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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평점 :
• 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기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내를 잃었고, 오기는 전신 마비 환자가 되어 장모의 집에서 간병을 받게 된다. 의식을 회복하며, 오기는 점점 아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마냥 사랑 넘치는 추억은 결단코 아니니라. 제대로 된 사랑은 피어나지 못했고, 아내는 눈치가 빨랐다. 그리고 그 사실들을 장모 또한 알게 된다. 아내가 서재에 남긴 갖은 메모들을 통해서. 그렇게 간병은 방치와 학대의 모습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장모가 자신의 딸을 향한 사랑은 진정했으리라. 이미 물을 수도 없는 시점에, 오기는 그저 자신의 딸을 망가뜨린 나약한 전신 마비 환자일 뿐. 그 끝에서 오기는 결국 도망치다 장모가 마당에 파둔 구멍에 빠진다. 구멍, 공동, Hole이다.
• 정말 매력적인 서술 시점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라니! 그렇기에 사건의 발생지는 집으로 한정 되어버렸지만, 오기의 아내 회상과 장모와의 심리전 덕분에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두운 집안, 장님이지만 베테랑 퇴역 군인으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침입자들을 시점으로 한 영화, <맨인더다크>가 떠오른다. 액션과 심리극이라는 장르적 차이가 분명 있지만, 어차피 소설은 액션을 다루기 어려우니 오히려 심리극이 더 어울린다. 그리고 작가는 그것을 잘 해냈다.
오기는 그저 아내와 장모의 사이, 자신과 아내의 사이, 그리고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며 장모가 벌이는 일을 추측해야만 한다. 독자들에게 주어진 정보도 비슷하다.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오기에게 몰입하게 되고, 오기처럼 추측하게 되고, 오기처럼 심리적 압박감과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 결국 장모는 오기를 구멍에 처박았다. 정녕 그가 미웠으면 다른 살인 방법도 있었을 테고, 그대로 방치해서 오물 범벅으로 만드는 것도 꽤 충격적이고 볼 맛이 있었을 텐데, 왜 구멍일까? 구멍은 대체로 ‘공허함’과 ‘상실감’을 나타낸다. 장모는 사고로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 장모에게는 딸의 상실이라는 구멍이 생겼다. 그냥 안타까운 사고로 받아들였다면, 오기도 그저 불쌍한 신랑이었을 텐데. 장모는 딸이 남긴 메모를 봤다. 오기가 교통사고를 꾸민 범인은 아니지만, 딸의 죽음을 탓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상태와 상황이다. 그리고 남탓하면 결국 편한 건 본인이니까. 그래서 장모는 구멍을 팠다. 딸이 돌아와야지 채워질 구멍에 딸 대신 오기를 집어넣었다. 그렇기에 장모의 구멍은 절대로 채워질 수 없다.
오기에게 돌아오자, 오기는 그럼 구멍 없는 사람이었을까?
오기는 교수로 지냈는데, 제자와 외도가 났다. 그리고 아내를 잘 보살피지 못했다. 결국 그에게도 결혼 생활에 구멍이 있었다. 진작 잘했다면 구멍이 생길 일도 없었겠지만, 결혼 생활의 구멍은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 아내와의 대화로 쌓아가야 한다. 대화의 결론이 다시 시작하는 사랑이든 이혼이든 결국 당사자와 얘기를 나눠야 한다. 하지만 아내는 죽었다. 그래서 오기는 물리적 한계로 인해 구멍을 메꾸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은 전신 마비. 장모에게 저항은커녕 오해라는 거짓말도 못 한다. 그리고 오기는 구멍에 들어갔다. 어찌 보면 무덤 자리를 잘 찾아갔다.
• 여기저기 리뷰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전개와 결말이 모두 뻔하다는 얘기가 있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심리극이고 오기의 기억에 의존해서 진행되는 면도 있으니, 반전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는 것인데, 이건 취향 차이라고 생각한다. 난 전신 마비 환자가 되는 상상을 하며 읽었더니 몰입도 잘 되고, 뭐 결국 재밌게 읽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반전이 꼭 작품의 즐거움이어야 하는 이론은 없다. 그러니, 안 좋게 평가받을 책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