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리더십, 특히 리더 개개인이 지성과 남다른 수준의 능력, 개성의 힘, 탁월한 설득력 등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이 어떻게 실제 리더가 되어 지속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결례를 무릅쓰고 리더들을 처음 만날 때마다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는지에 대해 묻는 습관이 있었다. 

‘당신을 탁월한 리더로 만든 결정적 요인은 무엇인가?‘ 

‘운, 추진력, 재능, 훈련, 경험 또는 그 밖의 다른 요인은?‘ 

‘리더십을 어떻게 발견했고, 어떻게 키워나갔는가?‘ 

‘리더십을 어떻게 실행에 옮겼으며, 어떤 인상적인 결과를 얻었는가?‘

저명한 비즈니스 업계, 정부기관, 문화계 리더를 거의 매달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2016년 블룸버그 TV에서 진행하는 인터뷰 쇼 피어 투 피어 Peereer toPeer)(2018년부터 PBS에서도 방송)를 시작하면서 ‘리더들이 하는 행동‘에 대한 탐구를 지속했다.

이 책은 이러한 수많은 인터뷰의 결과물이다. 

다양한 리더들의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시해 독자들이 스스로 리더십을 계발하는 데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하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리더십 관련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모두 리더가 될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 최고의 리더들에 관한 이야기는리더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의 삶과 커리어에 큰 유익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은 아이디어와 추진력만 갖고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리더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치를 발견하며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야기마다 깨닫는 바가 많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리더가되고 싶어 할까?

먼저 리더는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변화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리더는 사람들에게 좋은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셋째, 리더는 충족감과 행복을 주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강인한 결단력과 재능을 갖춘 리더들이 인류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뛰어난 리더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분명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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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하는 것이다."

링컨의 말뜻을 자기 비하에서 나오는 지나친 겸손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겸손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아요’를 남발하는 이유는 자신의 말에 확신이 없어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을 못 하고 오락가락 망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밝히다가 끝맺을 때 대충 ‘같아요’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이 말투는 자신의 인상에도 문제지만 대화할 때 장애를 만든다. 상대가 말끝마다 ‘같아요’, ‘같습니다’ 식이면 누가 그를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신뢰를 쌓겠는가?

"자신감 없어 보이는 표현도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표현을 쓰면 대화가 꽉 막혀 의미 없는 소리에 머물고 만다.

그래서 자신감 없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니, 책임지는 걸 싫어하는 거 아니야?

‘아무거나’라고 말하면 안 된다. 이는 함께 밥을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절대 아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고 중요한 결정은 타인에게 의존했으며 자신의 결정이 잘못될까 봐 걱정했다.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아무거나요’라고 하는 증상이 심할 경우에 ‘의존성 인격 장애’로 진단한다.

이를 앓는 사람은 부모에게 과잉보호를 받으면서 자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인이 돼서도 독립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지 못해 타인에게 의존하는 성향을 보인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의견을 물으면 자기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아무거나요’를 남발한다

직장 상사가 어떤 프로젝트가 좋으냐고 물을 때, 이성 친구가 어떤 이벤트가 좋으냐고 물을 때, 친구가 함께 보낼 휴가 여행지를 물을 때 ‘아무거나’라고 하지 말자.

‘아무거나요’는 결코 배려의 표현이 아니다.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밝혀야 대화할 때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말할 때마다 ‘때문에’를 붙이는 사람이 있다. 말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쌓인다.

스스로 자기 말 습관, 말버릇을 알아차리기란 힘들다.

하지만 자신이 자주 쓰는 말의 의미와 뉘앙스를 인식한다면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구실부터 대려고 한다.

책임을 전가하려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하는데 상대방이 자꾸 핑계와 변명을 대고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려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한마디로 비호감이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때문에’를 자주 쓰면 오해받을 일도 많고 비호감으로 보이므로 자제해야 한다.

그 대신에 ‘덕분에’를 자주 쓰자.

‘때문에’를 아예 쓰지 않기가 쉽지 않다면 ‘때문에’를 한 번 말할 때 ‘덕분에’를 반드시 세 번 말하자

"대화의 목적은 설득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입니다."

상대방이 나의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

대화는 설득이 아니라 상대의 생각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자신의 주장을 주입하고 상대를 설득하지 못해서 실망할 사람은 영업직만 해당할 뿐이다.

이들에게는 설득이 곧 대화의 목적이자 영업자로서 존재 이유이니까 말이다.

아들에게 늘 ‘틀렸다’며 스트레스를 주는 엄마, 직원에게 ‘틀렸다’고 지적하며 퇴사 욕구를 일으키는 상사는 대화 습관을 바꿔야 바람직하다.

습관적으로 ‘아니’라고
말해 버린다
심리적 안정장치

먼저 말하는 사람의 심리가 매사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현상을 두고도 유독 부정적인 면만을 본다.

이들은 유리컵에 물이 반만큼 채워진 상태를 보고 부정적으로 "반밖에 안 차 있네"라고 말한다. "반이나 차 있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도 부정적인 면을 먼저 보고 이 또한 부정어로 표현한다.

다음으로 부정어를 자주 쓰는 사람들은 안정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무엇을) 한다’고 해도 될 것을 그 반대말인 부정어 ‘(무엇을) 하지 않는다’를 써서 심리적 안정장치를 마련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한쪽이 애정을 확인할 때 심리적 안정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상대방은 이렇게 답한다.
 
"나를 사랑해?"
"사랑하지는 않아."
 

부정어가 들어간 이 대답은 애매모호해서 오해를 사기 쉽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부정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이 내뱉는 부정어는 상대의 기분을 해친다.

그리고 부정어는 의미가 애매모호해 의사를 부정확하게 만든다

장황한 말은
의미도 쓸데없게 만든다

말의 목적은 공감과 소통하는 데 있다.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의견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더욱이 쓸데없이 많이 쏟아 낸다면 그 자체로 소통에 장애 요소가 된다.

사람들은 그리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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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하는 것이다."

링컨의 말뜻을 자기 비하에서 나오는 지나친 겸손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겸손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아요’를 남발하는 이유는 자신의 말에 확신이 없어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을 못 하고 오락가락 망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밝히다가 끝맺을 때 대충 ‘같아요’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이 말투는 자신의 인상에도 문제지만 대화할 때 장애를 만든다. 상대가 말끝마다 ‘같아요’, ‘같습니다’ 식이면 누가 그를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신뢰를 쌓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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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기억과 밀접하다. 때론 기억 그 자체이기도 하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시간 여행 운운하지 않아도 그냥 그 시절로 가버린다. 그때 함께 이 노래를 듣던 친구, 그 시절 나의 꿈 등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어린 내 노래에 귀 기울여, 사사삭 사사삭 울창한 나뭇잎들이 박수를 쳐주는 듯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아무 걱정 말아라’ 위로해주던 느티나무!

세상 걱정 다 안고 있는 그늘진 어린 가슴을 쓰다듬어주던 손길.

마치 동화처럼 나는 나무에게 말했고, 나무는 그 얘기를 들어주었다.

느티나무에 기대어 부르던 노래는 그렇게 내 텅 빈 가슴을 채워주었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빚더미에 눌려 열아홉 살의 하루하루는 기운도 없고 희망도 없이 그저 깜깜했다.

작은 돌부리엔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 한 발짝 내딛게 해준다.

몇 년 전에 어릴 적 기대어 노래 부르던 그 느티나무를 찾아가 보았다.

‘많이 변했을까? 나무는 나를 알아볼까?’

가슴이 마구 떨렸다. 도착해보니 내가 살던 집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동네 분위기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실망하려던 차에 눈에 들어온 나무 한 그루. 느티나무는 예전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어, 왔어?’ 하고 나를 딱 알아보며…….

응, 나 왔어. 잘 있었지? 그땐 정말 많이 고마웠어. 내 어린 날의 친구!

작은 돌부리엔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 한 발짝 내딛게 해준다.

훗날 그 노래와 내 이름이 한 데 묶여져 50년 넘게 따라다닐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 노래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 돈을 받으면 나는 오만 원짜리 가수가 되는 거잖아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돈이면 쌀도 연탄도 넉넉히 들일 수 있는데……’ 하며 아쉬웠지만 여전히 난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어려운 일을 같이 겪지는 않았지만 그가 당한 일로 나 역시 남몰래 많이 울었다.

그의 순수는 늘 나의 타협과 비교가 되었다.

동생들과 먹고살아야 했기에 노래를 돈과 바꾸며 타협할 동안, 그는 처음 보던 그날의 그 빛나는 눈빛으로, 때묻지 않은 순수와 고집불통으로 자기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었다

김민기의 노래만큼 내 가슴에 와 닿은 노래는 없었다.

그가 만든 <아침 이슬>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가수 양희은이 아닌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나의 첫 히트곡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나 역시 슬픈 사랑을 할 팔자란 말인가?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건 무엇일까. 글쎄, 사랑은 결국 소유인 걸까?

내 것으로 가지는 것,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면 사람을 내 것으로 가진다는 건 무엇일까?

대체 사람이 사람의 무엇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온 세상이 찬란하게 보였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윤슬 같았다. 그렇게나 눈이 부셨다.

아니다! 세상이고 윤슬이고 간에 하나도 안 보였다. 오직 그 사람만 보였다.

그 잘 먹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늘어지게 자던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마음이 설렜지만 전혀 배고프거나 어지럽거나 헤매지는 않았다.

그렇게 눈에 콩깍지를 뒤집어쓰고 우리는 서로를 ‘내 사람’으로 가질 수 있었다.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결국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을 위한 연습이었나?

그래서 결론은, 세상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없다는 것이다.

내 노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두 남녀도 지금쯤 추억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추억을 가질 수 있는 한 서로를 가진 것이니까.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둘만의 추억이니까.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가? 이것은 퇴폐적인 가사다’라고 한 예전의 금지 사유가 얼마나 옳은 말인지. 이제야 그 금지 사유를 알 것도 같다.

나의 대꾸는 간단했다.

"상대하기도 싫으니 꺼지세요."

나는 이 세상에서 킹박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그 사람보다 더 큰 난리를 치든가, 아예 불쌍하게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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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내게 베푼 모든 실패와 어려움,

내가 한 실수와 결례,

철없었던 시행착오도 다 고맙습니다.

그 덕에 마음자리가 조금 넓어졌으니까요.


나이 드는 것의 가장 큰 매력은 웬만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 날에는 조그만 일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 잘 사는 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기에 모든 순간마다 흔들렸다.

내 삶을 지켜보며 그때그때 점수를 매겨주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으면 싶었다.

"잘했네" "이건 틀렸다" 하며 동그라미나 별표를 그려주는 분이 있다면 나날이 얼마나 쉬워졌을까?

무대에 서 있는 나를 향해 누군가가 욕을 하거나 위협을 해도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서른이 되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흔들림은 여전했다.

하지만 10대나 20대와는 다르게, 나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 세월만큼 버티고 선 느낌이랄까?

사십 대가 되니 두렵고 떨리게 했던 것들에 대한 겁이 조금 없어졌다.

더 이상 누가 나를 욕하거나 위협할 때 파르르 떠는 새가슴이 아니었다. "왜, 뭐!" 하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할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더 밟아대는구나. 한 번이라도 큰소리쳐야 건드리지 않는구나.’ 혹독한 지난 시간 덕택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별난 짓을 해도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노래에도 관객의 평이 모두 다르듯 정답이랄 게 없었다. 그러니 남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살기로 했다.

육십 세를 넘기니 흔들릴 일이 드물어졌다.

그토록 원했던 안정감인데, 이런 감정이 좋으면서도 한편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설렘과 울렁거림이 없이 침잠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몸이 움직이는 속도가 마음의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니, 예전 같으면 후다닥 해치울 일들이 한 뜸씩 느려졌다.

어느덧 칠십. "나이 먹는 게 좋다. 너희도 나이 들어 봐봐. 젊음과 안 바꾼다" 했었는데 무심코 젊은 날의 내 사진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

대체 무얼 하며 이 좋은 날들을 보냈나? 많은 나날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덧없이 빠져나갔구나!

봄꽃을 닮은 젊은이들은 자기가 젊고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도 젊은 날에는 몰랐다. 그걸 안다면 젊음이 아니지.

자신이 예쁘고 빛났었다는 것을 알 때쯤 이미 젊음은 떠나고 곁에 없다.

각자 본인 속도에 맞춰서 임해야 한다.

서두르면 탈이 나고, 마음 급해도 몸이 못 따라가니 시간이 두세 배 정도는 더 걸리더라는 얘기다.

돈에 대한 생각도 비슷했다. 넉넉하든지 부족하든지, 죽을 때 갖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던가.

흔히들 말하길, 제 꿈을 접고 참고 희생하면서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 어른이 된다는데…… 우리는 성큼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비교적 자기 안의 목소리를 많이 내놓고 살아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바다 위 반짝이는 윤슬같이 가벼운 대화로 깔깔거릴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알고 지낸 시간은 짧아도 마음속 깊은 얘기를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있다.

모두 나를 양희은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사람들. 더 챙기고 아껴주며 살 작정이다.

나는 또 질문했다. 방송을 그만두고 노년의 긴 세월 동안 무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유성 선배는 대뜸 그냥 살란다.

"여행 다녀. 신이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의 계획이라잖아.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살아."

선배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보다 몇 걸음 앞서가는 선배가 계시다는 게 참으로 고맙다

느리게 살기를 시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느려졌다.

빠른 리듬을 몸과 마음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빈둥거리듯 지내면 바쁠 때와는 다른 그림들이 보인다. 다시는 쫓기듯 바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걸 알게 될 때면, 이미 바쁠 일이 없게 된다는 사실에 허허로운 웃음을 짓게 된다.

세상일에 요령이나 지혜가 쌓이고, 하는 일이 무언지를 ‘쬐꼼’ 알 만한 때, 이미 일은 나를 떠난다. 내가 밀려난다. 그게 요즘 순리다.

노래가 무언지 ‘쬐꼼’ 알 만한데 더 이상 노래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니 할 만할 때 제대로 하려면 건강해야겠지. 즐겁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기, 이것이 꿈이다.

엄마가 편찮으시면서 비로소 주변에 엄마 없는 이들의 허전함과 서러움을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어느 날 후배가 우리 집에 놀러와서 내가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를 듣더니, 엄마 없는 자기로서는 ‘엄마’ 소리가 서글프다고 했다.

그 말을 머리로만 들었지 가슴으로 듣지는 않았다.

후배의 서러움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심정을 알 것도 같다.

엄마가 떠나시면 어쩌나 마음 졸이다가, 옆에 계셔서 안심하는, 그러면서도 마음과 달리 틱틱 쏘아대는 나는 영락없는 당신의 큰딸이다

얘, 그럼 내가 하루 종일 멍하니 있어야 되겠니?"

옆에서 자분자분 얘기 걸어주고 말대꾸해주는 말동무가 있는 게 나이 들면 제일 중요하고 소통 가능한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산단다.

그런데 엄마는 자식들이 허구한 날 바쁘고 저녁에야 들어오니 종일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하루하루가 적막했겠다.

엄마의 치매가 시작된 것은 무릎이 아프면서부터다.

포크아트를 위한 아크릴 물감이나 퀼트를 위한 조각천을 구하려고 남대문, 동대문 시장을 자주 다녔던 엄마는 무릎이 아프면서부터 잘 못 다니게 됐다.

그래서 종일 TV를 본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서 노인성 우울이 치매로 진행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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