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지금읽고있는책’, ‘#출퇴근독서’라 해시태그를 달아서 읽고 있는 책을 매일 소개한다. 팔로워 수가 많지는 않지만, 내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싶어서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빠짐없이 글을 올리려 애쓴다. 내게는 의미 있는 일상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매출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소개할 수 있고, 내가 실제로 읽은 책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겨우 점심시간에 10분 정도 들여서 그날의 인상적인 구절 정도를 정리해 책 사진과 함께 올린다.

책에 대한 정확한 감상과 어떤 맥락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지를 상세히 알리기는 힘들다.

서점원에게 책을 읽는 시간은 꼭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한 일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법이니까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판단은 내려야 했고 시간이 필요하다 해서 면접을 수십 번 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름 최선을 다해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충분히 시간을 들이지 못하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은 늘 찜찜한 기분을 남긴다.

첫 직장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한 직장에서 10년을 채운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이지 아리송하다. 내게 잘 맞았다는 뜻이니 좋은 듯하면서도, 너무 단조로운 경력을 쌓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온라인 서점이라 독자를 직접 대면하지는 않지만 독자의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책의 작은 오르내림에도 사람들의 욕망과 관심사가 반영되어 있었고, 나는 세상의 복잡한 무늬를 들여다보는 현미경을 얻은 기분이었다.

좋기만 했을 리는 없다. 내가 좋아하던 작가의 예상치 못한 민낯을 보기도 했고, 독자로서 좋아하던 출판사를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기도 했다. 그런 글을 쓴 사람이, 그런 책을 출간한 곳이 어떻게…… 라며 탄식했던 적이 10년의 시간 동안 심심치 않게 있었다.

언제나 책이 열어주는 인식의 길에 찬탄을 표했지만, 그런 날엔 책이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내놓은 훌륭했던 책이 그들을 위한 훌륭한 방패가 되곤 했다.

늘 책에 에워싸여 있었지만 책에 대한 갈증이 오히려 커지기도 했다. 독자로서의 나는 나름의 생각과 취향을 가진 존재다. 하지만 직원으로서 손이 많이 가는 책은 다르다. 주문이 많은 책일수록 손이 더 많이 갈 수밖에 없다.

업무와 취향을 두루 아우르며 일하려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내가 정말 ‘좋은 책’이라고 여기는 책을 소개하는 일에 늘 목말랐다.

서점원으로서 보낸 지난 시간을 요약하자면, 좋았다거나 씁쓸했다거나 하는 말보다는 ‘목말랐다’는 말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내가 한 사람의 장인으로서, 나의 눈에 든 책을 판매하는 일에 오래 공들일 수 있길 원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 ‘나오면 팔리는 책’으로 변모하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었다

능숙함에 이르는 길은 ‘열심’보다는 ‘계속’이다.

열심히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여러 사례를 겪어봐야 하고 비슷한 사례를 여러 번 경험하기도 해야 한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성과가 이따금 나올 수는 있지만 시간을 들이지 않고 능숙해질 순 없다.

능숙해지면 비로소, 내가 일하는 시간 속에 내가 사랑하는 책에 열심을 쏟을 시간도 생기기 시작한다. 계속해야 열심도 가능해진다.

10년 넘게 ‘계속’했더니 정말 나는 많이 능숙해졌다.

내가 공들여 소개하는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냉랭하곤 했다. 하루에 한 부 팔리거나, 한 부도 팔리지 않던 책이 하루에 두세 부라도 나가길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이익이 거의 나지 않는 업계에서도 나름 경쟁은 또 치열한데 시장 규모는 커지지 않고 있다.

현재 주요 도서 구매층은 사십 대이고 업계에선 젊은 독자를 확보하는 일이 관건이다. 그 독자들과 통하는 감각을 지닌 직원들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 업계에서 언제까지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서점 직원, 특히 온라인 서점 직원은 인공지능이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자리다.

각 도서의 주문 수량이나 개별 독자의 취향에 맞춤한 책을 추천하는 일은 잘 설계된 알고리즘이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점 직원으로 늙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변수가 많다. 어쩌면 제2의 직업을 준비하는 게 옳은 선택인지도 모른다

나는 서점엔 계속 사람이 필요하다 믿는다. 자기 일을 오래 갈고닦은 사람이 필요하다 믿는다.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라는 말에 기대어 내 일을 계속, 계속 해가고 싶다.

계속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다. 계속하다 보면(언제나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가 있다. 당장의 ‘잘함’으로 환산되지 않더라도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고 믿고 싶다).

(2018, 어크로스— 제현주, 《일하는 마음》

약 2년 동안 〈채널예스〉의 ‘솔직히 말해서’ ‘아이가 잠든 새벽에’ 두 코너에 글을 썼다.

가만히 두면 흘러가버릴 것들을 글로 남기는 일은 멋진 경험이었다. 한 시절이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물론 글을 쓰는 시간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어서, 새벽에 카페로 나가 하품 쏟아내며 글을 썼다. 포기한 잠이 많다.

직장인으로서 내 일을 생각하고, 연인으로서 아내를 생각하고, 부모로서 아이를 생각하고, 시민으로서 세상을 생각하는 일은 결코 대단하지 않다.

매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아이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한 권의 책이 되기에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일상이 되어야 할 일이다. 잠을 포기하고 밥을 혼자 급하게 먹으며 추구할 일은 아닌 것만 같다.

그러나 현실의 일상은 이미 꽉 짜여 있어서 이 당연한 일을 하려면 시간을 짜내야 했다.

세상에 ‘당연한 일’은 있었지만 ‘당연한 일을 할 시간’은 없었다.

회사가 할당하는 업무와 아이와 생활이 요구하는 일을 수행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고 한 계절이 흘렀다.

세상은 우리에게 할 일은 많이 주고 시간은 조금 주었다.

당연한 일들이 당연해질 수 있도록 세상의 시간 구조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누고 싶다.

한 사람의 인생에 요구되는 다양한 역할들, 그 역할들이 부여하는 당연한 일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너무나 바쁘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다.

대단한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생각해볼 필요를 느끼는 것들에 대해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생각만으로 삶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 없이는 깊어질 수 없으므로. 가족에 대해서, 일에 대해서, 세상과 동료 시민에 대해서 나는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해볼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 이게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이기도 하다. 더디더라도 멈춤 없이 노력을 기울여가겠다.

물론 시간은 여전히 없을 거다. 잠을 줄이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도 오래가기는 힘든 방식이다. 마땅한 방법은 없다.

그저 일상에서 생기는 불규칙한 틈들을 하나하나 그러모아서 조금씩 조금씩 생각을 전진시켜 갈 뿐이다. 이 많은 생각거리를 이 부족한 시간들로 감당할 수는 없겠지만, 매일 조금씩은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채널예스〉 연재는 내게 좋은 기회였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시간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생각을 해야 했고, 글을 쓰는 동안에도 계속 생각이 일어났다.

순간을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 잠을 포기할 가치가 있었다. 이런 태도를 바탕으로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 옆에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세심하게 쌓아올린 생각을 바탕으로 단단하게 빚어낸 태도를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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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의 새가 한 나무에 앉아 있다. 똑같은 깃에 똑같이 생겼지만, 한 마리는 언젠가는 죽을 운명의 새이고 다른 한 마리는 불멸의 새이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한 끝에 아래쪽 새는 위쪽 새가 앉아 있는 맨 위쪽 가지에 이른다. 그 순간 모든 시야가 바뀌고, 자신이 본래 그 위쪽 새였음을 깨닫는다. 자신들이 서로 다른 두 마리의 새가 아니라 오직 한 마리의 새였음을.

이 가지 저 가지 움직이는 새는 나의 마음이고, 위쪽 가지에 고요히 앉아 있는 새는 나의 참 자아이다. 열매를 탐닉하는 새는 에고이며, 그것을 초연히 바라보는 새는 참나이다. 그 둘이 함께 앉아 있는 나무는 내 육체이다.

아래쪽 새가 위쪽 가지의 새를 알아보는 순간, 고통으로부터의 자유가 시작된다. 유한한 자아가 무한한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 자아는 서서히 가까워져 마침내 하나가 된다. 그리하여 어느 날 그 무한한 자아가 곧 자신이었음을 깨달아 완전한 평화에 이른다고 『우파니샤드』는 말한다.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보는 내가 있다. 그 나와 가까워져야 한다

"모든 낙타가 한 마리도 남김없이 앉아서 쉴 때까지 잠들지 말라는 당부 때문에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밤새도록 몇 마리는 앉아 있었고 몇 마리는 서 있었습니다. 서 있는 낙타들이 앉기를 계속 기다렸는데, 그 낙타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자 이번에는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낙타들이 일어났습니다. 똑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고, 결국 모든 낙타가 앉아 있는 경우는 한순간도 없었습니다."

낙타들이 서 있거나 또는 앉아 있는 것처럼, 삶의 문제들은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우리가 한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하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동안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 우리를 수렁에 빠뜨리곤 한다.

낙타 한 마리가 앉아 있을 때 다른 낙타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이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것, 이러한 순환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결코 우리 인생에서 모든 낙타가 앉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문제로부터의 영원한 해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문제들은 우리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며 그곳에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들을 신중하게 다뤄야 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잠들지 못해서는 안 된다.

낙타를 자신에게 묶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도 낙타에게 묶인 것이다. 문제들에 맞닥뜨리면서도 깊이 휴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낙타들이 앉아 있든 서 있든 방해받지 않고,
기나긴 사막을 건너기 위해 밤에는 휴식을 취하는 유목민들처럼.

여행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앞에 놓인 길이 아니라 신발 속 모래이다.

"나에게는 ‘샤바, 샤바.’든 ‘시바, 시바.’든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것은 인간들이 나에게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 소년이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그 단어 뒤에는 나를 큰 소리로 부르는 순수하고 진실한 감정만 있었다. 그에게는 다른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그를 바로잡아 준 그대의 진짜 의도는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소년의 무지를 지적하려는 데 있었다. 그 결과 그 가련한 소년은 내 이름을 잘못 발음해 내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하며 이제 더 이상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대가 소년의 순수한 헌신을 빼앗아 그것을 두려움으로 바꿔 놓았다! 이게 무슨 헌신인가?"

나는 편하고 사치스럽게 지냈으나 아무 미련 없이 떠난다. 내게는 한순간의 아쉬움도, 애착도 없다. 즐거웠던 시간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다른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왔다가 갈 뿐이다. 나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완전한 평정 속에 이 진리를 받아들인다.

"너는 우리처럼 많은 지식을 배우지 않았어.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에 참견하지 말고 구경이나 해."

"여행을 떠나라. 그대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행운을 가져다주는 이름을 발견하라. 돌아오면 내가 공식적으로 그 이름을 너의 새 이름으로 공표하겠다."

"이름이 ‘살아 있는 자’든 ‘죽은 자’든, 때가 되면 죽을 수밖에 없네. 이름은 단지 어떤 사람을 가리키기 위한 단어일 뿐이야. 바보가 아니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

"이름이 부자이든 빈자이든 돈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나? 이름은 단지 그 사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에 불과할 뿐 진짜 모습이 아니야. 오직 바보만 이 사실을 모를 뿐이지."

"내 이름이 여행안내자이든 여행자이든 관계없이 나는 지금 길을 잃었네. 이름은 단지 어떤 사람을 가리키기 위한 하나의 단어일 뿐이야. 그 사람의 실체가 아니잖은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것을 모를 리 없지."

"이름이 ‘살아 있는 자’여도 죽을 수밖에 없고, ‘부자’라는 이름을 가졌어도 돈이 한 푼도 없을 수 있고, ‘여행 안내자’라 해도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름이라는 것이 단지 어떤 사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이며 행위입니다. 그것이 그의 진정한 이름입니다. 저는 제 이름에 만족하기 때문에 이름을 바꿀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보라, 그대 왕국의 가치는 단지 한 잔의 물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대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대여, 자만하지 말라. 일생 동안 획득한 모든 부와 왕국이 물 한 잔을 사기에도 충분하지 않는 상황을 언제 어디서 맞닥뜨리게 될지 누구도 모른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삶에서 절대자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소. 내가 결국 의지할 대상은 신이라는 것도. 신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며 일생 동안 늘 나와 함께하는 유일한 동반자라는 사실도. 하지만 그동안 나는 좀처럼 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외롭거나 고통스러울 때만 그를 떠올렸소."

"살아오는 동안 나의 우선순위와 중심이 계속 변했고, 그것은 내 지갑 안의 사진에 그대로 반영되었소. 처음에는 나 자신이었고, 그다음에는 내 아내, 그다음에는 자식……. 모두 차례차례 내 곁을 떠났고 이제는 나 혼자 남았소.

결코 나를 떠나지 않는, 변함없는 유일한 동반자인 신의 존재를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소. 내가 지갑에 시바 신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이유가 그것이오."

"굳이 용맹한 사자를 그릴 필요는 없다고 당신이 계속 주문하지 않았어? 단지 암시만 해 달라는 당신의 요구에 따라서 문신을 새겼을 뿐이야."

그대는 자신을 오렌지 다섯 개에 팔 수도 있고, 감자 한 자루에 팔 수도 있다. 혹은 최고의 보석으로 자신의 가치를 매길 수도 있다.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그대의 정의가 자신의 가치를 결정한다.

첫째, 자신이 진귀한 보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은 무시할 것.

둘째, 자신을 오렌지 다섯 개에 팔지 말 것. 세상의 기준대로 자신의 가치를 매기지 말 것.

셋째, 보석의 가치를 알아보는 보석 전문가를 만날 것.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그 보석의 가치를 결정하게 하지 말 것.

운명을 염려하고 피하려 할 때 오히려 운명과 맞닥뜨리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는 것, 그 길만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공상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고팔은 어리석은 이웃이 또다시 공상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고팔은 그들이 더 이상 무의미한 공상 속 세계로 되돌아가지 않기를 바랐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은 필요 없는 상상일 뿐이다

‘약을 독으로 바꾼 것은 내 입안의 세균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약을 비난하고 의학서들을 불태우려고 했으니, 내 마음의 독으로 인한 어리석음이 얼마나 컸던가.’

인도 우화에서는 같은 강물을 마시는 세 존재에 대해 말한다. 한 존재는 신으로, 그는 아므릿(신들이 마시는 음료수)을 마신다. 다른 하나는 인간으로, 그는 단순히 물을 마신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악마로, 그는 오물을 마신다. 동일한 강물이지만 마시는 사람의 의식 상태에 따라 흡수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모든 나쁜 상황은 곧 지나가기 마련이고 다시 순조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너는 나보다 훨씬 크고 힘도 센데 왜 자신을 위해 집을 짓지 않니? 하루 종일 놀면서 건설적인 일은 아무것도 안 하잖아. 비록 나는 너보다 작고 약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그 결과로 햇빛과 바람과 비로부터 나 자신과 내 식구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어. 너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머리를 써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해.

목적 없이 밀림을 배회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너를 위해 작은 집이라도 지으면 지금처럼 비와 추위에 떨면서 비참하게 살지는 않을 거야."

특히 우기 때 자신의 안락한 삶과 원숭이의 비참한 삶을 비교하면서 멋쟁이새는 원숭이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멋쟁이새로서는 진심에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속털까지 비에 젖어 가뜩이나 우울했던 원숭이는 새의 조언을 듣고 몹시 기분이 상했다. 새가 열심히 사는 삶의 이득을 이야기하며 게으른 자신의 생활을 지적하자 원숭이는 짜증이 났다. 한낱 새가 영장류인 자신을 무시하고 가르치려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숭이는 순식간에 나뭇가지 끝으로 몸을 날려 멋쟁이새의 둥지를 홱 낚아챘다.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내팽개친 다음 발로 밟아 아름다운 둥지를 산산조각 내 버렸다.

새는 새로운 둥지를 다시 지을 때까지 폭풍우 속에서 새끼와 짝을 데리고 떠돌아야 했다.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 조언을 해 준 것을 후회했지만 때는 늦은 일이었다.

받아들일 자세가 된 이에게

조언을 하고

원숭이에게는 조언하지 말게.

멋쟁이새처럼 집을 잃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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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을 내려놓아요! 그렇지 않으면 계속 독침에 찔려 목숨이 위험해요. 전갈은 전갈의 운명에 맡기세요. 독충에게는 자비를 베푸는 것이 무의미해요. 전갈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전갈이 자신의 본성을 저버리지 않는데 내가 나의 본성을 포기할 이유가 무엇이오? 그래서 나는 미소 지은 것이오. 전갈과 나, 우리 둘 다 자신의 본성을 충실히 따랐소.

당신은 어떤 본성에 충실한가? 자기 안의 낮은 차원의 본성을 따르는가, 아니면 높은 차원의 본성을 따르는가? 어느 본성에 충실할 것인가는 자신의 선택에 달린 일이다.

세상일과 욕망에 묶여 있는 자는 다른 묶여 있는 사람을 풀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사실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속박을 깨뜨려 줄 수 없겠지.

자신의 힘으로 욕망과 환상을 떨쳐 내고 자유로워지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계속 묶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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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읽지 말고 뜻으로 읽으며, 뜻으로 읽지 말고 몸으로 읽어라.
- 불경 -

저는 몇 마디의 간단한 말이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에 항상 놀라워했습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사기나 기분을 북돋우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재무장하도록 돕기 위해 간단한 명언들을 그들과 자주 공유해왔습니다.

옳은 말은 필요한 용기와 격려를 주며, 심지어는 나쁜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해줄 수도 있습니다

감명을 주는 명언들은 둘러싸고 있는 말이나 문장으로 인해 모호해지거나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정보 조각이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간단한 명언에는 당신의 삶의 맥락 외에는 그 어떤 맥락도 없습니다.
명언은 당신의 상황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강력한 촉매 작용을 합니다.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라 행복이 성공의 열쇠입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면,
당신은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동의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이 열등하다고 느끼게 만들 수 없습니다.
절대로 동의하지 마십시오. - 엘리너 루스벨트

당신은 자신의 열정을 따라야만 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이 진정 누구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나는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용기가 바로 자기 자신의 꿈을 좇아가는 용기라고 믿습니다. - 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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