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은 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질투하고 있을 뿐입니다.

굴하지 않고 자신을 중심에 두는 자세로 나아간다면 미움받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원의 중심에 도달하면 상대방이 그저 잠시 질투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더는 주변 사람들도 질투하지 않으며 좋은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질투는 흔히 욕설과 험담, 괴롭힘 등으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충고, 주의, 걱정, 무시(무반응) 등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알아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질투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가 말할 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확실히 확인하는 것뿐입니다.

이때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의기소침해지거나, 불안감 때문에 불쾌한 감정에 휩싸인다면 상대방이 나를 질투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말고 전류가 흘러나가는 발바닥의 감각에 집중하면 질투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분노와 반성을 무한 반복하는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됩니다. 머지않아 자신을 중심에 둘 수 있게 됩니다

‘말처럼 쉬울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한 분은 자신에게 험하게 말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발바닥에 신경을 집중하는 연습을 해봅시다. ‘내가 잘못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상대와 이야기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지면에 밀착한 발바닥의 감각을 확인합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디서든 감정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봅시다.

상대방이 질투할 때도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면 양쪽 모두의 마음을 모두 안정시키고 자기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으로 설명하면 ‘계통적 탈감작요법’이 됩니다.

질투를 받아 패닉 상태에 빠졌을 때 발바닥에 신경을 집중하여 마음을 안정시키는 연습을 되풀이하여, 안정을 질투에 조건화시킵니다. 그러면 질투를 받았을 때 발바닥을 의식하는 것만으로 조건화된 안정 효과가 나타나 침착하게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자기중심에 둘수록 인력이 커지므로 싫은 사람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싫어하는 인력이 큰 사람 주위를 맴돌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이 되면 껄끄러운 사람, 싫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연스레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담담히 생활하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생활하고 우선순위에 자신의 기분을 두면 인력이 커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력이 커지면 껄끄러운 사람과는 멀어지고 필요한 사람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껄끄러운 사람, 싫은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필요한 사람을 끌어들이는 인력이 작다는 사실을 깨닫고, 태도를 조금씩 자기중심적으로 바꾸어 인력을 키우면 됩니다.

껄끄러운 사람, 싫은 사람이 멀어질 만큼 충분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면 가장 소중한 사람이 다가오는 균형 잡힌 세계가 찾아올 것입니다.

싫어하는 기색이 태도에 드러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떻게 인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의외로 방법은 무척 간단합니다. ‘싫은 건 싫은 거야!’ 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면 됩니다.

‘일이니까.’ ‘인간관계는 소중하니까.’ 같은 상식으로 자신의 싫은 감정을 덮어버리지 않도록 합시다. ‘싫은 건 싫은 거야!’ 이런 마음가짐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마음이 태도에서 드러나도 좋습니다. 만일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상대방의 질투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시다.

이처럼 자신의 싫은 감정 자체를 소중히 여기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싫어하는 사람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을 중심에 두어 인력을 키우면 싫어하는 사람은 멀어지며,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만이 모여들어 즐거운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 인도 우화집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깨달음을 주는 다양한 이야기!
재미있다👍🏻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이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

이런 이야기 책을 읽으면
어릴 때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라 더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특별한 진리나 비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목발을 집어던지고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대들도 나처럼 목발을 내려놓으면 된다. 나에게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쉽고 간단한 일이다."

몇 달 동안 젊은이들은 그에게서 걷는 법을 배웠다. 어떤 제자는 그의 말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그러는 사이 차츰 더 많은 사람이 집을 떠나 숲으로 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고행과 금욕을 실천하며 목발 없이 걷는 수련을 하고, 계율과 교리를 만드는 이들도 있었다.

현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렇게 수만 명의 추종자들이 ‘목발에서 해방되는 법’을 배웠다.

그 보상은 다름 아닌 ‘목발 없이 자유롭게 걷는 내세의 삶’이었다.

한 가지 미스터리로 남은 것은, 이 수많은 추종자 중에 초기의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목발을 내던지고 자유롭게 걷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매주 기도회를 열고 경전을 암송하고 목발교 창시자를 찬양했지만 여전히 모두 목발을 짚은 상태였다. 군중 앞에서 설교하는 지도자들도 목발을 짚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목발교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교리와 가르침 밖에서는 진정한 자유를 실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스러운 물건은 황금 유리관에 소장된, 현자가 불 속에 던져 버렸던 타다 남은 목발의 잔해였다.

나는 그대의 몸을 종이로, 신체의 변화라는 펜으로 편지를 썼다. 그리고 배달부는 잊지 않고 편지를 건넸다. 그 편지를 전달한 배달부는 ‘시간’이다.

몇 년 전, 그대의 머리가 희끗해졌다.
그것이 내가 보낸 첫 번째 편지였다.
그대는 그 편지를 무시했다.

치아가 흔들린 것이 내가 보낸 두 번째 편지였다.

세 번째 편지는 그대의 시력이 떨어졌을 때 보냈다.

그리고 네 번째 편지는 몸이 마비되었을 때이다.

"나는 짐을 지고 가는 게 아녜요. 이 아이는 내 귀여운 동생이지 짐이 아녜요. 그래서 나한테는 전혀 무겁지 않아요. 나는 동생을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쁨으로 임했을 때 어떤 것도 짐이 아닌 것이다.
비록 그것이 뜨거운 태양 아래 산길을 오르는 일일지라도.

사람은 화가 나거나 감정적이 되거나 몹시 다급하면 자신도 모르게 본성이 드러나 자기 본래의 언어로 말하게 되거든

우리는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연기하고, 지적이고 교양 있고 세련되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우리의 본성, 본래 언어는 무엇인가?

화가 나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의 우리의 언어는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기분 좋을 때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

남자는 자신이 원래 도둑이며 미천한 자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았다. 다시 밑바닥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유일한 길은 혼신을 기울여 성자 흉내를 내는 길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해에 걸쳐 온 존재를 다해 성자 연기를 한 결과 남자는 정말로 성자가 되어 갔다. 불안감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졌으며, 생존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다.

더 이상 성자 흉내를 낼 필요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서 나는 어떤 연기를 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무엇을 연기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낯선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오. 나의 행운을 내 집 문을 두드리는 모든 사람과 나눠야 했다면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 상상해 보시오."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에야 겨우 집 한쪽 귀퉁이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에 그 집을 떠나기 전에 크리슈나는 집주인을 축복하며 말했다.

"당신의 말이 옳소. 부는 더 많은 부를 필요로 하는 법이오. 당신은 이미 부자이지만, 내 축복에 의해 앞으로 더 많은 부를 얻게 될 것이오."

그토록 무례했던 부자에게는 더 많은 부를 가질 수 있도록 축원해 주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한 가난한 남자에게는 저주에 가까운 기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두 사람 모두를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부자인 사람은 부에 중독되어 있다. 나는 그의 물질적인 욕망이 채워지도록 더 많은 부를 그에게 주기로 했다. 더 많은 부를 가질수록 그는 더 외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돈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눈물 흘릴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기 시작할 것이고, 더 의미 있고 영속적인 무엇인가를 갈구할 것이다."

아르주나가 가난한 사람에 대해서도 묻자 크리슈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선하고 친절한 마음씨의 남자가 언제까지나 외딴곳의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서 늙은 암소에 의지해 가난하게 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는 다른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그 오두막과 암소이다. 그것들을 버리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거부하고 지금의 보잘것없는 삶에 매달려 있을 때,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신이 하는 일이다. 그는 그 장소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이 그를 진정으로 위한 일이다."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얼른 그 경비원을 불러오라! 그는 그대처럼 다듬어지고 훈련된 목소리가 아니라 나를 향한 진실한 가슴으로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대는 최고의 가수를 내쫓은 것이다."

진실한 감정은 누구나 느낀다. 들숨과 날숨에 혼이 담긴,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는 어디에나 가닿는다. 인간의 가슴뿐 아니라 돌로 만든 신상에게도.

불행의 양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다만 그것을 어디에 담는가에 따라 불행의 크기가 달라진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호수가 되라

소금의 양은 같지만, 얼마만 한 넓이의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짠맛의 정도가 다른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 100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열심히 노력하면 한두 가지는 해결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잃을 것이고, 늙을 것이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대의 101번째 문제는 삶에서 아무 문제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모든 것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마음이다.

만약 그대가 이 마음을 자각하고 그것에서 벗어난다면 100가지의 문제에서도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평화는 그곳에서 시작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들은 아침 8시에 우르르 들어오고, 저녁 6시면 우르르 나간다. 그중에서 손님이라곤 단 한 사람도 없다. 나는 온라인 서점에서 일한다.

편리한 서점. 머물지 않는 독자. 긍정의 뉘앙스와 부정의 뉘앙스를 각각 지닌 이 말들이 내겐 동의어로 느껴졌다.

책을 편리하게 살 수 있으니 오래 머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내게 서점이란 책 한 권을 사서 나가는 곳일 뿐 아니라, 오래 살펴보며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마침내 어떤 세계로 들어서는 곳이었다.

출구를 찾아 나가려다가도 자꾸 새로운 입구로 들어서게 되는 곳이었다.

서점은 출판사와 독자 사이에서 책을 중개하는 곳이다. 온라인 서점 MD는 책이 독자 손에 쥐여지는 전 과정에 관여한다.

한 권의 책은 다른 책으로 이어질 때 더 빛을 발한다고, 중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책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모든 책은 다른 책을 통해 확장되고 깊어지고 반박될 수 있다.

한 권의 책만으로도 굉장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만 다음 책으로 맞춤하게 이어질 때 독서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선사한다.

한 권의 책도 만족스럽지만, 책이 책으로 연결될 때 나는 생각이 조금 더 두터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자들에게 책을 잘 소개하고, 책과 책을 연결하는 일을 잘 하려면 많은 책을 알아야 했다. 많은 책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많은 책을 읽어야 했다.

일은 충분히 많았고 늘 시간에 쫓겼다. 읽을 책이 너무나 많은 반면 시간은 크게 모자랐다. 다행히 야근 압박은 받지 않기에 일찍 퇴근해서 항상 책을 읽었다. 주말에도 혼자 있는 시간엔 늘 책을 읽었다.

나 자신에게만은 괜찮은 서점원이 되고 싶었다

이런 생각과 마음을 페이스북에 일기로 써나갔다. 부모이자 서점원으로서 생각하고 싶은 것들과 생각할 여유가 없는 날들의 풍경을 썼다. 매일 쓰지는 못했으니 아주 간헐적인 일기였다.

진득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이라도 붙잡아두려는 노력이었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는 행위였다.

간헐적이고 순간적인 것들이라도 오래 쌓으면 나를 어디론가 나아가게 해주지 않을까 막연히 바랐다. 그 일기들이 〈채널예스〉 ‘아이가 잠든 새벽에’와 ‘솔직히 말해서’ 코너에 칼럼으로 연재되었고, 칼럼들은 다시 이 책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시간에 허덕이지만 잘하고 싶은 일은 많은 한 사람의 이야기다.
생각만 많고 삶은 대단할 것 없는 존재의 기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나름의 최선을 계속 이어간다면, 작은 시간을 그러모아 오래 품고 다듬은 생각들이 서서히 삶에 뿌리를 내린다면,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믿음으로 매일,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조금씩 읽고 써왔다.

매일 매일의 아쉬움을, 자주 허덕이는 마음을, 조각 시간을 모으는 일이 가치 있다는 믿음을 시간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

한 번 넘어본 문턱은 문턱이 아니었다.

밀려오는 일을 해치우던 와중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잠깐의 시간, 고요한 사무실에서 나 자신을 생각하는 일은 거대한 일 뭉치에 착 달라붙은 나를 떼어내는 일 같았다.

삶이 일의 속도를 따라가야 할 때, 우리는 마땅히 챙겨야 할 것들을 미처 살필 여유를 갖지 못한다. 나는 이 잠깐의 시간에 그 여유를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시간 중 많은 부분이 사라졌다. 아내와 대화를 나눌 시간, 책을 읽고 잠시 몽상에 빠질 시간, 멍하니 넋을 놓을 시간이 절실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밤은 아내와 나란히 누워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오늘 하루 겪은 일과 서로의 눈에 비치는 서로의 모습에 대해 오래도록 함께 이야기했다.

세상의 떠들썩한 화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를 두고 생각을 교환했다. 각자 책 속으로 빠지기도 했다. 한 사람의 하품이 잦아질 때까지 책을 읽다 불을 껐다. 며칠 뒤엔 머리맡의 책을 서로 바꿔서 읽었다. 어느 날은 아직 먼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다.

먼 미래의 무엇을 위해 근면하고 싶진 않다. 다만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도 나 자신을 보듬고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일에 소홀하고 싶진 않다. 짧은 시간들이라도 최대한 이어 붙여 바지런하게 활용하고 싶다.

시내버스 기사인 허혁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하루 열여덟 시간 운전하며 썼다. 시간이 없어 "부리나케 써놓고 생활 속에서 퇴고했다" 한다.

‘부리나케’ 보내는 시간을 쌓아서 나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아이에게 아빠는 너로 인해 자랐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도 자랐다고 언젠가 말해줄 수 있길 소망한다

나는 꽤 강경한 칼퇴주의자다. 내 인생은 일 바깥에도 있기 때문이다.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일 바깥의 삶이 허술해진다. 회사 일에 지나치게 책임을 느끼면 회사 바깥의 일에 무책임해진다. 시간의 유한함을 생각해보면 이건 자연법칙이다.

늘 일을 잘하고 싶었다. 좋은 책들을 잘 알아보고 소개하고 싶었다. 책 한 권을 잘 소개하는 일뿐 아니라, 어떤 책들을 함께 읽으면 더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지도 전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그저 상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관심과 취향을 사려 깊게 읽으며 그에 맞는 방식으로 책을 권하고 싶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고 싶었다. 멋진 이야기들을. 수집한 이야기들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적당한 순간이 오면 주의 깊게 듣는 귀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마법에 홀린 듯 빠져드는 눈을 보고 싶었다. 모든 이의 귓가에 이야기의 씨를 뿌리고 싶었다. –마리암 마지디, 이란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

한 여인은 아름다운 데다가 옷을 잘 입어서 가는 곳마다 관심을 집중시켰다. 모두가 그녀와 얘기하고 싶어 하고,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초라한 옷을 입은 여자의 이름은 ‘진리truth’이다.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매력적인 옷을 입은 여자는 ‘이야기story’이다.

이야기는 진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과 같다. 그리고 진리 역시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한 이야기true story’라고 부른다.

"그대는 그대의 이야기이다. 그대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진리를 그대의 이야기에 담아야 한다. 그대의 진리를 곧바로 주장하면 사람들은 관심 갖지 않을 것이다. 고집 세고 에고가 강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대의 진리에 그대만의 이야기로 옷을 입혀라. 그때 그 진리는 설득력을 지닐 것이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대는 먼저 삶을 경험해야 한다. 이야기는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우화는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일깨우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시킨다. 그래서 세상을 더 경이롭게 여기도록 인도한다.

"이 보석이 얼마나 값진지 알지만 당신이 내게 훨씬 더 귀중한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석을 선뜻 내어 줄 수 있게 만든 당신 안의 그 무엇을 내게 주세요."

"이것은 우리가 ‘예민한 보석’이라 부르는 오팔입니다. 사람의 체온에 따라 빛이 변하지요. 이 보석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끌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람의 손으로 고이 잡는 것뿐입니다."

한 개의 평범해 보이는 돌이 보석으로 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것을 바닥에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고이 감싸는 것, 그것이 진귀한 보석임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이야기들이다. 주장이나 이론보다는 가슴속에 보석 같은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이 더 온전하게 인간적이다. 그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으면 우리도 죽지 않는 것이다.

벌들은 그저 한 마리 벌의 열정과 행동 때문에 꿀을 얻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을 때 그것을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신이 자신의 진리를 말할 때 이 이야기들이 훌륭한 은유의 옷이 되기를.

그리고 나에게도 그러했듯이, 이 이야기들이 당신 안의 지혜를 당신에게 열어 주기를. 왜냐하면 뛰어난 이야기꾼은 잘 듣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제가 한 일은 단순했습니다. 새가 앉아 있던 나뭇가지를 잘라 버렸을 뿐입니다."

지금 내가 움켜쥐고 있는 나뭇가지는 무엇인가? 높이 날지 못하도록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은? 새로운 차원으로 날아오르기 위해 언제 그 나뭇가지를 자를 것인가?

내가 날지 않으면 어느 날 삶이 강제로라도 날게 할 것이다. 내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려서라도. 스스로 자를 것인가, 아니면 부러뜨림을 당할 것인가?

그 소년에게 있어서 배운다는 것은 기계적으로 외워서 알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깨닫고 느끼고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했다. 이것이 이 소년에게는 진정한 배움의 의미였다.

"적어도 한 문장을 진정으로 배운 것을 축하한다. 경전의 단 한 문장이라도 제대로 배운 것을 축하한다. 나는 그 한 문장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 쉽게 화를 내고 흥분하며 냉정과 이성을 잃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나를 화나게 할 수 있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네가 더 많이 알고 있다. 네가 나보다 더 많이 배웠다."

내가 배운 한 문장은 무엇인가? 머리로 암기한 지식이 아니라 어떤 살아 있는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가?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진정한 앎은 무엇인가?

세상은 언제나 싸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꽃과 돌멩이의 온기는 다르다고 서로 소리치지만 누가 꽃이고 누가 돌멩이인지 신조차 둘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다.

나는 꽃이고 상대방은 돌멩이라는 신념하에 우리 모두가 꽃임을 망각하고 서로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 나는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에고를 비우는 것은 자아의 완성에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하는가는 그들의 카르마가 되지만, 그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나 자신의 카르마가 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편견에 쉽게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내가 더 재수 없는 사람인지 누가 아는가.

인간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편견의 방에 갇혀 살기보다는 매일 아침 달콤한 라스굴라를 나눠 먹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모두가 나를 믿었지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었어. 이제 그 믿음을 다시 얻었네. 나를 향한 믿음, 내 안에 깃든 치료의 힘에 대한 신뢰, 그것이 최고의 약이지! 나는 이제 충분히 나 자신을 치료할 수 있네.

탄센에게는 남을 이기려는 마음이 없다. 이것이 그가 계속 이기는 이유이다.

베주 바와라는 그 욕망을 버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바로 그 욕망이 있기에 전 생애 동안 음악에 헌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승의 말을 이해한 베주는 경쟁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서히 탄센을 잊어 갔다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처럼 매일 『바가바드기타』를 읽으려고 노력해 왔어요. 하지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에요. 이해한다 해도 책을 덮으면 금방 잊어버려요. 그러니 『바가바드기타』를 읽는 것이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네가 『바가바드기타』를 읽을 때 일어나는 일도 이와 같다. 너는 내용을 이해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읽은 것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경전 내용이 너의 마음 틈새로 다 빠져나가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행위가 너의 안과 밖을 서서히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이 꾸준한 수행이나 명상이 우리 삶에서 하는 일이다."

99클럽은 충분히 가졌지만 결코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행복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여전히 불행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들은 금화 한 개를 더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에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삶이 공평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어.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그것에 상관없이 넌 춤을 출 수 있다고 하셨어.

"네 말이 맞아.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우리는 춤을 출 수 있어!"

"그대의 말이 옳다, 아난다여. 그것이 내가 여행 장소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누군가가 나를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할 때, 그 간절한 마음이 내게 전해진다. 그러면 나는 그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끌린다. 그 만남은 두 에고의 만남이 아니라 영혼의 만남이 된다

각자가 본 것은 그 나무의 한 계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그대들에게 자신과 타인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아야 함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갇히거나 단절되지 않고 매 순간 신선함이 샘솟는 삶을 살게 하고 싶었다.

나무의 상태에 대한 그대들의 관찰은 훌륭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계절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나무든 사람이든 한 계절의 모습으로,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공정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일이다.

나무와 사람은 모든 계절을 겪은 후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가장 힘든 계절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 계절의 고통 때문에 나머지 계절들이 가져다줄 기쁨을 잃어서는 안 된다. 겨울만 겪어 보고 무의미한 삶이라고 포기하면 봄의 약속도, 여름의 아름다움도, 가을의 결실도 놓칠 것이다."

모든 것을 잃고 서리와 얼음으로 덮인 나무일 때, 헐벗은 가지에 바람 소리만 가득할 때, 그것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판단해선 안 된다. 연약한 움을 틔운 시기에는 그 연약함이 오므려 쥔 기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계절을 다 품고 한 계절씩 여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계절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나무는 잘 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겨울도 견딜 만하다는 것을.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바깥의 계절과 상관없이, 지금 나는 어느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가?

목발을 짚은 시민들은 무엇보다 통제가 쉬웠다. 외부에서 강요하기 전에 스스로를 자기 한계에 가둬 자유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