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지 않은 이유를 분석한 다음에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였는가?’를 생각해본다.

말 그대로 내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문제였다면 빠르게 잊어버리는 편이 좋다.

의외로 어쩔 수 없었던 일에도 자책감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피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며 너무 쉽게 합리화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피드백이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능동적 질문이다

원래 100%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는 어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빠르게 방향과 전략을 수정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개인적인 목표에서뿐 아니라 앞으로 사회는 더 빠르게 변화할 것이므로,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전략을 수정할 줄 아는 사람이 앞서갈 것이다.

그러니 문제가 발생하면 깔끔하게 반성하고, 자학하는 대신 행동을 바꾸는 패턴을 몸에 익혀보자.

무슨 준비가 어떻게 더 필요한가? 그냥 있는 대로 되는 대로 시작하고 점점 발전시키면 뭐든 어떻게든 된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어찌어찌 시작하더라도, 영상 3~4개 정도 올린 후에 지쳐서 그만두게 된다.

영상 하나에 온 영혼을 갈아 넣었으니, 다음 영상을 찍을 땐 또 얼마나 기합이 들어가겠는가? 그렇게 처음부터 힘을 주면 금방 녹초가 된다

모두가 ‘완벽하게 잘 못하는 것’에 대해서 좀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사회 분위기 역시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비행기를 운전하거나, 생명을 치료하거나, 범죄를 심판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실수가 용납되는 일이다.

특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루틴 관리, 사이드 프로젝트, 시간 관리 등은 너무나도 실수가 용납되는 일이다.

남이 보기에 하찮은 수준의 일을 묵묵히 꾸준히 해온 사람들은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과를 이룬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잘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건 이해하지만, 앞으로는 ‘이왕 시작한 거, 꾸준히 하고 싶다’는 욕심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자.

오래 할 일은 당장의 퀄리티보다,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과제를 제시하자면, "그렇게 하느니~"로 시작하는 말을 앞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기로 약속하자.

남이 보기에 하찮은 수준의 일을 묵묵히 꾸준히 해온 사람들은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과를 이룬다

시험은 명확한 끝이 있지만 우리 인생은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험 치는 생활에서 벗어나고도 마치 그때처럼 의지를 불태워야 알찬 삶이라 착각한다.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약한 의지를 탓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천력이 부족한 것이다.

실천은 강한 의지로 해내는 것이 아니다.

그냥 어제 했던 일,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플래너를 열어 ‘투 두 리스트’를 보고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강한 의지를 발동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습관에 의한 실천은 그렇지 않다. 의지와는 반대로 의식을 덜 하면 덜 할수록 좋다

"목표가 에베레스트 등정 아니죠? 올림픽 금메달 준비하는 거 아니잖아요. 실천은 의지가 아니라 습관으로 하는 거예요."

나는 의식적으로 의지력이라는 말 대신 실천력이라는 말을 쓴다.

심리적인 면에서도 의지라는 말을 자주 쓰는 건 좋지 않다.

사소한 일에도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부정적으로 변한다. 왠지 그 일은 힘들고, 하기 싫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은 그냥 별거 아닌 마음으로 하자.

모든 일에 힘을 잔뜩 주는 건 쓸데없이 자신을 너무 고되게 만든다.

행동하기 전에, 그리고 행동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자.

나는 실천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실천하기 전에 드는 생각들은 대부분 나쁜 쪽으로 흘러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기 싫다, 아니, 해야지, 근데 진짜 하기 싫다, 그래도 해야지…’ 하고 머릿속으로 싸우다 보면 하기도 전에 지친다.

감정이 실천을 방해할 때도 많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실천하기 전에 주절주절 생각만 길어진다.

이 생각들은 합리적인 척하는 감정의 스파이다.

다 그만두고 싶을 때 필요한 3가지 질문

포기할까? 말까? 답을 정해드립니다

포기도 일종의 결정이다.

잘 실행하는 사람이 포기도 깔끔하게 잘 한다.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포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린다. 포기는 곧 실패, 포기하는 사람은 패배자로 느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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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나간 과거의 손해를 잊지 못하고
아까워하면서 자꾸 뒤돌아본다면,
그렇게 과거의 망령에 집착한다면,
우리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찰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실천이 아니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생각은 허상이고 망상이다.

실천이 뒤따르는 생각만이 가치 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면, 주저하지 말고 행동하라.

행동은 결과를 가져온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한 걸음 성장한다.

그러므로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당장 실천하라.

생각을 머릿속에만 저장하지 말고
세상으로 꺼내 빛을 발하게 하라.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좀 더 자주 푸른 하늘 아래에 서보자.

좀 더 자주 나무 밑에서 쉬며
좀 더 자주 혼자가 되어보자.

좀 더 많은 시간을
아름다움과 위대함의 비밀을 푸는 데 써보자.

삶의 결을 이전과 다르게 채우다 보면
비참하고 초라한 마음에서 벗어나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뤄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대중은 그에게 동경의 눈빛과 존경심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을 시샘하고 질투하며 모략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동경하고 존경하는 이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았지만,
반대편 사람들을 만나면 부정적 기운에 휩싸여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생각했다.
너무 큰 성공과 명성의 맛은 맵고 짜고 쓰다고.

아직 성공을 거두지 못한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성공의 벽돌을 쌓고 있다.

그에게는 빨리 성공하라고 채근하는 이도,
꼭 성공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이도 없다.

그를 시샘하는 이도 없으며 그를 질투해서 따돌리는 이도 없다.

오히려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는 생각했다.
미완성의 성공이 가져다주는 평판과 명성이 가장 감미롭고 따뜻하다고

늘 같은 길을 걸으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나무와 꽃, 길 위의 돌멩이도 늘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옆에 난 다른 길로 가보면
나무도 꽃도 새로워 보인다.

늘 같은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으면 발전이 가로막힌다.

우리는 상호작용하는 대인관계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고
상대의 인격과 인품을 배워 자신도 고차원의 인간이 될 기회를 갖는다.

거꾸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고정된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
뒤집기, 분해하고 재구성하기 등의 새로운 생각법으로 접근한다면
좀 더 유연해진 사고체계와 창의적인 뇌 활동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고정관념과 매너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성장을 막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은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나
그의 영향력으로 삶이 변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 가능성은 순수함과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능력을 가질수록
더 커질 것이다

원하는 것을 쉽게 얻는 이는 격렬한 바람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부드러운 미소와 유연한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자신을 활짝 열어두는 사람이다.

이것은 꼭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완벽한 정답이다, 라고

견고한 성벽처럼 세상을 대하는 마음과 자세를 버리고
자유롭게 살면서 매사에 여유와 유머와 웃음으로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이다.

무엇인가를 소망하면서
금세 불안해해서는 안 된다.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확신을 가져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오만할 정도의 확신 말이다.

그런 다음,
그 확신이 열매를 맺어 추수의 날에 활짝 웃을 수 있도록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가지를 쳐주는 일들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런다면 소망은 이윽고 현실이 될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계속할 수 있는 일,
스스로 성장하면서 함께 키워갈 수 있는 자신다운 일을 말한다.

그런 일을 찾는 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야말로 정말 자신에게 맞는 것이며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제대로 된 직업이다

분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게 무슨 소용일까.

과연 그게 나에게 득이 되는 일일까.
화를 냈다고 해서 나의 마음이 편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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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말은 곧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이기도 한 말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게 비극의 시작이다.

타인의 말을 판단하는 냉철함의 100분의 1만 발휘해 내 말을 판단할 수 있다면 말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말과 말은 입장과 ‘다른 입장’이, 지식과 ‘다른 지식’이, 지혜와 ‘다른 지혜’가 만나는 일이다.

무의식이 무의식을, 역사가 역사를, 환경이 환경을 대하는 일이다. 그리고 경험과 경험이 만나는 행위이다

비슷한 말을 해도 다르게 들리는 것은 말한 사람의 경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통해 그 사람이 생각하고 고민한 것들, 그 나름의 깨달음과 통찰이 감동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내 말은 모두 그것들의 결과니까.

나는 어떤 경험을 했지?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났지?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통찰에서 나온 ‘나의 말’보다는 유명한 말, 검증된 말, 쓰인 말, 인정받는 말을 더 선호한다.

그렇게 자신의 말을 잃어버린 채 ‘주워들은 말’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의 말’을 잃은 채 살다 보면,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살게 된다.

나의 것이 훨씬 더 값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것을 추종한다.

이렇듯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기 말을 잃는 데서 시작된다. 자기 말이 없는 사람은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자기 언어로 말하는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다.

자신의 경험과 그것에서 얻은 지혜로 말하기 때문에 진실하다.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믿고 말하는 사람은 타인의 말을 존중할 줄 안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있어 실수를 하더라도 인정과 사과가 빠르다.

덕분에 남들과 갈등도 덜하다.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말을 하며 살아왔을까?

‘좋아하는 일’이 열등감으로 바뀌는 것은 참 쉬운 일이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제롬 프랭크는 "모든 정신장애는 기가 죽어서 생기는 병이다"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좋아하지 못하는 것도 기가 죽어서였다.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한, 또는 인정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을 그냥 두었다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세상에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만의 무엇’으로 빛나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끝내 ‘나만의 글쓰기’를 열등감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살리에리가 자신의 노력과 열정만 보느라 천재성에 가려진 모차르트의 노력과 열정은 보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타인의 성과나 성공에 대해 한쪽 눈을 감아버린다.

돈을 모으기 위한 감춰진 노력들, 다이어트와 성형수술에 수반되는 고통과 비용, 지독하게 공부하느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 1등을 지키기 위한 인내의 시간. 타인의 노력과 열정은 나에게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초라해질 자신을 위해 만들어놓은 ‘방패의 말’들은 롤랑 바르트가 말한 괴로움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나를 보호하려고 만든 방패의 말들은 험담이나 뒷담화, 악성 댓글로 변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 할까?’
‘나는 왜 항상 이럴까?’

남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살리에리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습관처럼 다른 사람의 인생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부정하는 괴로움 속을 헤맬 것이다.

거기서 해방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작은 것 하나를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대개 한쪽 편을 들지 않고 가운데를 지켰다. 여기에도 내 나름의 선은 있었다.

그게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건 그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지독한 솔로몬병이었다.

"옳음과 친절 중 하나를 선택할 땐 친절함을 선택해라."

"스누피,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에 스누피는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찰리 브라운의 볼에 ‘쪽’ 입을 맞췄다. 찰리는 말했다.
 
"오, 그거 멋진 조언인걸."

위기 대처 능력은 순발력의 다른 말이다.

나의 상처나 굴욕이 다른 사람에 의해 자극받을 때, 그때가 나에겐 위기 상황이다.

먼저 "뭐 그런 말에 상처를 받느냐"는 충고나 위로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상처는 보편화될 수 없는 고유한 내 감정이니까.

내가 어떤 말에 상처받고 있다고 이해를 구할 필요도 없다.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기에도 버거우니까.

다만 알려야 한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단호하게, 우아하게, 유머러스하게 한 방 먹이라고. 하지만 그런 잽도 순발력이 있어야 ‘그 순간에’ 나간다.

나 같은 느림보들은 괜히 부작용만 만들기 십상이다. 감당 못 하고 버벅대다가 끝날 확률 100퍼센트. 그럼 어떻게 알릴까?
화를 내기에는 애매한데 상처받는 말을 들었다면 ‘순간 침묵’으로 그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게 상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과 애리조나대학의 공동 연구진은 143명이 이틀 동안 쓴 말을 녹음해 분석한 결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 적게 받는 사람보다 ‘굉장히’나 ‘정말’, ‘엄청나게’ 같은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 단어들은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부사어인데, 기분이나 감정이 한층 고양된 상태임을 보여준다고 한다.

또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은 ‘그들’ 같은 3인칭 대명사를 1인칭 대명사(나)보다 덜 사용하는데 이는 외부 세계에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대상은 나 자신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열심히 하되 지배되지 말고 자유롭게 놓여나 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안에 있는 좋은 말들이 밖으로 나올 숨구멍도 생긴다.

잊지 말자. 쉬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말이 계속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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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의 ‘쓸데없는 말’을 잘 들어주고 있을까?
애당초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그런 말을 들어줄 여유가 나에게 있기는 한 것일까?

어떤 기준을 넘지 못하는 말은 모두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되거나 ‘말도 안 되는 말’로 버려지기 십상이다.

혹시 말로 상처를 받는 이유가 이런 말들을 못 하고 살아서 그런 건 아닐까?

두 작가의 말처럼 때로는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이, 또 그런 말을 들어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삶에 큰 위로가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이 책에는 대화를 나누는 여러 가지 방법, 특히 말로 나를 돌보면서 관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내가 경험한 에피소드를 함께 담았다.

말은 좋은 것이다.

가끔은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말의 상처에만 무게를 두고 산다면 진짜 좋은 것을 놓치게 된다.

《빨간 머리 앤》의 주인공 앤 셜리는 태어나 한 번도 ‘상상’이란 걸 해본 적 없다는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얼마나 많은 걸 놓치고 사신 거예요!"

부디 여러분은 말로부터 아무것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시인 샘 레븐슨이 쓴 <시간이 일러주는 아름다움의 비결Time Tested Beauty Tips>이라는 시가 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다면, 절대 혼자 걷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라.

삶을 살면서 ‘보다 나은 태도(자세)’를 갖고 싶다면 사람들과 ‘함께 가고’ 있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인 듯하다.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줄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알면서도 받게 되는 것이 ‘상처’이다. 그런데 정작 대놓고 상처를 주는 말에는 상처를 받지 않기도 한다.

그럼 무엇이 상처가 되고, 무엇이 상처가 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또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온전히 자신만을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어갈수록 그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주인공이 되는 순간보다는 역할의 가짓수만 늘어나는 단역의 삶이 시작된다.

그래서 오로지 나를 향한 관심과 위로의 말에 조금쯤 목말라 있다.

자신에 대해 말해주는 점집을 찾아가고 강연이나 상담의 말로 치유받고 싶은 마음, 하다못해 온라인용 심리 테스트를 하는 것도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타인의 입을 통해 ‘나를 듣는’ 경험을 원하는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말, 다짐의 말, 좋은 명언을 받으려고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좋은 말’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가 흥미로운 한편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이랄지 애처로움도 함께 느꼈다.

그것은 ‘좋은 말’을 곁에 두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었다.

위로와 치유의 말들이 하루하루 힘들고 고된 삶에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 못한 말과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 때문에 당신의 마음에 오래된 상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어느 말더듬이처럼,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해주면 어떨까.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아서 마음을 다치지 않았다고.
그때 그 말을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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