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생산적이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옳지 않은 일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행한다. 그 옳지 않은 일 중 하나가 벌을 주는 것이다

"휴식 시간을 마음껏 즐기렴. 넌 그럴 자격이 있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어요. 어떤 행동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일수록 그 행동이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저희는 그 사실을 범고래들에게 배웠죠. 범고래들도 잘못한 일 대신에 잘한 일에 관심을 가져주면 올바른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못 본 척하라는 말은 잘 이해되지 않는군요."

"원치 않는 행동을 못 본 척하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환’이라는 의미를 놓치신 것 같군요."

"그건 우리의 관심을 조절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칙이 있는데 꼭 기억하세요. ‘잘못된 행동을 유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잘못된 행동에 쓰일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한 것은 단지 여러분의 초점을 변화시키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처음 여러분은 곁에 있는 사람들을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로 생각했고 그것은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 다음 여러분은 곁에 있는 사람을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던 친한 친구로 생각했고 그것은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초점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금 여러분이 경험했듯 여러분의 에너지를 크게 변화시킵니다."

"좋은 업무 성과는 명확한 목표에서 출발합니다. 만일 경영자나 관리자들이 직원들과 마주 앉아 서로가 공감하고 확실하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직원들은 회사에서 원하는 일이나 성과와 관련된 아무런 의견도 없이 자리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직원들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면 관리자가 어떤 일을 해도 소용이 없게 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조차도 그것을 배워 알고 있습니다. 앨리스는 갈림길에서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체셔 고양이를 발견하자 그 고양이에게 ‘어느 길로 가야 할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고양이는 ‘어디로 갈 건데?’라고 되물었죠. ‘모르겠어’라고 앨리스가 대답하자 체셔 고양이는 ‘그렇다면 어느 길로 가든 상관없어’라고 대답했죠.

전환의 의도는 긍정적 반응을 시작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올바로 행동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긍정적이지 않으면 영원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그는 지금에서야 그 사랑 게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건 아주 중요한 게임이었다. 당시 웨스와 그의 아내는 아이가 일어설 때마다 웃으면서 박수를 쳐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부모의 성원 속에서 어떤 아이가 그 행동을 계속 해나가지 않겠는가?

잘한 행동을 찾아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직장이나 가정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여러분이 원하는 행동을 훨씬 더 많이 끌어낼 수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어깨를 살짝 두드려주면서 ‘잘하고 있어’, ‘잘했네’ 같은 말을 섞어 긍정적인 반응이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격려 반응’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진정한 고래 반응은 이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 즉각적으로 칭찬한다.

● 사람들이 잘했거나 대체로 잘해낸 일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다.

● 사람들이 한 일에 대해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한다. 

● 계속해서 일을 잘해나가도록 격려한다.

인간에게 관심은 햇살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행동은 더욱 향상되고, 반대로 무시하게 되면 사그라지게 되죠.

다시 한 번 자신의 상사, 배우자, 아이들, 부모님, 혹은 부하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생겨나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보통 여러분은 언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입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입니다.

관심을 쏟지 않을 때는 언제이죠? 모든 일이 제대로 되어갈 때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가운데 아이를 가진 분들께서는 아이들이 잘하고 있을 때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아이들이 잘 놀고 있군. 아이들이 아주 조용한 걸 보니 말야. 이제야 좀 쉴 수 있겠네.’ 하지만 그 생각이 옳은 걸까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은 아이들을 동기화시킬 수 있는 최적기를 놓치고 있는 겁니다. 동기화시킬 수 있는 최적기란 바로 아이들이 생활을 가장 잘하고 있을 때입니다.

● 잘되고 있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긍정적으로 말한다.

항상 모든 사람들이 ‘내가 잘한 일을 알아주세요’라는 커다란 표어를 붙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겁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것을 강조해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예외적인 경우는 사라지고 긍정적인 것을 강조하는 일이 습관처럼 될 겁니다

부정적 반응은 특정 사람들을 좌절시킬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 반응을 계속 유지한다는 건 사람들과의 관계에 계속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 사람들을 동기화시키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고 확신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항상 스스로에게도 잘한 일을 칭찬하도록 하세요. 가치 있는 일은 참을성을 가지고 계속 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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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안 됐을 때 상처받을까 봐 그러지"라는 엄마의 말이 진심인 걸 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다.

상처받을 게 걱정된다면 미리 한계를 그을 게 아니라 "일이 잘 안 되더라도 괜찮으니까 일단 마음껏 해봐!"라고 응원을 해줘야 한다.

해보지도 않은 내게 미리 한계를 알려주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는 길이다.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굳어져버리고 만다.

내게 열등감을 갖게 하려면 단 한 사람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다

"한국인들이 거짓말을 잘하는 까닭은 머리가 좋기 때문이 아니라 잘 속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잘 속는 까닭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욕심이 많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김형희, 《한국인의 거짓말》(추수밭, 2016) 허태영 에디터 인터뷰 중에서

거짓말이 나쁘기만 한 것이라면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여기서 중요한 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지, 그 글이 훌륭하다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글이 그렇듯 첫 원고는 거칠고 투박했다.

내 이야기가 그의 말처럼 가치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원래 글이라는 건 저자의 생각과 경험이 기본 아니던가. 일상 이야기가 얼마나 의미 있는 소재와 주제가 될 수 있는데!

‘생계형 서평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금정연 작가는 책을 보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이나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비춰 이뤄진다고 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답변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누가 내 글을 혹독하게 평가하면 그 사람에게 우환이 생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경험과 생각만큼 좋은 글쓰기의 재료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오직 나로부터 시작된다.

글을 쓸 때는 즐겁게 써야 하는데 ‘내가 한국 사람인데 한글 문장을 이것밖에 못 쓰나’ 하는 자책을 굳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글을 쓸 때 내가 나를 표현하는 악기를 배운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아니면 외국어를 배운다고 생각하시면 ‘이런 표현도 가능하고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으실 거예요.

돈 안 들이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잖아요, 글쓰기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자신을 표현하시려면 그런 생각으로 임하시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유유, 2016) 김정선 저자 인터뷰 중에서

잘 쓰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괴로움을 끌어안은 채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자책하며 글을 쓴다고 해서 글에 대한 만족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오늘은 이렇게도 써봤다가 내일은 저렇게도 써보는 다양한 시도를 즐겁게 하는 것만이 글이 쌓이는 비결이라는 걸 그에게 다시 전하는 수밖에

행복을 다른 빛깔로 쓰는 건 참 어려워요. 그런데 불행이나 상처를 나의 이야기로 쓰는 것은 오히려 자기 개성이 저절로 드러나게 되거든요. 행복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개성 넘치게 쓰는 게 훨씬 더 어렵고요. 나의 상처를 나만의 빛깔로 쓰려면 본능적으로 솔직해지면 돼요.

《월간 정여울 01. 똑똑》(천년의 상상, 2018) 정여울 저자 인터뷰 중에서

정여울 작가의 말처럼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글쓰기를 잘할 수 있는 최고의 팁은 바로 내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꽁꽁 묶어두기만 하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용이 뒤엉켜버린다. 오랫동안 방치한 탓이다.

긴 시간 외면했기 때문에 힘든 감정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결심하고 글로 옮기다 보면 나중에는 제법 알아볼 수 있는 형체를 띤다. 좋은 글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나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여행이 좋아졌다.

돈과 시간이 많아서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여행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새로운 생각을 하는 나’와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줬기 때문에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내 머릿속을 바쁘게 만든 수많은 생각이 어떻게 갑자기 봄날 벚꽃처럼 팡팡 터지게 됐을까. 바로 매일같이 낯선 환경에 놓인 덕분이었다.

여행 중인 나는 날마다 다른 곳에서 잠을 잤고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했으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익숙하지 않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화폐도, 언어도, 집도, 풍경도 전부 새로운 것들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익숙해질 만하면 이동하는 것이 여행이었다.

삶의 모든 것들이 낯설어지다 보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걸 글로 옮기며 여행을 계속했다.

원래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단지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 할 이야기가 없다고 착각할 뿐이다.

날마다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같은 회사에 출근해 같은 동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 메뉴마저 익숙하다 못해 지겨운 음식을 먹는다. 하는 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내 생각과 콘텐츠가 확장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날마다 새로운 환경에 나를 놓아두는 여행을 떠나서야 할 이야기가 마구 생겨나고 그 덕분에 한 줄도 쓰지 못했던 글이 탄력을 받는 것이다

헤어스타일만 바꿔도 기분이 달라지는 게 사람이다. 그러니 뭐라도 새로운 일을 찾아 시도해보자. 그게 바로 인생의 여행이자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꿈과 열망을 적는 행위는 ‘사업 개시’ 간판을 내거는 것과 같다. 아니면 친구 일레인이 표현한 것처럼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선포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 말고도 목표를 적는 행위는 무척 과학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목표를 종이에 기록하는 것은 두뇌의 일부분인 망상 활성화 시스템을 자극하고 뇌의 그 특별한 시스템이 당신을 도와 목표를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헨리에트 앤 클라우저, 《종이 위의 기적 쓰면 이루어진다》(한언출판사, 2016) <꿈을 실현시키는 기록의 힘> 중에서

꿈을 적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라면 적지 말라고 해도 쓰고 싶다. 말하지 말라고 해도 툭툭 튀어나온다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그 답을 찾아가는 데 일기만 한 것도 없다.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 이야기를 쓰고 꼭 하고 싶었지만 삼켜야만 했던 말들도 쓰고 지나간 일들 중에서 아직도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일들도 꺼내놓다 보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그려진다.

후회되는 일도 허심탄회하게 쓰다 보면 그때의 내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지금은 아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내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기에 후회할 필요도 없다.

나조차도 잘 모르는 나부터 찾아야 종이에 적어가면서까지 이루고 싶은 꿈도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루고 싶은 꿈보다 나를 아는 게 먼저다. 좋아 보이는 목표를 적는 것보다 내 진짜 마음을 적는 게 먼저다.

사람에게는 생존을 위한 심리적 욕구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인정 욕구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생존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걸 확신하고 세상에 알리는 의미가 있는, 그것이 바로 인정 욕구고 인정 투쟁입니다. 인정을 받기 위해서 싸우는 투쟁인 거죠.

‘쓰고 싶은 이야기’와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다릅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부터 쓰는 게 아니라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우선이죠.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자기 삶의 현장 이야기입니다. 이게 어떻게 소설이 될까요? 있는 그대로 쓰는 건 안 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소설은 썸이다. 또한 롤러코스터다. 이 두 가지만 생각하시면 소설이 되는 것 같아요.

최복현 외 3인, 《좌충우돌 유쾌한 소설쓰기》(양문, 2017) 최복현 저자 인터뷰 중에서

내가 과연 그런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기지 전에 그냥 닥치고 쓰고 싶었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법.

‘원래’라는 것은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양반은 원래 그렇고 천민은 원래 그렇다는 게 말도 안 된다면서.

실제로 민심은 천심이라고, 백성들의 마음이 모이면 시대는 변화를 수용하는 쪽으로 응답해왔던 것 같다. 변화의 속도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테지만

짧은 문장일수록 힘이 있고 리듬감이 살아난다.

쓸 때는 부족한 것 같은데 막상 눈으로 읽거나 소리 내서 읽으면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멋을 부리려고 꾸며주는 말을 자꾸 끌어다 쓸수록, 자연스러운 표현을 하고 싶다고 접속사나 부사를 주렁주렁 달수록 좋은 글과는 점점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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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말한다. 황금빛 물결이 넘실대는 밀밭을 보면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네가 생각이 날 거라고. 그리고 그 생각이 나면서 밑발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도 좋아하게 될 거라고. 단, 네가 날 길들여 준다면.

우리는 생각을 홀로 떨어져 오랜 시간 무언가에 몰입하는 행위로 이해한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차분히 생각할 시간적 여유는 물론이고 고즈넉이 사색할 공간적 여유도 잘 내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우리의 말과 행동만 재촉한다.

만약 이런 재촉이 견디기 어려울 때가 온다면, 붉은 여왕의 충고를 기억해 두었다가 실행해 보면 어떨까.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일상의 행위들 그 틈바구니에 생각의 자리를 끼워 넣고 보는 것이다

경제학자 케인즈도 이런 말을 했다. "말은 다소 과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 없음에 대한 생각의 공격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일단 피사체의 상이 망막에 맺히면 시신경이 그 신호를 모아서 우리 뇌로 보낸다. 이때 망막에 퍼져 있는 시신경은 다발을 이루어 ‘맹점’이라는 구멍으로 빠져나간다.

빛을 감지하는 원추 세포가 없어 상이 맺히지 않기에 맹점이라 불리는 것인데, 놀라운 점은 우리 뇌가 그 빈 부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뇌가 개입(해석)하여 그 빈 자리를 메워 버리기 때문이다. 오래전, 세잔이 직관적 통찰로 메워 버렸던 바로 그 구멍 말이다

이 입체파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 파블로 피카소다. 그는 "사물을 그릴 때 생각하면서 그리지 보면서 그리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며, "예술을 통해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이 아닌 그 어떤 것에 관한 우리의 생각"이라고 하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험을 하는 것

이때 사물의 본질이 그냥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눈에 뻔히 들어오는 특성이 아닌 그 배후에 숨어 있는 경이로운 특성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눈이 아닌 마음으로 봐야 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

혹시 생각이 막히는 일이 있어도 오래된 습관처럼 다시 눈으로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는 "차라리 눈을 감고 노래를 흥얼거려라"고 피카소는 조언한다.

흔히 우리는 생각이란 말을 대하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 그날 하루를 돌아보는 행위를 떠올린다. 그러나 블레이크에게 생각은 아침에 해야 하는 일이다.

영어권에는 "먼저 개구리를 먹어 치워라"라는 표현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질색하는 일을 먼저 해치우라는 의미다.

질질 끌거나 미루기 쉬운 일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치우면, 뿌듯한 성취감에 그날 하루 다른 일을 할 때도 생산성이 덩달아 높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는 "걸음에서 잉태된 생각만이 가치가 있다"라는 주장을 폈는데, 진정한 사유란 몸에서 비롯하며, 따라서 걷기야말로 가치 있는 생각을 길어 낼 수 있는 올바른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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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역사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하나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과거의 사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죠.

다시 말해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학은 지금이나 미래가 아닌 과거의 시간과 공간에서 벌어진 일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무슨 일을 했으며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어떤 사건이 벌어졌으며 어떻게 해결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죠.

더 간단히 말하면 과거 행위의 총체를 파악하려는 학문이 바로 역사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게 철학은 ‘질문하는 학문’입니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고 삶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죠

역사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과거의 사건을 배움으로써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숙고하고 판단하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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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이처럼 모든 인간은 착한 본성인 사단四端을 갖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사덕四德을 쌓아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착한 마음을 가졌어도 이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덕은 외적 조건의 방해가 없으면 자연히 내적으로 발현되어 나타납니다. 마치 작은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대체 인간은 왜 동물적인 본능 대신 사단을 가꾸고 확장해야 하는 걸까요?

이제 주어진 질문에 답해볼 차례입니다. 만약 맹자의 생각처럼 인간이 선하다면 스스로의 본성을 잘 지키고 가꿨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늘 선한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순자의 입장처럼 인간이 악하게 태어났다면 우리는 단지 선한 행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심지어 법과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무질서하게 행동할 수도 있겠죠.

과연 인간의 본성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만약 맹자의 입장에 가깝다면 우리가 선해 보이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순자의 입장에 가깝다면 단지 법과 규범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그가 도망 대신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먼저 그는 자신이 살아 있는 대신 아테네에서 추방당하거나 입막음당해 철학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삶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지혜를 사랑하는 활동, 즉 철학함을 멈추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죠. 더불어 죽음에 대한 그의 독특한 입장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의 무지를 자각하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을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지식을 추구하는 자세나 태도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까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죽을 때 자서전을 남긴다면 제목은 무엇으로 하고 싶나요?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이, 인생에도 끝이 있다. 모든 이야기가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음의 방식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결말에 따라 그동안의 일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우리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가 아닌 ‘죽음의 공포를 통해 어떤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인간의 몸을 이루는 60~70조 개의 세포들은 주기적으로 교체 과정을 거칩니다.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2~3주마다 재생되고 백혈구와 적혈구도 각각 일주일과 4개월 정도 유지된다고 하죠. 몸속 지방세포는 평균 10년 정도 유지되며 심지어는 뼈조차도 10년 주기로 재생될 수 있다고 합니다. 굳이 생물학적 측면을 살펴보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하지 못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나는 분명 나지만 끝없이 새로운 나인 것이죠. 이처럼 육체적 ・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지난 한 주간 가장 흥미로웠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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