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아침 8시에 우르르 들어오고, 저녁 6시면 우르르 나간다. 그중에서 손님이라곤 단 한 사람도 없다. 나는 온라인 서점에서 일한다.

편리한 서점. 머물지 않는 독자. 긍정의 뉘앙스와 부정의 뉘앙스를 각각 지닌 이 말들이 내겐 동의어로 느껴졌다.

책을 편리하게 살 수 있으니 오래 머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내게 서점이란 책 한 권을 사서 나가는 곳일 뿐 아니라, 오래 살펴보며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마침내 어떤 세계로 들어서는 곳이었다.

출구를 찾아 나가려다가도 자꾸 새로운 입구로 들어서게 되는 곳이었다.

서점은 출판사와 독자 사이에서 책을 중개하는 곳이다. 온라인 서점 MD는 책이 독자 손에 쥐여지는 전 과정에 관여한다.

한 권의 책은 다른 책으로 이어질 때 더 빛을 발한다고, 중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책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모든 책은 다른 책을 통해 확장되고 깊어지고 반박될 수 있다.

한 권의 책만으로도 굉장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만 다음 책으로 맞춤하게 이어질 때 독서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선사한다.

한 권의 책도 만족스럽지만, 책이 책으로 연결될 때 나는 생각이 조금 더 두터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자들에게 책을 잘 소개하고, 책과 책을 연결하는 일을 잘 하려면 많은 책을 알아야 했다. 많은 책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많은 책을 읽어야 했다.

일은 충분히 많았고 늘 시간에 쫓겼다. 읽을 책이 너무나 많은 반면 시간은 크게 모자랐다. 다행히 야근 압박은 받지 않기에 일찍 퇴근해서 항상 책을 읽었다. 주말에도 혼자 있는 시간엔 늘 책을 읽었다.

나 자신에게만은 괜찮은 서점원이 되고 싶었다

이런 생각과 마음을 페이스북에 일기로 써나갔다. 부모이자 서점원으로서 생각하고 싶은 것들과 생각할 여유가 없는 날들의 풍경을 썼다. 매일 쓰지는 못했으니 아주 간헐적인 일기였다.

진득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으니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이라도 붙잡아두려는 노력이었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는 행위였다.

간헐적이고 순간적인 것들이라도 오래 쌓으면 나를 어디론가 나아가게 해주지 않을까 막연히 바랐다. 그 일기들이 〈채널예스〉 ‘아이가 잠든 새벽에’와 ‘솔직히 말해서’ 코너에 칼럼으로 연재되었고, 칼럼들은 다시 이 책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시간에 허덕이지만 잘하고 싶은 일은 많은 한 사람의 이야기다.
생각만 많고 삶은 대단할 것 없는 존재의 기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나름의 최선을 계속 이어간다면, 작은 시간을 그러모아 오래 품고 다듬은 생각들이 서서히 삶에 뿌리를 내린다면,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믿음으로 매일,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조금씩 읽고 써왔다.

매일 매일의 아쉬움을, 자주 허덕이는 마음을, 조각 시간을 모으는 일이 가치 있다는 믿음을 시간이 부족한 많은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다.

한 번 넘어본 문턱은 문턱이 아니었다.

밀려오는 일을 해치우던 와중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잠깐의 시간, 고요한 사무실에서 나 자신을 생각하는 일은 거대한 일 뭉치에 착 달라붙은 나를 떼어내는 일 같았다.

삶이 일의 속도를 따라가야 할 때, 우리는 마땅히 챙겨야 할 것들을 미처 살필 여유를 갖지 못한다. 나는 이 잠깐의 시간에 그 여유를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시간 중 많은 부분이 사라졌다. 아내와 대화를 나눌 시간, 책을 읽고 잠시 몽상에 빠질 시간, 멍하니 넋을 놓을 시간이 절실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밤은 아내와 나란히 누워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오늘 하루 겪은 일과 서로의 눈에 비치는 서로의 모습에 대해 오래도록 함께 이야기했다.

세상의 떠들썩한 화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를 두고 생각을 교환했다. 각자 책 속으로 빠지기도 했다. 한 사람의 하품이 잦아질 때까지 책을 읽다 불을 껐다. 며칠 뒤엔 머리맡의 책을 서로 바꿔서 읽었다. 어느 날은 아직 먼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다.

먼 미래의 무엇을 위해 근면하고 싶진 않다. 다만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도 나 자신을 보듬고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일에 소홀하고 싶진 않다. 짧은 시간들이라도 최대한 이어 붙여 바지런하게 활용하고 싶다.

시내버스 기사인 허혁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하루 열여덟 시간 운전하며 썼다. 시간이 없어 "부리나케 써놓고 생활 속에서 퇴고했다" 한다.

‘부리나케’ 보내는 시간을 쌓아서 나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아이에게 아빠는 너로 인해 자랐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도 자랐다고 언젠가 말해줄 수 있길 소망한다

나는 꽤 강경한 칼퇴주의자다. 내 인생은 일 바깥에도 있기 때문이다.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일 바깥의 삶이 허술해진다. 회사 일에 지나치게 책임을 느끼면 회사 바깥의 일에 무책임해진다. 시간의 유한함을 생각해보면 이건 자연법칙이다.

늘 일을 잘하고 싶었다. 좋은 책들을 잘 알아보고 소개하고 싶었다. 책 한 권을 잘 소개하는 일뿐 아니라, 어떤 책들을 함께 읽으면 더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지도 전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그저 상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관심과 취향을 사려 깊게 읽으며 그에 맞는 방식으로 책을 권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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