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미천한 여자로부터 생선 비린내와 썩은 내가 진동하는 부둣가를 기며 태어난 그르누이. 불행하게도 여자가 자신을 수도원에 팔아 넘겨버려 수도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런 그에게는 향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는데,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의 냄새를 맡으면, 그 나뭇가지에 묻은 잔향까지 전부 분석할 정도였다. 이를 눈여겨 본 조향사가 경쟁사를 꺾어버리기 위해 그르누이를 조수로 데려오고, 그의 밑에서 그르누이는 향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르누이는 자신의 몸에서 어떠한 향도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향, 냄새는 생선 사체에서도 나는 것. 그러니 무취라는 것은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동일하다. 그 사실을 안 이후로 그르누이는 자신의 향을 찾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궁극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과연 그는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할 궁극의 향수를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향수의 발향과 잔향이 그에게 어떠한 결말과 여운을 가져다줄까.

 

• 궁극의 향수에 필요한 재료가 아름다운 여인의 향이고, 그것을 위해 여인을 죽이고 향을 추출해야 한다는 것을 안 시점으로부터, 결말 전까지는 이 소설을 단순히 살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결말 또한, 향수를 완성한 그르누이가 향을 뿌려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결말이거나 깨달음을 얻어 중도 포기하는 결말을 상상했는데, 내가 완전히 틀렸다. 결말에 가서 그는 살인범으로 잡히고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는데, 마침 완성된 궁극의 향수를 뿌림으로 처형장에서 신처럼 모셔지게 된다. 그리고 황홀경에 빠진 사람들은 욕정에 사로 잡혀, 처형장에서 서로의 몸을 뒤엉키게 만든다. 그르누이는 이에 절망하고 충격에 빠져, 자신이 태어난 부둣가로 돌아가 향수를 몸에 뒤덮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려와 그의 향을 취하기 위해 그를 다 먹어치우는데...

 

• 천부적인 재능에도 자신을 무취로 만든 세상을 증오하며, 또 세상에 존재하고 싶었고, 어쩌면 향을 얻음으로 자신도 평범하게 살기를 기도했을지도 모르는 그르누이다. 향을 위해 여자를 여럿 죽이긴 했지만, 그의 행동을 보자니 어딘가 쓸쓸한 향이 올라온다. 그러니, 궁극의 향수를 맡고서 집단 xx 행위를 벌이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세상에서 살 이유 따위, 이런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그들의 품에서 지내기 싫었을 것이다. 그 실망은 결국 죽음으로, 자신이 태어난 미천한 부둣가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제대로 된 사람 한 명이 아니었을까. 그는 탄생부터 버림받았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아 수도원에서 컸고, 수도원에서 버림받아 조향사 밑에서 자랐고, 그런 조향사에게서도 이용당했다. 그리고 무취인 자신을 보며 세상에서 버림받았다 느껴, 증오에 사로잡혀 버려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다. 만약, 그런 그에게 제대로 된 가족이, 아니면 친구가, 혹은 조향사가 조금 더 잘 챙겨줬더라면, 과연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작가가 담은 메시지가 따로 있겠지만, 난 그르누이를 사랑에 목말라 타락하여 재능을 나쁜 쪽으로 사용한 한 아이로 보고 있다.

 

• 하도 옛날에 읽은 책이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본 적이 있는데, 영화는 각색이 이뤄졌고, 기억이 뒤섞이는 바람에 솔직히 마음에 드는 결과가 안 나왔다. 그럼에도 책도 영화도 모두 수작이다. 모두 다 재밌고 매력적이며, 여운이 오래 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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