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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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여행하기 위해 양치기가 된 주인공 산티아고는 동방박사 한 사람이 건네준 두 개의 표지를 길잡이 삼아 기약 없는 여정에 뛰어들고, 마침내 자신이 바라던 것을 손에 넣는다. 결국 이 책에서 연금술의 의미는,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으로 전화하는 것, 바로 그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다...

 

“난 지금 과거를 사는 것도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니까.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만약 당신이 영원히 현재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일게요.” (144쪽)

 

• 그의 책은 항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어떠한 교훈 말이다. 지난번에 소개한 <다섯번째 산>이라는 책에서도 종교의 힘을 넘어서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말을 던졌고, 이번 책에서도 그러했다. 주인공, 산티아고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보물과 행복이 우리 곁에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자아를 찾는 여행을 통해서만 보물이 우리 곁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책 자체로만 보면, 시간을 들여 (그러니까 5년에 한번씩, 10년에 한번씩 이렇게 말이다) 읽어야 할 정도로, 때와 장소와 마음에 따라 해석 가능한 여지가 무수히 많은 책이라고 느꼈다. 어떤 이는 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주인공이 부럽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이집트까지 가서도 결국 보물을 찾지 못한 그를 보고 허탕만 쳤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산티아고의 양들을 보며 이미 안주해버린 스스로라고 해석하고, 어떤 이는 그냥 양 떼일 뿐이라고 받아들이겠지요. 그만큼, 사람에 따라, 생각에 따라, 모든 것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어쩌면 그렇기에 각자를 투영한 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사실, 책의 제목만 몇 번 들어본 상태여서, 진짜 연금술사의 얘기를 담은 줄 알았습니다. 금을 만들고, 화학 실험을 하고 그런 것들이요. 내용을 보니 전혀 아니죠? 그러니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목이 왜 연금술사일까요?

연금술을 보자면, 납이나 구리 같은 값싸고 흔한 금속을 이용하고 조합하여 금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만큼 금이 얻기 힘들고, 귀하고, 어쩌면 성공의 대명사였을지도 모르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이라는 물질은 현재에도 부의 상징과 귀의 상징으로 통하죠. 연금술은 그것을 얻기 위한 제조 과정이고요. 그래서 아마 작가는 산티아고의 자아를 찾는 여행을 연금술에 비유하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흔하디흔한 사람인 스스로를 조합하고 결합하여 존귀한 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죠. 실상은 화학적으로 보면 금을 만들기는커녕 흉내도 낼 수 없겠지만, 그 의지와 행동을 담으려고 했던 게 아닐까요? 여러분도 책을 읽고, 산티아고의 여정을 따라가며 자신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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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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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암은 폴과 결혼하며 변호사의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지내게 된다. 밀라라는 아이를 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당까지 낳게 되는데, 두 아이를 감당하기에 벅찼던 미리암은 루이즈를 보모로 구하게 된다. 루이즈의 능력은 출중했다. 덕분에 미리암은 다시 일을 할 수 있었고, 루이즈의 보모 수행력은 미리암과 폴의 지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정도였다. 루이즈는 곧 보모 이상으로 가족에게 받아들여졌고, 미리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던 것일까. 밀라와 아당은 곧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고, 그러면 가족들은 루이즈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필요 없기에 잘릴 것이 분명하고, 루이즈는 사망한 남편으로부터 온 빚을 감당할 수 없을 거다. 그래서 그녀는 두 남녀가 셋째를 가질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하지만, 미리암과 폴은 바쁘게 지내기에 실수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무참히 살해한다. 경감은 현장검증을 가려고 하지만, 특별한 사유가 보이지 않아 루이즈의 심증을 이해하려는 식으로 검증을 준비하며 소설은 끝나게 된다.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9쪽)

 

• 책을 펼치며 마주하는 첫 문장은, 감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리게 한다. 막상 <달콤한 노래>에서 떠올렸던 생각들은 <이방인>과 연관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첫 문장을 오마주처럼 적은 점이 책의 기대를 한껏 올려주었다. 그리고 책은 겉으로는 일자리를 잃는 것이 두려운 보모의 충동적인 살인 사건으로 보이지만, 역시 기대했던 것만큼 메시지를 숨기고 있었다. 먼저 미리암을 보자. 미리암은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그런 그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니 딜레마가 생겼다. 일로 성공하고 싶은 욕구와 제대로 된 어머니가 되고 싶은 욕구 사이에 생긴 딜레마.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미리암은 보모를 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보모를 구하기 위해 직업소개소로 갔을 때, 식민지 모로코 출신인 미리암을 본 직원은 보모 일을 ‘하려고’ 왔냐고 물어보는 일종의 인종차별을 당한다. 그리고 미리암 또한, 그런 출신을 신경 쓰는지 일부러 ‘백인’ 보모를 구한다. 이런 미리암의 행보를 보면, ‘독박육아’라는 키워드가 생각나기도 하고,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본인도 결국 인종을 신경 쓰는 모습이 편견에 당하니 자신도 편견이 생기는 사회의 부조리함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제 보모 루이즈로 가보자. 소설의 구성에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난 시점에, 루이즈의 과거가 살짝 풀린다. 남편은 갑자기 사망하여 빚만 남기고, 하나뿐인 딸은 사이가 틀어져 여기저기 도망 다니기 일쑤다. 미리암의 집 안에서는 완벽하고 요정으로 묘사되는 루이즈가 밖에서는 지독한 소외 계층이다. 그러니 루이즈는 미리암의 집에서만, 자신이 일할 수 있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집에서만 일종의 몰입과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부부는 자신을 점점 나쁘게 본다. 처음에는 가족처럼 대했는데 말이다. 결국 가족처럼 지낸다 해도 보모라는 일은 ‘하위’에 속하는 일이며, 계급의 상하를 나타낸다. 그리고 아이들은 점점 커간다. 커가는 미래를 보며 루이즈는 되려 자신의 미래를 걱정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자신은 집에서 잘리고, 간신히 갚아가던 빚도 다시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절망했을 것이다. 상위 계층(미리암 부부)에 의존해야만 하고, 자신은 이 작고 나약한 아이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루이즈가 갑작스레 두 아이를 죽인 이유는 아마 그런 실망과 자아 상실로 인한 슬픔과 폭발이지 않을까.

 

• 차별, 직업에 따른 상하 관계, 가족처럼 지내지만 결국 나뉘는 계급 등등. 첫 문장은 <이방인>의 오마주이지만, 어째 한국 영화 <기생충>이 떠오른다. 그리고 결말에서 경감이 사건을 재현한 결과를 보여주고 끝내는 것이 아닌 재현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끝이 나는 점에서 작가는 독자들이 스스로 경감이 되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소설의 결말을 미리 첫 문장으로 써둔 것이며, 중간에 루이즈의 과거를 배치해서 독자들 스스로가 유추할 수 있게끔 한 게 아닐까. 비극을 담은 소설이라지만, 추리 소설의 형식이 떠오른 이유였다. 정말로 간만에 완독 후 깊게 생각하고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참고로 <퍼펙트 내니> (Perfect Nanny)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다. 왓챠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영화도 평이 좋으니 한번 관람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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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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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천한 여자로부터 생선 비린내와 썩은 내가 진동하는 부둣가를 기며 태어난 그르누이. 불행하게도 여자가 자신을 수도원에 팔아 넘겨버려 수도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는 향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는데,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의 냄새를 맡으면, 그 나뭇가지에 묻은 잔향까지 전부 분석할 정도였다. 이를 눈여겨 본 조향사가 경쟁사를 꺾어버리기 위해 그르누이를 조수로 데려오고, 그의 밑에서 그르누이는 향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르누이는 자신의 몸에서 어떠한 향도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향, 냄새는 생선 사체에서도 나는 것. 그러니 무취라는 것은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동일하다. 그 사실을 안 이후로 그르누이는 자신의 향을 찾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궁극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과연 그는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할 궁극의 향수를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향수의 발향과 잔향이 그에게 어떠한 결말과 여운을 가져다줄까.

 

• 궁극의 향수에 필요한 재료가 아름다운 여인의 향이고, 그것을 위해 여인을 죽이고 향을 추출해야 한다는 것을 안 시점으로부터, 결말 전까지는 이 소설을 단순히 살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결말 또한, 향수를 완성한 그르누이가 향을 뿌려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결말이거나 깨달음을 얻어 중도 포기하는 결말을 상상했는데, 내가 완전히 틀렸다. 결말에 가서 그는 살인범으로 잡히고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는데, 마침 완성된 궁극의 향수를 뿌림으로 처형장에서 신처럼 모셔지게 된다. 그리고 황홀경에 빠진 사람들은 욕정에 사로 잡혀, 처형장에서 서로의 몸을 뒤엉키게 만든다. 그르누이는 이에 절망하고 충격에 빠져, 자신이 태어난 부둣가로 돌아가 향수를 몸에 뒤덮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와 그의 향을 취하기 위해 그를 다 먹어치우는데...

 

• 천부적인 재능에도 자신을 무취로 만든 세상을 증오하며, 또 세상에 존재하고 싶었고, 어쩌면 향을 얻음으로 자신도 평범하게 살기를 기도했을지도 모르는 그르누이다. 향을 위해 여자를 여럿 죽이긴 했지만, 그의 행동을 보자니 어딘가 쓸쓸한 향이 올라온다. 그러니, 궁극의 향수를 맡고서 집단 xx 행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세상에서 살 이유 따위, 이런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그들의 품에서 지내기 싫었을 것이다. 그 실망은 결국 죽음으로, 자신이 태어난 미천한 부둣가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제대로 된 사람 한 명이 아니었을까. 그는 탄생부터 버림받았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아 수도원에서 컸고, 수도원에서 버림받아 조향사 밑에서 자랐고, 그런 조향사에게서도 이용당했다. 그리고 무취인 자신을 보며 세상에서 버림받았다 느껴, 증오에 사로잡혀 버려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다. 만약, 그런 그에게 제대로 된 가족이, 아니면 친구가, 혹은 조향사가 조금 더 잘 챙겨줬더라면, 과연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작가가 담은 메시지가 따로 있겠지만, 난 그르누이를 사랑에 목말라 타락하여 재능을 나쁜 쪽으로 사용한 한 아이로 보고 있다.

 

• 하도 옛날에 읽은 책이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본 적이 있는데, 영화는 각색이 이뤄졌고, 기억이 뒤섞이는 바람에 솔직히 마음에 드는 결과가 안 나왔다. 그럼에도 책도 영화도 모두 수작이다. 모두 다 재밌고 매력적이며, 여운이 오래 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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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가게 소년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이기숙 옮김 / 그러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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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 소년 프란츠. 갑작스러운 가정의 변화로 고향 마을을 떠나 빈에 도착한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빈의 담배 가게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하고, 처음에는 당연히 담배와 신문의 종류와 위치를 기억하기도 바쁜 적응기를 보낸다. 가게에서 유명한 정신분석가인 프로이트 교수를 만나기도 하고, 무용수로 생활하는 아네츠카라는 아이에게 첫눈에 반해 서투른 사랑을 시작한다. 빈에 마땅한 친구도 없던 프란츠는 프로이트 교수를 찾아가, 사랑을 쟁취하는 법을 물어보기 시작하는데, 세월과 지식을 겸한 교수라고 해도 사랑 앞에는 거대한 수수께끼를 마주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랴. 이렇게 마냥 평화로운 하루를 보낼 것만 같던 프란츠와 빈에는 나치 공산당의 영향이 스며들며, 유대인은 물론 유대인과 연관있는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체포하고 폭행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프란츠는 공산당으로부터 프로이트 교수와의 우정을 지키고, 또 아네츠카와 사랑을 맺을 수 있을까.

 

“젊은이 어디가 안 좋아요?”

“아니에요. 프란츠가 얼른 대답했다. 그냥 이 도시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래요. 악취도 조금 나고요. 아마 배수로에서 나는 거겠죠.”

“악취가 나는 곳은 배수로가 아니에요.” 여자가 말했다, “세월이에요. 말하자면 부패한 세월이죠. 부패하고 타락하고 황폐해진 세월!” (20쪽)

 

“하나는 지금, 하나는 여행 중에, 하나는 영국에서 피우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프란츠가 말했다. 프로이트는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흔들며 시가 세 개를 바라보다가 그중 하나를 손끝으로 잡아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이건 영국에서 피워야지!” 프로이트가 말했다. “자유를 누리며 처음 맛보는 시가!” (235쪽)

 

• 순수하고 깨끗한 프란츠와 그런 프란츠를 귀여워하는 듯 제대로 고민 상담도 해주는 프로이트 교수 사이에 우정이 무척 돋보였던 소설이다. 나이 지긋한 어른과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의 조합은 이미 정석이다. (디즈니 영화 ‘업’이 떠올랐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처음에는 그냥 가상의 인물인가 싶었는데, 이름이 아무래도 익숙하여 찾아보니, 실존 인물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였고 실존 인물을 소설의 등장시켰다는 것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프란츠는 사랑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마땅한 해결을 해주지 못하ᄂᆖᆫ 점이 왜인지 따뜻하고 약간의 유머로 다가왔다. 짧은 소설이고, 내용이 메시지를 담고 있기보다는 따뜻한 시트콤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가볍게 읽을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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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이여, 안녕 ㅣ 마카롱 에디션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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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파리의 어느 허름한 호텔 방, 샤샤는 런던의 삶으로부터 도망쳐 그곳에 머무르고 있다. 샤샤는 왜 도망쳤을까. 그녀는 세상에 속한 잔인한 남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런던에서의 삶을 포기한 것이다. 파리에서의 삶도 그녀를 한동안만 보호해 주는 것이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한다. 머지않아 자살을 결심한 샤샤. 그런 샤샤에게 르네라는 젊은 남자가 접근한다. 남자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던 샤샤이기에 르네에게 호감은커녕 그를 계속 밀어낸다. 그러나, 르네는 결국 샤샤의 방으로 들어왔고, 그런 르네에게 샤샤는 그냥 자신을 놔두고 가방에 있는 돈을 모두 챙겨 어서 떠나라고 한다. 하지만 르네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던 것일까. 르네는 돈을 챙기지 않았고, 자신을 거부한 샤샤에게 어떠한 일도 하지 않은 채로 방을 떠난다. 샤샤는 급하게 르네를 잡으려고 했지만, 놓쳐버렸고 그동안 혐오스럽다고 생각했던 옆방의 남자를 방으로 불러 그를 품에 받아들이고 만다.

 

• 내용은 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만, 막상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기에 어느 시점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지 주의해 가며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내용 요약을 봤으면 알겠지만, 이 책은 사회의 피해자를 특히 여성 피해자의 얘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과거와 결말을 보니, 남성 위주로 움직이는 사회로부터 고통받는 여성들과 성적으로 약자의 입장인 여성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이 <한밤이여, 안녕>인 이유도 긍정의 상징인 낮을 거부하고, 스스로 밤을 받아들이는 샤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요, 인생을 이렇게 봐요. 누가 내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느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아니다.‘예요. 분명 나는 그렇게 대답했을 텐데, 단지 아무도 내게 그걸 묻지 않았지요.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에요. 내 일생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사건들은 내가 의도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나는 내 자신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답니다. ‘너는 네가 부탁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은 네가 아니다. 네 지금의 모습도 네가 만들지 않았다. 그러니 네 자신을 괴롭히지 마라. 그러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너는 그럴 권리가 있잖느냐? 너는 세상을 이 꼴로 만든 죄 많은 자들 중 하나가 아니니까.” (82쪽)

 

•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무척 힘들었다. 샤샤가 지닌 성격에 공감하기 쉽지 않았다. 우울하고 비관적이며, 제일 중요한 점은 개선의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애기? 좋다. 성적인 피해를 받은 여성의 얘기? 좋다. 성별의 차이를 떠나서 약자의 얘기는 언제나 환영이다. 단, 약자가 최소한의 저항은 해야지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소설이 재밌다고 느낀다. 샤샤의 결말을 보자. 소설 내내 “나는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어.”라는 태도로 그 피해는 타인에 의한 것이라며 불평하지만, 결국 혐오스러운 남자를 방으로 들이고 그를 품은 것은 명백히 그녀의 선택이다. 그 누구도 협박하지 않았으며, 어느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실행된 일 또한 아니다. 결말까지 힘겼게 왔는데, 결국 그 결말이 스스로의 파멸이라니. 작가는 피해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워 소설을 썼지만, 그녀의 의도가 어떻든지 간에 적어도 나는 저런 피해자를 안쓰럽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어떤 결말이든 샤샤라는 여자의 성격을 좋아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다른 결말이었다면 소설로써의 여운은 가져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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