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이처럼 모든 인간은 착한 본성인 사단四端을 갖고 있는데 이를 토대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사덕四德을 쌓아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착한 마음을 가졌어도 이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덕은 외적 조건의 방해가 없으면 자연히 내적으로 발현되어 나타납니다. 마치 작은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대체 인간은 왜 동물적인 본능 대신 사단을 가꾸고 확장해야 하는 걸까요?
이제 주어진 질문에 답해볼 차례입니다. 만약 맹자의 생각처럼 인간이 선하다면 스스로의 본성을 잘 지키고 가꿨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늘 선한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순자의 입장처럼 인간이 악하게 태어났다면 우리는 단지 선한 행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심지어 법과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무질서하게 행동할 수도 있겠죠.
과연 인간의 본성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만약 맹자의 입장에 가깝다면 우리가 선해 보이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순자의 입장에 가깝다면 단지 법과 규범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그가 도망 대신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먼저 그는 자신이 살아 있는 대신 아테네에서 추방당하거나 입막음당해 철학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삶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지혜를 사랑하는 활동, 즉 철학함을 멈추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죠. 더불어 죽음에 대한 그의 독특한 입장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의 무지를 자각하고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을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지식을 추구하는 자세나 태도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까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죽을 때 자서전을 남긴다면 제목은 무엇으로 하고 싶나요?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이, 인생에도 끝이 있다. 모든 이야기가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음의 방식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결말에 따라 그동안의 일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우리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가 아닌 ‘죽음의 공포를 통해 어떤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인간의 몸을 이루는 60~70조 개의 세포들은 주기적으로 교체 과정을 거칩니다.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2~3주마다 재생되고 백혈구와 적혈구도 각각 일주일과 4개월 정도 유지된다고 하죠. 몸속 지방세포는 평균 10년 정도 유지되며 심지어는 뼈조차도 10년 주기로 재생될 수 있다고 합니다. 굳이 생물학적 측면을 살펴보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하지 못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나는 분명 나지만 끝없이 새로운 나인 것이죠. 이처럼 육체적 ・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지난 한 주간 가장 흥미로웠던 경험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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