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누구인가? 만족하는 이다. 만족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런 이는 없다." - 벤저민 프랭클린
가난한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돈이나 기술, 기회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어서 성공하겠다는 야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발랑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었다.
저는 그게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가 갖고 싶은 걸 손에 넣으려는 건 욕심이 아니라 야심이거든요.
‘나는 반드시 부자가 되겠다’는 결심은 부자가 되게 하는 특효약이자 동시에 그 싹을 트게 하는 기적의 약인 것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대다수의 부자들은 결핍 때문에 큰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세계의 자수성가 부호들은 부자가 되기 전부터 가난을 혐오하고 부를 갈망했으며, 이는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즉, 그들은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포기할 수 없는 영원불변의 목표를 세웠으며, 그것이 자신이 부자가 된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패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성공에 이르는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욕심 없이 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것을 탓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욕심’과 ‘야망’을 구별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그 어떤 그럴듯한 이유보다도 돈을 많이 벌고 나아가 성공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야심의 부재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부자가 된 이유는 바로 성공을 향한 야망이 컸기 때문이다.
반면 대부분의 실패자들은 이유가 무엇이든 성공에 이르는 꿈을 꾸지 않았거나 꿈을 꾸었어도 유의미한 행동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오해 없기 바란다. ‘유의미한 행동’이다.
가난은 결국 마음의 병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병든 마음을 먼저 바꾸지 않으면 성공은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다.
반면 부자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멋지게 살겠다는 의지와 마음가짐이 있다면 성공하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가난은 모든 ‘악(惡)의 근원’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부(富)가 모든 ‘선(善)의 근원’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어느 누구도 가난해져야 할 이유는 없으며 누구라도 가난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권리도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마침내 빠삐용은 거친 파도의 출렁거림 속에서 하나의 규칙을 발견한다
예컨대 ‘가난이 죄냐?’, ‘돈이 없는 게 죄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명백하다. 가난이 죄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90% 정도가 돈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불편한 진실을 넘어 공공연한 비밀이다. 가난이 죄 이전에 이미 현실인 것이다.
부자가 될 수 있는 그 많은 기회를 다른 사람들에게 헌납하면서 자신은 가난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것이다.
대가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도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아니라고 극구 변명한다
이 세상에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데 여기에는 환경도 큰 몫을 차지한다.
가령 사람마다 각자의 환경이 있고, 환경과 운명 간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마음 상태나 생각, 일의 방식까지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과 같아진다.
예컨대 가난한 사람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밖에 없다. 그들의 대화 주제 역시 싸게 파는 할인점에 대한 이야기나 절약하는 기술 정도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생존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시야는 점점 더 자기가 속한 울타리에 적응하여 좁아지고, 결국 패기와 의지는 마모되어 버린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갈망하면서도 부자들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낀다.
그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운이 좋았거나 부모를 잘 만나 부자가 됐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물론 그런 요소도 일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운이 좋아서 부자가 된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부자는 모두 부자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사람이며 그들만의 비결이 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길로 가는 계단을 오르기는 쉽지 않으며, 정말로 그 길을 가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서 있는 계단에 이별을 고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배반이 아니라 자아의 개선과 발전이다. 무척 어렵겠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혹시 ‘나는 하루하루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돈만 있으면 돼’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현재의 생활에서 벗어날 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돈이 돈을 번다’는 이야기는 일상 속의 우스갯소리로 듣고 끝낼 말이 아닌 것 같다.
부자가 되고 싶은 꿈과 돈이 돈을 버는 현실로 인해 체념이 반복되는 와중에 우리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꿈을 펼쳐야 할까?
느긋하게 ‘하루하루의 생활이 가능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방심하다가는 상황이 정말 나쁜 쪽으로 기울고 만다.
가난한 사람들의 진정한 문제는 가난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현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에서의 어리석음에 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현실을 원망하거나 한탄하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
먼저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이겨나갈 수 있어야 한다.
가난을 참아내는 사람들의 능력을 보면 때로는 감탄이 나올 만큼 놀랍다.
그들은 모두 부자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말로만 가난이 싫다고 할 뿐 가난을 증오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들은 육체의 고된 시련과 영혼의 수모를 겪으면서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그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인생에 있어서 치열한 전투 없이는 가난을 벗어날 수 없고 부를 쌓을 수도 없다.
소파에 누워 가난에 대해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봤자 그것은 아무 희망도 없는 행동일 뿐이다. 실제로 실천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사례를 봐도 수없이 많은 자수성가 부자들이 자신이 속한 가난한 환경에서 기다리지 않고 그 가난에 저항했으며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렇다! 누구나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날 수 있고 그런 상황이 불만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가? 만약 당신이 처한 환경이 위의 상황들과 같다면 그렇게 도망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대개의 가난뱅이는 그처럼 도망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런 결단이 없으면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극복해 나갈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다는 것이고, 그 결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부자도 많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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