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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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암은 폴과 결혼하며 변호사의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지내게 된다. 밀라라는 아이를 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당까지 낳게 되는데, 두 아이를 감당하기에 벅찼던 미리암은 루이즈를 보모로 구하게 된다. 루이즈의 능력은 출중했다. 덕분에 미리암은 다시 일을 할 수 있었고, 루이즈의 보모 수행력은 미리암과 폴의 지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정도였다. 루이즈는 곧 보모 이상으로 가족에게 받아들여졌고, 미리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던 것일까. 밀라와 아당은 곧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고, 그러면 가족들은 루이즈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필요 없기에 잘릴 것이 분명하고, 루이즈는 사망한 남편으로부터 온 빚을 감당할 수 없을 거다. 그래서 그녀는 두 남녀가 셋째를 가질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하지만, 미리암과 폴은 바쁘게 지내기에 실수할 리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무참히 살해한다. 경감은 현장검증을 가려고 하지만, 특별한 사유가 보이지 않아 루이즈의 심증을 이해하려는 식으로 검증을 준비하며 소설은 끝나게 된다.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9쪽)

 

• 책을 펼치며 마주하는 첫 문장은, 감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리게 한다. 막상 <달콤한 노래>에서 떠올렸던 생각들은 <이방인>과 연관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첫 문장을 오마주처럼 적은 점이 책의 기대를 한껏 올려주었다. 그리고 책은 겉으로는 일자리를 잃는 것이 두려운 보모의 충동적인 살인 사건으로 보이지만, 역시 기대했던 것만큼 메시지를 숨기고 있었다. 먼저 미리암을 보자. 미리암은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그런 그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니 딜레마가 생겼다. 일로 성공하고 싶은 욕구와 제대로 된 어머니가 되고 싶은 욕구 사이에 생긴 딜레마.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미리암은 보모를 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보모를 구하기 위해 직업소개소로 갔을 때, 식민지 모로코 출신인 미리암을 본 직원은 보모 일을 ‘하려고’ 왔냐고 물어보는 일종의 인종차별을 당한다. 그리고 미리암 또한, 그런 출신을 신경 쓰는지 일부러 ‘백인’ 보모를 구한다. 이런 미리암의 행보를 보면, ‘독박육아’라는 키워드가 생각나기도 하고,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본인도 결국 인종을 신경 쓰는 모습이 편견에 당하니 자신도 편견이 생기는 사회의 부조리함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제 보모 루이즈로 가보자. 소설의 구성에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난 시점에, 루이즈의 과거가 살짝 풀린다. 남편은 갑자기 사망하여 빚만 남기고, 하나뿐인 딸은 사이가 틀어져 여기저기 도망 다니기 일쑤다. 미리암의 집 안에서는 완벽하고 요정으로 묘사되는 루이즈가 밖에서는 지독한 소외 계층이다. 그러니 루이즈는 미리암의 집에서만, 자신이 일할 수 있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집에서만 일종의 몰입과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부부는 자신을 점점 나쁘게 본다. 처음에는 가족처럼 대했는데 말이다. 결국 가족처럼 지낸다 해도 보모라는 일은 ‘하위’에 속하는 일이며, 계급의 상하를 나타낸다. 그리고 아이들은 점점 커간다. 커가는 미래를 보며 루이즈는 되려 자신의 미래를 걱정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자신은 집에서 잘리고, 간신히 갚아가던 빚도 다시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절망했을 것이다. 상위 계층(미리암 부부)에 의존해야만 하고, 자신은 이 작고 나약한 아이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루이즈가 갑작스레 두 아이를 죽인 이유는 아마 그런 실망과 자아 상실로 인한 슬픔과 폭발이지 않을까.

 

• 차별, 직업에 따른 상하 관계, 가족처럼 지내지만 결국 나뉘는 계급 등등. 첫 문장은 <이방인>의 오마주이지만, 어째 한국 영화 <기생충>이 떠오른다. 그리고 결말에서 경감이 사건을 재현한 결과를 보여주고 끝내는 것이 아닌 재현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끝이 나는 점에서 작가는 독자들이 스스로 경감이 되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소설의 결말을 미리 첫 문장으로 써둔 것이며, 중간에 루이즈의 과거를 배치해서 독자들 스스로가 유추할 수 있게끔 한 게 아닐까. 비극을 담은 소설이라지만, 추리 소설의 형식이 떠오른 이유였다. 정말로 간만에 완독 후 깊게 생각하고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참고로 <퍼펙트 내니> (Perfect Nanny)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되었다. 왓챠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영화도 평이 좋으니 한번 관람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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