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기억과 밀접하다. 때론 기억 그 자체이기도 하다.
어떤 노래를 들으면 시간 여행 운운하지 않아도 그냥 그 시절로 가버린다. 그때 함께 이 노래를 듣던 친구, 그 시절 나의 꿈 등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어린 내 노래에 귀 기울여, 사사삭 사사삭 울창한 나뭇잎들이 박수를 쳐주는 듯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아무 걱정 말아라’ 위로해주던 느티나무!
세상 걱정 다 안고 있는 그늘진 어린 가슴을 쓰다듬어주던 손길.
마치 동화처럼 나는 나무에게 말했고, 나무는 그 얘기를 들어주었다.
느티나무에 기대어 부르던 노래는 그렇게 내 텅 빈 가슴을 채워주었다
갚아도 갚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빚더미에 눌려 열아홉 살의 하루하루는 기운도 없고 희망도 없이 그저 깜깜했다.
작은 돌부리엔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 한 발짝 내딛게 해준다.
몇 년 전에 어릴 적 기대어 노래 부르던 그 느티나무를 찾아가 보았다.
‘많이 변했을까? 나무는 나를 알아볼까?’
가슴이 마구 떨렸다. 도착해보니 내가 살던 집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동네 분위기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실망하려던 차에 눈에 들어온 나무 한 그루. 느티나무는 예전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어, 왔어?’ 하고 나를 딱 알아보며…….
응, 나 왔어. 잘 있었지? 그땐 정말 많이 고마웠어. 내 어린 날의 친구!
작은 돌부리엔 걸려 넘어져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고,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세상천지 기댈 곳 없고 내 편은 어디에도 없구나 싶을 때, 이런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위로하며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 다시 한 발짝 내딛게 해준다.
훗날 그 노래와 내 이름이 한 데 묶여져 50년 넘게 따라다닐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 노래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 돈을 받으면 나는 오만 원짜리 가수가 되는 거잖아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돈이면 쌀도 연탄도 넉넉히 들일 수 있는데……’ 하며 아쉬웠지만 여전히 난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어려운 일을 같이 겪지는 않았지만 그가 당한 일로 나 역시 남몰래 많이 울었다.
동생들과 먹고살아야 했기에 노래를 돈과 바꾸며 타협할 동안, 그는 처음 보던 그날의 그 빛나는 눈빛으로, 때묻지 않은 순수와 고집불통으로 자기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었다
김민기의 노래만큼 내 가슴에 와 닿은 노래는 없었다.
그가 만든 <아침 이슬>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가수 양희은이 아닌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나의 첫 히트곡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나 역시 슬픈 사랑을 할 팔자란 말인가?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건 무엇일까. 글쎄, 사랑은 결국 소유인 걸까?
내 것으로 가지는 것,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면 사람을 내 것으로 가진다는 건 무엇일까?
대체 사람이 사람의 무엇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온 세상이 찬란하게 보였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윤슬 같았다. 그렇게나 눈이 부셨다.
아니다! 세상이고 윤슬이고 간에 하나도 안 보였다. 오직 그 사람만 보였다.
그 잘 먹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늘어지게 자던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마음이 설렜지만 전혀 배고프거나 어지럽거나 헤매지는 않았다.
그렇게 눈에 콩깍지를 뒤집어쓰고 우리는 서로를 ‘내 사람’으로 가질 수 있었다.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다.
모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결국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을 위한 연습이었나?
그래서 결론은, 세상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없다는 것이다.
내 노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두 남녀도 지금쯤 추억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추억을 가질 수 있는 한 서로를 가진 것이니까. 그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둘만의 추억이니까.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가? 이것은 퇴폐적인 가사다’라고 한 예전의 금지 사유가 얼마나 옳은 말인지. 이제야 그 금지 사유를 알 것도 같다.
나의 대꾸는 간단했다.
"상대하기도 싫으니 꺼지세요."
나는 이 세상에서 킹박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그 사람보다 더 큰 난리를 치든가, 아예 불쌍하게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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