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이라는 게 쉽게 불타올랐다가 곧잘 식어버리는 속성이라면, 내게 책방 주인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은은하게 지속되는 모닥불 같은 꿈이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 앞에서 불멍을 때리듯, 내 취향의 책이 벽면을 가득 채운 공간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입시 걱정이나 취업 걱정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친구 집에 기생하면서 취향을 고수하느니 일을 하나 더 늘리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까. 자립할 수 없다면 취향도 지킬 수 없다.

책방은 늘 가난하다. 조금 덜 가난해지기 위해 N개의 일을 시도할 뿐, 두 번의 출퇴근을 반복하면서도 풍요로웠던 적은 하루도 없었다.

어느 책방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남 일 같지 않다. 나는 언제까지 취향을,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책방을 운영하는 나도 자주 낭패감을 맛본다.

하루 종일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다 보면 이러다 책방 문을 닫게 될까 봐, 어렵게 잡은 꿈을 놓쳐 버릴까 봐, 인생 실패자가 될까 봐 두렵다.

꿈을 담보로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닌 내가, 이미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내가 실패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로드리게즈는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당연히 실패할 수 있다고.

그러니 하루아침에 아티스트에서 육체노동자 신세가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다음 삶을 다시 살아가야 한다고.

뮤지션으로서의 삶은 끝났을지 몰라도 뮤지션이 아닌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한국의 또 다른 슈가맨 양준일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치킨 집 열었다가 문 닫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음반 내고 망할 수 있는 권리 있지 않나요?"

실패가 그저 실패로 끝난 두 명의 슈가맨은 내게 알려주었다. 내게도 망할 수 있는 권리,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실패 이후의 인생에도 기적과 경이가 가득하다고 말이다.

좋아하는 책을 이렇게나 많이 가질 수 있는 게 실패라면, 나는 나의 실패를 조금은 덜 두려워해도 되지 않을까?

한 가지 분야에 빠지면 주구장창 그것만 하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시계 영상만 수십 번씩 돌려보고,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면 역사에서부터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점까지 분석해내고야 마는, 지겹도록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사람.

꿈이란 눈을 감고 나무가 빼곡한 숲속을 걷는 일이다.

누군가는 나무에 부딪히면서도 앞으로 걸어갈 거고, 누군가는 한 방에 고꾸라져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적은 확률이지만 나무에 한 번도 안 부딪히고 숲을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미화에게 꿈은 연필로 쓰는 것이다.

언제든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것. 나는 지울 수 있을 때에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에만 용기가 생기는 사람이니까.

반면 안다훈에게 꿈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는 것일 테다.

시간이 지나면 잉크는 빛바래 지워질 수 있지만 자국은 남아 사라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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