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길다. 길어야 길이다. 긴 길을 사람들은 낳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낳은 길을 사람들은 걷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상은 한 걸음씩 진보해왔다.
길을 낳는 동안 잉태와 출산의 고통을 겪었기에 그 길이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바란다.
사람에 의해 태어난 길은, 혼자만의 길이 아닌 더불어 가는 길이어야 한다
이렇게 좋은 곳에 살게 된 건 정말 행운이다.
‘오르는’ 산을 그만두고, 그냥 산의 품에 안겨 그렇게 잘 살았다.
작은 밭일도, 일기도, 사람 만나는 일도. 오직 산으로만 갔다.
산에 가서 울었고, 산의 위로로 숨 쉬었다. 아픈 나를 산은 말없이 받아주었다.
산이 말로써 나를 위로했다면 나는 산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산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었고, 내가 원없이 걸을 수 있도록 품을 내주었다.
나는 수없이 산을 오르내리며 위로를 얻었고, 큰 호흡을 하면서 조금씩 일상을 회복했다.
나 혼자만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 것만 같던 절망은 이제 없다.
내게 닥쳤던 고난만이 유난했던 건 아니리라, 남들도 비슷하게 아픔을 겪고, 그 상처에 돋은 새살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렇게 믿어진다. 산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물론 무슨 학문적인 바탕을 가지고 쓴 건 아니다. 나는 그런 공부를 한 적이 없다
순전히 내 시각으로 관찰하고, 내 입장에서 이해하고, 내 생각으로 결론을 지을 뿐이다.
독자들께서 그 점을 헤아려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한낱 일기 수준의 글들이지만, 그래도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자그나마 위안과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자연은, 산은, 나의 신이자 나의 부모, 나의 연인이고, 영원한 ‘내편’이다.
나에게 산이 그러하듯, 누구에게나 그런 대상이 있을 것이다.
꼭 산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고 가까이하는 대상에게 정성을 다하고, 몸과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다보면, 누구나 덜 아픈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산에서 위로를 받고 산에서 행복하듯, 당신도 그런 대상과 함께 하며 아픔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한다.
나아갈 길이 없는 능선에서 나뭇가지를 헤치느라 장갑 낀 손에 수도 없이 가시가 박혔다.
긴 세월 동안 낙엽이 쌓이고 쌓여서 발이 푹푹 빠지는 길에서 넘어지기도 많이 넘어졌다.
시퍼렇게 언 볼을 나뭇가지에 사정없이 강타당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걸었다.
몇 방울 흐르던 눈물은 나도 모르게 굵다란 눈물줄기로 변했다. 그럴 땐 아예 배낭을 풀고 앉아서 엉엉 울어버렸다.
그 산행으로 나는 나의 정신과 육신이 도달할 수 있는 거의 극한을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 자신과 끝없이 ‘맞짱’ 떠봤고, 지옥과 천국을 경험했다.
원 없이 감동했고, 원 없이 울었다. 원 없이 걸었고, 원 없이 땀 흘렸다. 원 없이 외로웠고, 그리고 원 없이 행복했다.
그 산행으로 나는 다시 태어났고, 그 산행이 내 삶의 어떤 ‘기준’이 되었다. 그 경험으로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 높은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한 번도 물을 건너지 않고 지리산까지 이어져 있는 백두대간이라니
여럿이서 함께 가면 길을 잃고도 웃는다. 노련한 선배가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었던지.
하루에 걸을 만큼 걷고, 땀 흘릴 만큼 흘리고, 가끔 길을 잃고 물이 없어 갈증에 허덕이기도 할지라도, 하루의 산행이 마무리되면 각자 알아서 자기가 맡은 일을 척척 해냈다.
누구는 물 뜨러 가고, 누구는 텐트 치고, 누구는 밥 하고, 누구는 나무 하고, 그렇게 우리는 평생을 함께 해온 사람들처럼 손발이 맞았다.
필시 산악인이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산악인은 기본적으로 그런 일들을 알아서 잘 하도록 배워왔으니까.
그 이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나는 산을 떠났다.
아니, 산 안에 살게 되었다.
그간의 ‘등산’을 뒤로 하고 ‘입산’으로 산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오르는 산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산을 만난 것이다. 오르지 않아도 산은 내게 많은 것을 내주었다
‘나’는 한없이 미숙하고 일머리도 모르지만, ‘우리’의 힘을 믿고 일단 시도하는 거다.
일단 누군가가 시도를 해야 그 일이 이어질 수 있고, 꼭 나나 우리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 중 누군가가 이어갈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가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좀 더딜지라도 차분하고 꾸준히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어떤 산을 제일 좋아하느냐고. 나느 지금 가는 산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전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산이 있었고 주로 그 산에만 갔었다. 그때는 오르는 산, 목적이 있는 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함께하는 산이라 어디를 가도 좋다. 오직 만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