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수익을 얻는 사람은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닦으며 열심히 노력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가 돈과 어울리는 방식을 돌아보라

우리의 그릇을 판단하는 건 바로 주변 사람들이다.

즉, 그릇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는 그 그릇보다 큰 기회가 굴러오지 않는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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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커플이 인터뷰 초반에 (빈정거림이나 비꼬기, 또는 눈동자 굴림 등을 내보이며) 말로나 얼굴 표정으로나 제스처로나 서로에 대해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부정적 스위치가 켜졌다는 신호입니다. 관계가 서서히 악화될 것이 거의 확실해지는 신호이지요

긍정적 스위치를 켜려면 부정적인 사건들과 파트너의 성격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반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게 될 경우 그 관계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행복한 관계는 절대로 싸우지 않는 관계가 아닙니다.

후회스러운 일이 생기고 나면 바로잡을 줄 아는 관계입니다.

날마다 유대를 갖는 관계입니다.

행복한 커플과 불행한 커플의 사이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게 아닙니다. 단지 서로의 관계를 더 수월하고 더 빠르게 회복해 함께하는 즐거움을 되찾는 능력의 차이일 뿐입니다.

잘 들어주기도 의지에 의한 행동이므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관계에서 헌신은 매일매일 반복해서 내리고 또 내리는 선택입니다.

심지어 몸이 피곤하고 과로를 해서 스트레스가 클 때도 우리는 헌신할지 말지를 선택합니다.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더라도 헌신할지 말지를 선택하게 됩니다.

헌신하기로 선택하면 파트너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떠날 것처럼 겁줘서도 안 됩니다.

또 파트너의 고통을 그 이상까지는 못 되더라도 자신의 고통만큼 마음 써줘야 합니다.

헌신적 관계의 두 사람 모두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덜어주기 위해 만사를 제쳐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두 사람이 결혼한 이유이자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헌신은 몇 번이고 거듭해서 서로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관계가 잘 이어지게 이끌어주는 근원은 관계를 잘 이으려는 결심이기 때문입니다.

부정적 비교에 들어서면 배우자와 함께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키우기보다 아쉬운 부분에 대한 원망을 키웁니다

그 여행이 마법 같고 놀랍다고 여깁니다. 뒤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이 선택한 모험에 의문을 갖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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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누구인가? 만족하는 이다.
만족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런 이는 없다."
-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돈이나 기술, 기회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어서 성공하겠다는 야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발랑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었다.

저는 그게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가 갖고 싶은 걸 손에 넣으려는 건 욕심이 아니라 야심이거든요.

‘나는 반드시 부자가 되겠다’는 결심은 부자가 되게 하는 특효약이자 동시에 그 싹을 트게 하는 기적의 약인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대다수의 부자들은 결핍 때문에 큰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의 자수성가 부호들은 부자가 되기 전부터 가난을 혐오하고 부를 갈망했으며, 이는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즉, 그들은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포기할 수 없는 영원불변의 목표를 세웠으며, 그것이 자신이 부자가 된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패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성공에 이르는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욕심 없이 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것을 탓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욕심’과 ‘야망’을 구별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그 어떤 그럴듯한 이유보다도 돈을 많이 벌고 나아가 성공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야심의 부재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부자가 된 이유는 바로 성공을 향한 야망이 컸기 때문이다.

반면 대부분의 실패자들은 이유가 무엇이든 성공에 이르는 꿈을 꾸지 않았거나 꿈을 꾸었어도 유의미한 행동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오해 없기 바란다. ‘유의미한 행동’이다.

가난은 결국 마음의 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병든 마음을 먼저 바꾸지 않으면 성공은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다.

반면 부자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멋지게 살겠다는 의지와 마음가짐이 있다면 성공하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가난은 모든 ‘악(惡)의 근원’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부(富)가 모든 ‘선(善)의 근원’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어느 누구도 가난해져야 할 이유는 없으며
누구라도 가난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권리도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마침내 빠삐용은 거친 파도의 출렁거림 속에서 하나의 규칙을 발견한다

예컨대 ‘가난이 죄냐?’, ‘돈이 없는 게 죄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명백하다. 가난이 죄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90% 정도가 돈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불편한 진실을 넘어 공공연한 비밀이다. 가난이 죄 이전에 이미 현실인 것이다.

부자가 될 수 있는 그 많은 기회를 다른 사람들에게 헌납하면서 자신은 가난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것이다.

대가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도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아니라고 극구 변명한다

이 세상에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데 여기에는 환경도 큰 몫을 차지한다.

가령 사람마다 각자의 환경이 있고, 환경과 운명 간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마음 상태나 생각, 일의 방식까지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과 같아진다.

예컨대 가난한 사람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밖에 없다. 그들의 대화 주제 역시 싸게 파는 할인점에 대한 이야기나 절약하는 기술 정도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생존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시야는 점점 더 자기가 속한 울타리에 적응하여 좁아지고, 결국 패기와 의지는 마모되어 버린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갈망하면서도 부자들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다.

그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운이 좋았거나 부모를 잘 만나 부자가 됐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물론 그런 요소도 일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운이 좋아서 부자가 된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부자는 모두 부자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사람이며 그들만의 비결이 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길로 가는 계단을 오르기는 쉽지 않으며, 정말로 그 길을 가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서 있는 계단에 이별을 고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배반이 아니라 자아의 개선과 발전이다. 무척 어렵겠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혹시 ‘나는 하루하루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돈만 있으면 돼’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현재의 생활에서 벗어날 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돈이 돈을 번다’는 이야기는 일상 속의 우스갯소리로 듣고 끝낼 말이 아닌 것 같다.

부자가 되고 싶은 꿈과 돈이 돈을 버는 현실로 인해 체념이 반복되는 와중에 우리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꿈을 펼쳐야 할까?

느긋하게 ‘하루하루의 생활이 가능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방심하다가는 상황이 정말 나쁜 쪽으로 기울고 만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 ‘한 걸음’

가난한 사람들의 진정한 문제는 가난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현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의 어리석음에 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현실을 원망하거나 한탄하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

먼저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이겨나갈 수 있어야 한다.

가난을 참아내는 사람들의 능력을 보면 때로는 감탄이 나올 만큼 놀랍다.

그들은 모두 부자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말로만 가난이 싫다고 할 뿐 가난을 증오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들은 육체의 고된 시련과 영혼의 수모를 겪으면서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그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인생에 있어서 치열한 전투 없이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고 부를 쌓을 수도 없다.

소파에 누워 가난에 대해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봤자 그것은 아무 희망도 없는 행동일 뿐이다. 실제로 실천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사례를 봐도 수없이 많은 자수성가 부자들이 자신이 속한 가난한 환경에서 기다리지 않고 그 가난에 저항했으며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렇다! 누구나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날 수 있고 그런 상황이 불만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가? 만약 당신이 처한 환경이 위의 상황들과 같다면 그렇게 도망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대개의 가난뱅이는 그처럼 도망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런 결단이 없으면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극복해 나갈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다는 것이고, 그 결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따라서 하라

세상에는 부자도 많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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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찾아온 오늘 하루는 어떤 하루인가요? 행복한 하루인가요, 불안하게 출발한 괴로운 하루인가요? 아니면 매일 똑같은 하루를 그저 습관처럼 보내고 있나요?

저의 하루는 단언컨대 행운이 가득한 감사한 날입니다. 무슨 근거로 이렇게 확신하느냐고요? 제가 그렇게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행운을 선택하는 순간, 저는 행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됩니다.

꽉 움켜쥘 준비가 되어 있으니, 아무리 작고 사소한 행운이 빠르게 스쳐가도 저는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감사함과 행운을 선택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운이 가득한 날을 선물 받았습니다."

"오늘 제가 하는 모든 일이 다른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 감사합니다."

매일 새롭게 감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어느덧 일상은 크고 작은 행운으로 차오릅니다.

여러분이 지나온 오늘 하루는 어떤 하루였나요?

저의 오늘은, 단언컨대 행운과 감사가 가득한 날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늘 저에게 밀려온 행운들을 세어보면 열 손가락을 다 접어도 모자랍니다.

무슨 특별한 날이었냐고요?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매일 고마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행운이 가득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저의 선택입니다. 저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감사와 행운을 선택합니다.

저에게 매일 행운을 가져다준 마법지팡이는
바로 ‘감사일기’였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가 어떻게 되길 바라나요?

오늘에 관한 소망을 품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그 소망을 현실로 바꾸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요?

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도구가 여러분의 삶 속에 있습니다. 그저 손을 뻗어 잡기만 하면 됩니다.

감사일기 속에는 아름답고 긍정적인 언어가 가득합니다.

그러한 긍정언어에 노출되면 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긍정의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감사일기를 쓰면 쓸수록 저는 단어가 주는 힘, 말의 힘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제가 썼던 긍정과 감사의 언어들이 부메랑처럼 저에게 다시 돌아오고, 제가 뿌린 긍정적인 말의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랐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쓴 감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대로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 제 인생에 신기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이런저런 ‘역할을 맡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사람’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에 저는 ‘1년에 100권 읽기, 하루에 2시간 이상 책 읽기’라는 목표를 세우고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책읽기에 몰입했더니, 책만이 저의 사고와 행동,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해졌습니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나자 다분히 편향적이었던 제 독서취향도 자연스럽게 변화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게 되었습니다.

독서를 통해 제 생각과 의식의 흐름이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제 삶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지식이 쌓이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세상이 넓어지는 기쁨을 느끼긴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제 삶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방향이 잡히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또 약간의 슬럼프를 겪으며 시간을 무심히 흘려보냈습니다.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자 저의 하루하루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로 ‘감사’라는 말은 ‘Thanksgiving’입니다. 흔히 쓰이는 ‘Thanks’보다 좀 더 격식을 갖춘 표현입니다.

어떤 신문칼럼에서 ‘Thanksgiving’의 뜻을 "Thanks라고 말하고 Giving으로 주는 것이다."라고 풀이한 것을 보고, 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습니다.

감사일기를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은 독서이고,
독서를 지속시키는 힘은 감사일기입니다.

뒤에서 더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감사일기를 습관으로 만드는 한 가지 비법을 먼저 소개하자면, 바로 독서입니다.

저는 책읽기를 통해서 내면의 힘을 조금씩 키워나갔고, 책에서 얻은 교훈이나 감동에 대해 감사하는 내용을 감사일기에 적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감사일기를 매일 쓰는 습관이 시나브로 자리 잡았고, 책을 더욱 깊이 읽게 되었습니다.

감사일기를 쓰면 쓸수록 저는 제 모든 시간과 공간, 365일이 행운과 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일기를 한두 번 썼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부단한 독서와 감사일기가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저는 오늘도 기적과 행운이 가득할 하루를 기대하면서 눈뜨는 순간 침대에서 낮은 목소리로 읊조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함을 말하는 나의 목소리에 한 번 더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살림과 육아, 직장생활 외에 특별히 공부를 한다거나, 취미에 몰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끈기 있게 추진하는 일도 없습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낼 뿐인데도 저는 그저 바빴습니다.

짜임새 없이 그냥 닥치는 대로 주어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바쁘다, 바쁘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유 없이 바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책을 선택했습니다.

‘책부터 읽자. 일단 많이.’

행운은 늘 우리 옆에 있습니다. 그 행운을 잡는 것은 내가 행동할 때만 가능합니다. 나의 행운을 알고 내가 행동할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현재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저 자신의 마음부터 비워야 합니다.

지나간 실패, 실수, 성공의 기억들을 모두 비워내야만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간 경험에서 배움을 얻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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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여럿이 함께 살았으니 마지막 순간 잠시 고독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61강
물이 앞을 가로막는 곳. 물에 젖지 않는 방법은 셋. 다리를 놓아 건넌다. 배를 만들어 타고 건넌다. 강바닥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건넌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은 없다.

그런데 생각을 뒤집으면 다른 길도 있다.

그것은 건너는 방법 대신 건너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

지금 서 있는 이쪽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

강을 건너는 지혜와 용기와 노력 모두를 지금 내가 선 자리에 쏟는 것.

#62강연
내 입에서 나를 꺼내는 것.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너는 어떻게 살래? 묻는 것.

유명인사 에피소드 이것저것 수집해 병풍처럼 주르륵 펼쳐 보이는 강연은 박수 치고 나면 뭔가 허전하다. 뭔가 허무하다. 주어와 서술어가 따로 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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