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장에서 훨씬 괜찮다고 생각했던, 더 건설적이고 이성적인 위로와 조언은 다 무용지물이 된 순간이었다. 결국 선택된 것은 저 한 마디였다
내 입장에서 훨씬 괜찮다고 생각했던, 더 건설적이고 이성적인 위로와 조언은 다 무용지물이 된 순간이었다.
결국 선택된 것은 저 한 마디였다. 그랬다. 상대의 귀에 들어가 마음까지 가는 길은 내가 아니라 상대가 내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조언을 잘해도(또는 못해도) 그것을 돌멩이나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것은 듣는 사람이다.
친구는 내게 자주 의견을 물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오래 고민한 듯했다. "나한테 해주는 조언은 고마워. 그런데 저번에 그 말은 좀 서운하더라. 네 마음은 알지만."
내 말들은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각자의 길에 가 있었다.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다른 곳으로 가서 도움이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했다.
내가 들었던 수많은 말들도 아마 그런 식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갔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진심을 다해 말했다 해도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기란 어렵다.
상대의 입맛을 맞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 친밀하게 밀착할수록 그 사이에 알 수 없는 균열만 생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는 과감히 저버리고, 나의 말을 하는 것이다.
내 말이 상대에게 가서 잘되고 못되는 것은 다 그 말의 운명이다.
정직하고 진실하며 다른 의도가 없다면, 내 말은 있는 그대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검열하면서 말할까?
매 순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 가장 먼저 마주하는 타인은 ‘부모’이다.
한 사람의 어린 시절은 부모의 말과 행동에 지배된다.
성인이 되어 새로운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부모가 심어준 검열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용인하는 말만 하다 보면, 솔직한 내 생각과 감정을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제대로 입을 떼지 못한다
"내 안에 울지 않은 눈물이 너무 많아. 그 감정들을 꺼내놓으면 엄청난 홍수가 일어날 거야. 내 안의 분노를 꺼내놓으면 엄청난 산불이 일어날 거야."
학교와 선생님은 나의 사소한 말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직장 상사 중에는 눈치 보고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후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종교는, 아니 신은 인간을 검열할 리가 없다.
내 생각과 감정을 숨기고 있다면, 그래서 마음이 울퉁불퉁해진 상태라면 자신을 검열하는 필터를 조금 느슨히 하는 것이 좋겠다
인간이 태어나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삶은 ‘생로병사’ 네 글자가 전부라고 한다.
그런데 저 생로병사의 사이사이를 메우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이다.
그것을 풀어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자, 성숙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 보니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노하우가 참으로 다양하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몇 가지쯤 부족한 면이 있는데, 그것에만 집중하거나 선을 긋다 보면 내 곁에 남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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