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50대 남자는 방금 사업에 실패했다. 가족마저 그를 떠났고, 그 곁에 남은 것은 억 소리 나는 빚더미. 그래서 남자는 한강다리를 찾았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의미하는 한강다리는 그에게는 사업의 실패, 인생의 실패, 죽음으로 넘어가는 다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죽음마저 실패했다. 그런데, 이 실패는 그에게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확실히 바뀌었으며, 다시 사업을 일으켜 부를 되찾고, 가족을 되찾는다.

해피 엔딩인줄 알았으나, 그렇게 되찾은 행복은 금세 말아먹었다. 소설 속에서 그는 현실에서라면 감당하기 힘든 ‘망함’을 2번이나 겪는다. 그렇지만, 여태 그는 성장했다. 그래서 김성곤은 다시 일어선다. 자세를 고쳐 앉고. 다시.

 

• 쫄딱 망한 사람이 자립하여 부귀영화를 얻게 되는, 뻔하다면 뻔한 얘기이다. 그런데 작가가 누구인가. <아몬드>의 손원평 작가이다. 이전에도 보여준 매력적인 스토리텔링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뻔한 얘기에 감동을 주었다. 이를테면, 엄청 잘 만든 동기부여 영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인물의 대사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갓 구운 아몬드의 은은한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래서 지루하지 않았다. 어느새 주인공을 응원하고 있었다.

<아몬드>에서도 그렇듯, 그녀는 변화를 사랑하는 것 같다. 물론 여타 다른 소설이나 작품들에서도 주인공의 변화는 물 보듯이 콸콸 나온다. 그런데 그녀의 변화는 사람이 아닌 사람을 사람답게 바꾸는 변화이다. <아몬드>에서는 인간의 ‘감정’이 결여된 소년에게 감정을 쥐여주는 변화를 주었고, 이번 <튜브>에서는 싹 다 말아먹어서 자살까지 결심한 사람에게 살아갈 희망의 변화를 주었다. 그 덕분에 두 주인공은 모두 후반으로 갈수록 사랑을 주고 싶고, 친구하고 싶어진다.

 

“사람은 자꾸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거든요. 돌보다 더 단단하고 완고한 게 사람이죠. 바뀌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 원래 모습대로 되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왜, 그게 편하니까. 그 단계에서 스스로를 다잡는 사람은 정말 드물죠. 그 시간까지 온전히 겪고 나서야 비로소 원래의 자기 자신에서 한발자국쯤 나아간 사람이 되는 겁니다.” (190쪽)

 

• 튜브와 책 표지.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떠올렸을 앨범 커버가 있다. Nirvana의 Nevermind 커버 혹은 SZA의 SOS 커버이다. 난 그중에서 SZA의 앨범이 표지와 더 가깝다고 느꼈는데, 앨범 커버를 보면 SZA가 참 위태롭고 고독해 보인다. 튜브의 표지도 그래서 어딘가 공허해 보인다. 망망대해에 속옷차림으로 떨어지다니... 아무튼 주인공 김성곤과 빗대어 보면, 김성곤의 실패는 수평, 수직으로 끝도 없는 바다다. 수면 위로 올라와도 육지는 보이지 않고, 잠수를 해도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상태. 그렇다면 제목인 튜브는? 그 망망대해를 버틸 생명 유지 장치이다. 뗏목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너무 철학적으로 보이고 <노인과 바다> 같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책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튜브다. 육지로 갈 수도 없지만, 안락하지도 않지만, 실패의 바다를 버틸 친근하면서도 확실한 친구. 출판사 측에서 표지를 디자인할 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의도라면 참 신경 쓴 디자인. 칭찬. 그리고 다시 한번 따스한 변화를 보여준 손원평 작가에게도 칭찬. 감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배를 엮다 ㅣ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세상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이나 에세이 등은 시중에 흔하지만, 책 중엔 전문 서적 특히 사전은 그 존재 자체가 생소하다. 그런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배를 엮다>는 사전 출간이라는 생소한 상황 속에서 또, 단어를 정의 내린다는 말만 들어도 골이 아파지는 상황 속에서 일상의 따스함과 성실함의 위대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 그 인기가 대단하여 만화, 영화, 드라마 등등 많은 매체에서 모습을 보인 작품이며, 나 역시 영화로 이 책을 먼저 접했다. 각자 취향대로 봐도 무방하겠지만, 난 영화를 추천한다. 일상의 소소함과 디테일한 소품 활용이 아주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고, 일본 영화가 이런 거 하나는 알아줄 만큼 잘 한다.

 

• 제목에 들어간 배와 함께 고민해 볼 지점은 사전이었다. 출판사의 부랴부랴 책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일반적으로 접하기 쉬운 소설이나 에세이 등으로 잡아두고 작가나 외적인 업무 문제로 인한 이벤트를 깔아두어도 괜찮았을 거다. 생동감과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는 난리법석한 사건들이 필요한 법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책은 사건이 발생해도 그다지 호들갑을 떨진 않는다. 후반부에 장의 순서가 뒤바뀌었는지, 낱말 정의가 틀렸는지 아무튼 책을 거의 다시 만들어야 할 수준에 사고가 터지는데, 주인공은 차분히 다시 하자고 한다. 그러곤 진짜로 해낸다.

작품 내내 주인공은 성실함의 화신으로 표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어를 향한 약간의 센스와 반대로 사람 관계는 어려워한다는 너드(?) 속성이 있긴 한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인 성실함이 남다르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의 성실함을 극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사전이지 않았을까. 예시로 사과를 정의한다고 해보자. 당장에 떠오르는 문장은, “나무에서 열리는 새빨간 열매” 정도일 테다. 그런데 만약, 외계인에게 사과를 설명해야 한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나무, 새빨간, 열매 이 3가지 단어를 추가로 설명해야 한다. 맛에 대한 설명이 들어간다면 당연히 그 정의도 내려야 할 테고... 사과 하나 정의 내리는데 벌써 골이 아프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골머리 아픈 사전 편찬에 성실함의 화신인 주인공을 내세웠을 거리라.

근데 이 녀석, 주인공 치고는 많이 소극적이다. 우울할 정도다. 우울한 성실함이라니 가늠이 안 된다. 그런데 뭐랄까, 마음 깊이 짚이는 공감 지점이 있다. 마냥 밝은 세상을 보여주지도 않고 밝은 성격인 것도 아닌데 왜 위로받는 걸까. 동질감일 수도 있겠다. “나같은 놈이 하나 더 있구나.”라는 안도감과 동질감. 그리고 그의 주변엔 믿을 만한 동료들이 넘친다. 발로 뛰는 영업 사원에 노련한 선생님, 솔직한 돌직구 후배도 있다. 그들과 어울러지는 관계가 정말 사람 사는 얘기 같아서 마음 속 천천히 올라오는 공감과 위로의 맛이 있다.

 

• 그리고 역시 배다. 우린 한배를 탔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배는 인생을 표현하기도 하고 공동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들이 편찬하는 책의 이름도 <대도해>, 한자 풀이를 하지 않아도 대충 거대한 바다를 뜻한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대도해>를 편찬하면서 그들은 한배를 탄 듯이 서로를 엮었고, 골머리 아픈 단어의 정의를 엮었으며, 육지가 보이지 않는 항해를 계속하며 가족애를 쌓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가 잘 드러난 책이었다. 갖은 인문학책, 자기계발서에서는 말한다.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한다고. 솔직히 굉장히 지루하고 현학적인 말이다. 반면에 문학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읽고 느끼게 해준다. <배를 엮다>를 인문학에 비유한다면, 성실함 혹은 몰입에 대한 책일 것이다. 그러나 그 깊이가 다르다. 직설적인 해법 대신, 감정을 한번 걸친 후에 받아들이는 문학적 조언은 그런 직설보다 되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홀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기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내를 잃었고, 오기는 전신 마비 환자가 되어 장모의 집에서 간병을 받게 된다. 의식을 회복하며, 오기는 점점 아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마냥 사랑 넘치는 추억은 결단코 아니니라. 제대로 된 사랑은 피어나지 못했고, 아내는 눈치가 빨랐다. 그리고 그 사실들을 장모 또한 알게 된다. 아내가 서재에 남긴 갖은 메모들을 통해서. 그렇게 간병은 방치와 학대의 모습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장모가 자신의 딸을 향한 사랑은 진정했으리라. 이미 물을 수도 없는 시점에, 오기는 그저 자신의 딸을 망가뜨린 나약한 전신 마비 환자일 뿐. 그 끝에서 오기는 결국 도망치다 장모가 마당에 파둔 구멍에 빠진다. 구멍, 공동, Hole이다.

 

• 정말 매력적인 서술 시점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라니! 그렇기에 사건의 발생지는 집으로 한정 되어버렸지만, 오기의 아내 회상과 장모와의 심리전 덕분에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두운 집안, 장님이지만 베테랑 퇴역 군인으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침입자들을 시점으로 한 영화, <맨인더다크>가 떠오른다. 액션과 심리극이라는 장르적 차이가 분명 있지만, 어차피 소설은 액션을 다루기 어려우니 오히려 심리극이 더 어울린다. 그리고 작가는 그것을 잘 해냈다.

오기는 그저 아내와 장모의 사이, 자신과 아내의 사이, 그리고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며 장모가 벌이는 일을 추측해야만 한다. 독자들에게 주어진 정보도 비슷하다.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오기에게 몰입하게 되고, 오기처럼 추측하게 되고, 오기처럼 심리적 압박감과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 결국 장모는 오기를 구멍에 처박았다. 정녕 그가 미웠으면 다른 살인 방법도 있었을 테고, 그대로 방치해서 오물 범벅으로 만드는 것도 꽤 충격적이고 볼 맛이 있었을 텐데, 왜 구멍일까? 구멍은 대체로 ‘공허함’과 ‘상실감’을 나타낸다. 장모는 사고로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 장모에게는 딸의 상실이라는 구멍이 생겼다. 그냥 안타까운 사고로 받아들였다면, 오기도 그저 불쌍한 신랑이었을 텐데. 장모는 딸이 남긴 메모를 봤다. 오기가 교통사고를 꾸민 범인은 아니지만, 딸의 죽음을 탓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상태와 상황이다. 그리고 남탓하면 결국 편한 건 본인이니까. 그래서 장모는 구멍을 팠다. 딸이 돌아와야지 채워질 구멍에 딸 대신 오기를 집어넣었다. 그렇기에 장모의 구멍은 절대로 채워질 수 없다.

오기에게 돌아오자, 오기는 그럼 구멍 없는 사람이었을까?

오기는 교수로 지냈는데, 제자와 외도가 났다. 그리고 아내를 잘 보살피지 못했다. 결국 그에게도 결혼 생활에 구멍이 있었다. 진작 잘했다면 구멍이 생길 일도 없었겠지만, 결혼 생활의 구멍은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 아내와의 대화로 쌓아가야 한다. 대화의 결론이 다시 시작하는 사랑이든 이혼이든 결국 당사자와 얘기를 나눠야 한다. 하지만 아내는 죽었다. 그래서 오기는 물리적 한계로 인해 구멍을 메꾸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은 전신 마비. 장모에게 저항은커녕 오해라는 거짓말도 못 한다. 그리고 오기는 구멍에 들어갔다. 어찌 보면 무덤 자리를 잘 찾아갔다.

 

• 여기저기 리뷰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전개와 결말이 모두 뻔하다는 얘기가 있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심리극이고 오기의 기억에 의존해서 진행되는 면도 있으니, 반전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는 것인데, 이건 취향 차이라고 생각한다. 난 전신 마비 환자가 되는 상상을 하며 읽었더니 몰입도 잘 되고, 뭐 결국 재밌게 읽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반전이 꼭 작품의 즐거움이어야 하는 이론은 없다. 그러니, 안 좋게 평가받을 책은 절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여름은 고작 계절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아주 어릴 때부터 미국 이민살이를 해온 제니. 제니는 미국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아이이다. 온갖 인종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영어 공부를 하는 아이이다. 그렇게 주변으로부터 입지를 다질 때쯤 한나라는 한국 아이가 전학을 왔다. 적응을 위해 이름까지 바꾼 제니와 달리 한나는 한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영어도 쓸 줄 모른다. 그런 한나는 자신의 이름을 해나, 헨나 등 잘못 발음할 때마다 똑바로 고쳐 부르라는 고집 강한 아이다. 그렇기에 한나는 금세 문제아 취급을 받고, 제니는 자신과 같은 한국인이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는 한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면서도 한나가 적응할 수 있게 도움을 주게 된다. 둘의 우정이 싹트는 찰나 사건은 발생한다. 제니의 생일날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한나는 실수로 근처 호수에 빠져 익사하고 만다. 그후 제니는 부모의 결정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에게 한나의 얘기를 들려주며, 자신은 용서 받기 위해 한국에 왔다 말하고, 친구는 그렇다면 환영한다 말한다.

 

• 이민자의 얘기. 당근 <파친코>가 떠오른다. 그러나 <파친코>와는 달리 좀 더 개인적인 사건을 다루는, 민족의 이민이 아닌 개인의 이민을 다룬다. 부푼 꿈을 안고 떠나간 이민과 그곳에서마저 적응하지 못해 다시 돌아오는 이민을 다룬다. 어쩌면 도망친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난 제니의 행방을 보며 도망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용서 받기 위해 한국에 돌아왔다고는 했지만, 왜 한국이었을까. 작가는 왜 제니를 다시 한국으로 보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평생을 미국에 살려고 노력해온 아이가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면 그 이전의 삶은 어찌 되는가? 무용지물. 결국 제니에게 미국은 더 이상 살 동네가 되지 못했다. 그것뿐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 참회의 알맞은 공간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사실 돌이켜보면 한나의 죽음은 제니의 잘못이 아니지만 말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도망에 성공한다면 그곳이 낙원 아닌가. 그렇기에 한국을 낙원으로 만드는 것은 제니 자신의 몫이다. 한나의 추모 이후 또다시 모종의 이유로 한국을 뜬다면, 아... 그저 유목민 아닌가.

 

• 그렇지만 싫은 책은 아니다. 책은 분명 직설적이고도 확실하게 감정을 서술한다. 안 그래도 이민 때문에 복잡할 10대의 대혼돈 카오스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제니의 한국 복귀는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맞이하고 파악할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을까. 22살의 나이.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의 신분으로 들어간 제니에게는 어쩌면 더욱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 아닐까.

 

• 여름은 고작 계절. 말 그대로 여름은 계절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여름 속 함께한 추억은 앞으로 맞이할 가을과 겨울을 버틸 양분이 된다. 온기가 된다. 한나는 비록 죽었지만, 제니에게 있어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여름이었으며,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온기였을 것이다. 한나의 죽음은 이제 추억이라 불릴 만큼 과거가 되었으나, 지나간 여름이 되었으나 제니는 그 온기와 양분으로 한국에서의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이번에는 도망 안 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ㅣ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어느날, 13살 터울의 형을 떠나보낸 우혁. 우혁은 형이랑 함께 귤을 나눠 먹기를 좋아했지만, 형의 죽음으로 더 이상 귤에 손을 대지 못한다. 그러다,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유품처럼 남아있던 형의 VR 기계로 형이 하던 게임에 접속하게 된다. 게임은 그저 집과 정원을 가꾸는 정도에 간단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형이 남긴 집을 보며 형이 이 게임에 엄청 공을 들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게임에 접속한 누군가. 분명 형의 게임이고 형의 집임에도 그 누군가는 자연스레 게임에 참여해 형의 아바타를 보며 아주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전한다. 갖은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오해를 풀며, 우혁은 그 사람이 형의 첫사랑이고 현재 자신의 고등학교 선생님, 해송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그렇게 우혁은 해송으로부터 형의 얘기를 전해 들으며, 자신은 미처 몰랐던 형의 모습을 알고 형을 추억하며 그동안 입에 대지 못했던 귤을 천천히 먹어본다.

 

• 메타버스 혹은 VR 같은 가상 공간이 나와도 이젠 어색하지 않다니. 나도 한국 소설도 점점 시대를 타나 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형이 남긴 무언가를 통해 형을 이해하고 또 관련 사건으로 얘기가 진행된다는 점이, 디즈니의 영화 <빅히어로>를 떠올리게 했다. 당연히 소설과 영화의 차이가 있기에,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가 더 아기자기하고 전체적으로 따스한 분위기를 풍긴다. 형의 메타버스 공간을 탐험하며, 형의 지인과 함께 하기에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건사고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독자라면 오히려 감흥을 느끼긴 어려울 거라 짐작한다.

 

• 그런데, 왜 하필 귤일까? 그리고 제목은 어째서 여름의 귤을 말하고 있을까? 귤, 겨울에 겁나게 두꺼운 이불 뒤집어 쓰곤 넷플릭스 틀어다가 한 박스 왕창 까먹는 이미지가 선뜻 떠오른다. 아무튼 귤은 겨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여름에 귤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여름의 귤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귤에게 악영향을 주진 않지만, 고정관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름의 귤을 먹는 건 그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행동이고, 이는 해송을 통해 형의 다른 면을 알아가는 우혁의 모습과 비슷하다. 자신만이 아는 형(귤은 겨울에 먹는 것)과 추가로 알게 되는 형의 다른 모습(여름에도 귤을 먹어보는 것). 세상과 형과 귤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과정인 것이다. 정녕으로 여름의 귤... 맛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와, 그렇다면 왜 귤일까? 굳이 여름에 안 먹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밤이나 군고구마도 있고, 오히려 붕어빵이 대표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귤의 맛을 떠올려 봤다. 귤은 주로 새콤달콤한 맛을 띤다. 색 자체도 주황빛이 도니, 어딘가 생기가 돋는다. 새콤함과 주황빛은 활력적이며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러니 책의 마지막, 우혁이 형을 떠올리며 귤을 먹어보는 장면은 우혁이 드디어 우울감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생기와 활력을 띠는 귤을 통해 보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 문체도 분위기도 모두 따스하고 귀엽기에 술술 읽히는 책이다. 그렇지만 쉬운 책이라고 얕잡아보면 안 된다. 다들 책을 읽어가며 나처럼 도대체 왜 귤이 등장했으며, 여름의 귤을 먹어야 하는 생각해 보면 좋겠다. 더 나아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여름의 귤은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