즉, 단순히 한다고만 해서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표가 있다고 한들 목표를 위한 수행 과제가 너무 쉬워서도 안 되는 모든 것이 다 적절히 갖춰진 상태여야 한다. 더군다나,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객관적이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몰입은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다. 마치 누구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며 부처와 같은 존재가 된다고 가르치는 불교처럼, 우리는 누구나 몰입할 수 있다.

 

“육체적·정신적 활동에 전념하는 정도에 대한 우리의 적잖이 왜곡된 태도를 잘 반영해주는 두 단어가 있다. 이것은 바로 ‘아마추어 amateur’와 ‘애호가 dilettante’라는 명칭이다. 오늘날에는 이 호칭이 다소 전문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의미하는 것처럼 와전되었다. 그러나 원래 ‘아마추어’란 말은 라틴어의 ‘amare’, 즉 ‘사랑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자신이 하는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하게 애호가‘도 ‘~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라는 라틴어 ‘delectare’가 그 어원으로, 특정 활동을 즐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254쪽)

 

• 하지만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저자는 저 두꺼운 양장본에 단순히 몰입이라는 스킬만 담아두지 않았다. 우리의 의식은 무엇인지, 행복과 즐거움과 쾌락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법은 무엇인지, 등등 철학적이고 심리와 연관된 통찰로 우리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책의 내용을 ‘몰입’ 위주로 요약하다 보면, 솔직히 저런 통찰들을 넣은 것이 지나치게 길고 방대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어차피 두꺼운 심리학책. 착실하게 돌아가며 읽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본다.

 

“우주 전체는 불문율로 서로 연관되어있다. 따라서 미래의 가장 유망한 신념은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우리의 꿈과 열망을 자연에 강제하려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깨달음에 기초한 것이 될 것이다. 인간 의지의 한계를 인식하고 우리가 우주 속에서 지배적이기보다는 협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마침내 고향에 돌아가게 된 유랑자의 안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4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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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의 피크닉 ㅣ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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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년 전, 외계인은 ‘잠깐’ 지구를 방문했다. 우리가 자동차 여행을 떠날 때, 잠깐 휴게소에 들르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그냥 목적지를 향하던 중 심심해서 피크닉(소풍) 겸 지구에 들렀다고 말한다. 그 방문에서 인류와 외계인의 접촉은 없었지만, 인류는 그들이 남기고 간 배설물 수준의 쓰레기를 얻기 위해, 오늘도 미지의 구역으로 향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현재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일들이 벌어지는 구역에 잠입하여 그들의 쓰레기를 밀반입하는 자들을 ‘스토커’라 부르기로 한다.

 

“피크닉 말입니다. 숲, 시골길, 풀밭을 떠올려 봐요. 차가 시골길에서 풀밭으로 들어가고, 차에서 젊은이들이 내리고 술병들, 음식이 담긴 바구니들, 아가씨들, 트랜지스터라디오, 카메라들이 나옵니다…… 장작불이 타오르고 텐트가 세워지고 음악이 흐르지요. 그러다 아침이 되면 이들은 떠납니다. 밤새 공포에 떨며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던 동물과 새, 벌레들이 자기 피난처에서 기어 나옵니다. 그때 이들이 보게 되는 건 뭐겠습니까? 풀밭에는 자동차 엔진오일이 흐르고 벤진으로 흥건하며 쓸모없는 양초와 오일 필터가 사방에 버려져 있겠지요. 헌 옷이 널브러져 있고, 수명을 다한 전구가 뒹굴고 누군가는 렌치를 버리고 갔고.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는 늪지에는 타이어 자국이 새겨졌고…… 그러니까, 불 피운 흔적이며 사과 찌꺼기, 사탕 껍질, 통조림 캔, 빈 병, 누군가의 손수건, 누군가의 주머니칼, 오래되어 찢어진 신문, 동전들, 다른 들판에서 온 시든 꽃 같은 것들을……”

“압니다, 노변의 피크닉이죠.” 누넌이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우주의 노변에서 열린 피크닉. 그런데 당신은 그들이 돌아올지 아닐지를 나에게 묻는군요.” (231~232쪽)

 

• 여러 sf 소설, 게임, 영화에 영향을 준 책이라 한다. 특수 구역에 들어가 여러 ‘아티팩트’를 얻으며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스토커’라는 게임이 있는데, 이름과 설정부터 소설에 방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구역’이라는 개념은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 <서던리치>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이런 배경이 있으니, 소설의 내용도 구역에 들어가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다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조금의 실망이 있었다.

구역에 들어가 외계의 물체를 가지고 나오는 스토커의 얘기치고는 구역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고, 그들의 대화에 대부분은 술과 담배, 그리고 외계 물체를 얼마에 팔았다는 내용뿐이다. 거기에 외계 물체는 ‘깡통’, ‘검은 물방울’, ‘팔찌’ 같은 스토커의 은어로 불리는데, 은어로 쓰인 게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다. 줄임말과 유행어를 마구잡이로 쓰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려면 그 은어들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소설을 읽다보면 적응하긴 하지만, 막상 처음 저 스토커 은어들을 보면 뭘 말하는 건지 이해하기에 어려웠다.

 

• 그럼에도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게 뭔지는 모르는데, 어찌저찌 쓰고는 있어.”라 말하는 그들의 엉성한 태도다. 구역의 물건들은 하나같이 인류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구조와 작동법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그냥 이것저것 해보다가 하나 얻어걸린 방법으로 그 물건들은 사용한다. 소설 속 사람들도 “현미경으로 못을 박고 있는 거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구역과 외계 쓰레기는 인류의 과학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인간은 지식의 한계를 맞았다. 그렇다면,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는 우리 주변에 물건을, 환경을, 우리 자신을 얼마나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 여담으로 책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책 마지막에 배치된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스토커’라는 단어가 한국에서는 범죄자를 지칭하는 말이라 번역을 고민했다는 말과 스토커들의 은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이었다는 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소설 시작 전에 가볍게 뇌도 깨우고, 그들의 은어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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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는 전설이다 ㅣ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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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 스미스가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가 더 익숙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을 기반으로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영화에서는 좀비로 등장하는 괴물이 소설에서는 흡혈귀이다. 거기에 좀비보다는 더 지능적으로 묘사되어 사람 말도 그대로 하고 네빌을 유혹하는 여성 흡혈귀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기본적인 설정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속 네빌은 자기관리 끝판왕에 군 소속의 바이러스 과학자라서 좀비 실험을 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반면 소설의 네빌은 그냥 평범한 아저씨라서 세균,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 틈틈이 독학하며 실험을 이어가고 자기관리는 무슨 완전 술꾼에, 앞서 말한 여성 흡혈귀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영화와 소설 모두 네빌이 인류 최후의 생존자라고 보여주지만, 영화의 네빌은 너무나 완벽한 모습에 그저 멋있다며 전설이라 칭하기 바쁘고, 소설의 네빌이 가진 불완전하고 어떻게 보면 더 현실성 있는 모습에 이 사람이 진짜 인류를 구원하는 전설적인 존재인지 의구심을 갖게 만들 지경이다. 한마디로 원작의 네빌은 멋있지 않고 영웅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점이 되려 네빌의 쓸쓸함을 더 증폭시킨 부분이지 않겠는가?

 

• 앞서 말했다시피 영화의 괴물은 좀비로, 소설의 괴물은 흡혈귀로 등장한다는 차이도 존재한다. 특히 흡혈귀 괴물이 독특한 매력을 자아냈는데, 흡혈귀 탄생의 원인은 변이 바이러스였고, 이 바이러스는 시체까지 되살리는 특징을 지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흡혈귀들은 민간 신화 속 흡혈귀처럼 햇빛과 십자가를 두려워하고 거울을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 네빌의 추측으로는, 언론이 퍼뜨린 거짓 보도와 각인된 공포가 불러온 결과라고 해석된다. 사망 후, 바이러스로 되살아나는 과정에서 원초적인 본능만이 남게 되는데, 자극적이고 거짓된 보도로 공포가 각인된 채 죽어버려, 그 흡혈귀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역설적이게도 괴물이 된 자신에게도 투영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거다. “흡혈귀는 마늘이 무섭대.” -> “으악! 나 감염되서 흡혈귀가 됐어!” -> “ㅇㅓ... 흡혈귀는 마늘이 무서워... 나 마늘이 무서워...” 이런 서순으로 보는 거다. 좀 귀여울지도?

거기에 이 귀여운 흡혈귀들은 독자적인 사회 체계를 만들어서, 사실상 바이러스로 인해 분리된 인류의 변종으로 봐도 될 정도인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네빌이 이 흡혈귀 사회를 알게 되었을 때, 그들 사이에서 자신이 흡혈귀를 사냥하고 온갖 실험에 써먹는 ‘전설적인’ 괴물로 불린다는 것이다. 난 내가 인류 최후의 생존자로서 인류를 구원하고 전설이 되려고 했는데, 정작 괴물들 사이에서 괴물을 잡아먹는 전설적인 괴물로 불리다니, 너무나 충격적인 반전이다. 이렇게 제목의 뜻을 비교해보니 영화와 소설의 차이가 명확히 느껴지는 점도 아주 재미지다.

 

• 조사를 하다 보니, 이 소설이 좀비 등장에 시초가 되었다는 어느 글을 보게 되었다. 성공적인 좀비 영화로 꼽히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도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있고, <새벽의 저주>, <28일 후>, <블레이드>, <레지던트 이블> 등등 이 정도면 유명한 좀비 영화 모임을 해도 된다. 흡혈귀가 등장하지만, 집단 감염 및 변이라는 특징이 저 영화들의 좀비를 구성하는 밑받침이 되었을 거다. 시간이 된다면, 소설을 읽고 동명의 영화도 보고 저 영화들도 보는 게 어떤가! 여름과 장마는 길고 우리는 그 열을 서늘한 공포로 다루는 법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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