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야기를 수집하며 살고 싶었다. 멋진 이야기들을. 수집한 이야기들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적당한 순간이 오면 주의 깊게 듣는 귀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마법에 홀린 듯 빠져드는 눈을 보고 싶었다. 모든 이의 귓가에 이야기의 씨를 뿌리고 싶었다. –마리암 마지디, 이란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

한 여인은 아름다운 데다가 옷을 잘 입어서 가는 곳마다 관심을 집중시켰다. 모두가 그녀와 얘기하고 싶어 하고, 그녀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초라한 옷을 입은 여자의 이름은 ‘진리truth’이다.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매력적인 옷을 입은 여자는 ‘이야기story’이다.

이야기는 진리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과 같다. 그리고 진리 역시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한 이야기true story’라고 부른다.

"그대는 그대의 이야기이다. 그대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진리를 그대의 이야기에 담아야 한다. 그대의 진리를 곧바로 주장하면 사람들은 관심 갖지 않을 것이다. 고집 세고 에고가 강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대의 진리에 그대만의 이야기로 옷을 입혀라. 그때 그 진리는 설득력을 지닐 것이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대는 먼저 삶을 경험해야 한다. 이야기는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우화는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일깨우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시킨다. 그래서 세상을 더 경이롭게 여기도록 인도한다.

"이 보석이 얼마나 값진지 알지만 당신이 내게 훨씬 더 귀중한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석을 선뜻 내어 줄 수 있게 만든 당신 안의 그 무엇을 내게 주세요."

"이것은 우리가 ‘예민한 보석’이라 부르는 오팔입니다. 사람의 체온에 따라 빛이 변하지요. 이 보석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끌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람의 손으로 고이 잡는 것뿐입니다."

한 개의 평범해 보이는 돌이 보석으로 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것을 바닥에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고이 감싸는 것, 그것이 진귀한 보석임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독특한 이야기들이다. 주장이나 이론보다는 가슴속에 보석 같은 이야기를 간직한 사람이 더 온전하게 인간적이다. 그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으면 우리도 죽지 않는 것이다.

벌들은 그저 한 마리 벌의 열정과 행동 때문에 꿀을 얻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을 때 그것을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신이 자신의 진리를 말할 때 이 이야기들이 훌륭한 은유의 옷이 되기를.

그리고 나에게도 그러했듯이, 이 이야기들이 당신 안의 지혜를 당신에게 열어 주기를. 왜냐하면 뛰어난 이야기꾼은 잘 듣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제가 한 일은 단순했습니다. 새가 앉아 있던 나뭇가지를 잘라 버렸을 뿐입니다."

지금 내가 움켜쥐고 있는 나뭇가지는 무엇인가? 높이 날지 못하도록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은? 새로운 차원으로 날아오르기 위해 언제 그 나뭇가지를 자를 것인가?

내가 날지 않으면 어느 날 삶이 강제로라도 날게 할 것이다. 내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려서라도. 스스로 자를 것인가, 아니면 부러뜨림을 당할 것인가?

그 소년에게 있어서 배운다는 것은 기계적으로 외워서 알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깨닫고 느끼고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했다. 이것이 이 소년에게는 진정한 배움의 의미였다.

"적어도 한 문장을 진정으로 배운 것을 축하한다. 경전의 단 한 문장이라도 제대로 배운 것을 축하한다. 나는 그 한 문장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 쉽게 화를 내고 흥분하며 냉정과 이성을 잃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나를 화나게 할 수 있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네가 더 많이 알고 있다. 네가 나보다 더 많이 배웠다."

내가 배운 한 문장은 무엇인가? 머리로 암기한 지식이 아니라 어떤 살아 있는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가?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진정한 앎은 무엇인가?

세상은 언제나 싸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꽃과 돌멩이의 온기는 다르다고 서로 소리치지만 누가 꽃이고 누가 돌멩이인지 신조차 둘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다.

나는 꽃이고 상대방은 돌멩이라는 신념하에 우리 모두가 꽃임을 망각하고 서로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 나는 지금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에고를 비우는 것은 자아의 완성에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하는가는 그들의 카르마가 되지만, 그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나 자신의 카르마가 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편견에 쉽게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누군가에게 내가 더 재수 없는 사람인지 누가 아는가.

인간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편견의 방에 갇혀 살기보다는 매일 아침 달콤한 라스굴라를 나눠 먹는 것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모두가 나를 믿었지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었어. 이제 그 믿음을 다시 얻었네. 나를 향한 믿음, 내 안에 깃든 치료의 힘에 대한 신뢰, 그것이 최고의 약이지! 나는 이제 충분히 나 자신을 치료할 수 있네.

탄센에게는 남을 이기려는 마음이 없다. 이것이 그가 계속 이기는 이유이다.

베주 바와라는 그 욕망을 버리기가 매우 어려웠다. 바로 그 욕망이 있기에 전 생애 동안 음악에 헌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승의 말을 이해한 베주는 경쟁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서히 탄센을 잊어 갔다

"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처럼 매일 『바가바드기타』를 읽으려고 노력해 왔어요. 하지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에요. 이해한다 해도 책을 덮으면 금방 잊어버려요. 그러니 『바가바드기타』를 읽는 것이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네가 『바가바드기타』를 읽을 때 일어나는 일도 이와 같다. 너는 내용을 이해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읽은 것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경전 내용이 너의 마음 틈새로 다 빠져나가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행위가 너의 안과 밖을 서서히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이 꾸준한 수행이나 명상이 우리 삶에서 하는 일이다."

99클럽은 충분히 가졌지만 결코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행복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여전히 불행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들은 금화 한 개를 더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에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삶이 공평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어.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그것에 상관없이 넌 춤을 출 수 있다고 하셨어.

"네 말이 맞아.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우리는 춤을 출 수 있어!"

"그대의 말이 옳다, 아난다여. 그것이 내가 여행 장소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누군가가 나를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할 때, 그 간절한 마음이 내게 전해진다. 그러면 나는 그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끌린다. 그 만남은 두 에고의 만남이 아니라 영혼의 만남이 된다

각자가 본 것은 그 나무의 한 계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그대들에게 자신과 타인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아야 함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갇히거나 단절되지 않고 매 순간 신선함이 샘솟는 삶을 살게 하고 싶었다.

나무의 상태에 대한 그대들의 관찰은 훌륭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계절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나무든 사람이든 한 계절의 모습으로,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공정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은 일이다.

나무와 사람은 모든 계절을 겪은 후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가장 힘든 계절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한 계절의 고통 때문에 나머지 계절들이 가져다줄 기쁨을 잃어서는 안 된다. 겨울만 겪어 보고 무의미한 삶이라고 포기하면 봄의 약속도, 여름의 아름다움도, 가을의 결실도 놓칠 것이다."

모든 것을 잃고 서리와 얼음으로 덮인 나무일 때, 헐벗은 가지에 바람 소리만 가득할 때, 그것으로 자신의 전 생애를 판단해선 안 된다. 연약한 움을 틔운 시기에는 그 연약함이 오므려 쥔 기대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계절을 다 품고 한 계절씩 여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계절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나무는 잘 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겨울도 견딜 만하다는 것을.

힌디어에 ‘킬레가 또 데켕게’라는 격언이 있다.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길이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증명하면 된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바깥의 계절과 상관없이, 지금 나는 어느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가?

목발을 짚은 시민들은 무엇보다 통제가 쉬웠다. 외부에서 강요하기 전에 스스로를 자기 한계에 가둬 자유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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