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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윤혜 옮김 / 선순환 / 2021년 10월
평점 :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브라질의 보우소나로, 칠레의 피노체트, 그리고 우리나라의 예에서도 일상화된 것이 신자유주의다.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는 전체적인 부의 규모는 키웠을지는 모르지만 배분의 문제는 실패했다. 자본의 기본 특성이 끊임없는 증식에 있는 만큼 이제 공장을 돌리고, 노동을 하여 번 돈을 저축하고 이자를 받는 수준을 벗어난 것은 한참의 일이다. 이제 돈 놓고 돈을 버는 일들이 더 생산적인 일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기본 마중물이 있는 자본은 지속적으로 성장을 한다. 자본은 더하기가 빼기가 아니고 곱하기라고 하지 않았나? 복리효과를 설명하는 것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이렇게 자본은 곱하기로 증식을 하고, 또, 세계 어느 곳을 돌아다니며 증식의 기회를 찾지만, 가진 것이 없거나 마이너스인 사람들의 자본의 곱은 한없이 곤두박치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뭔가 대안이 필요한 시기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들먹이며 노동자들의 혁명이라고 일어나라고 하기에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이제는 더이상 단순히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으로 나뉜 세상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데이비드 하비 지음/강윤혜 옮김)는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 자본이 굴러다니며 증식을 계속하지만 빈부의 차와 환경문제등만을 점점 더 키워왔을 뿐이라는 주장과 다양한 사례를 통한 신자유주의하에서의 개인, 기업, 금융, 환경, 의료,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마르크스적인 사고를 생각해보고 신자유주의적인 폐혜에 대한 대안적인 사회를 꿈꾸며 이제 그런 대안적인 사회주의를 생각헤봐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2020년 뜻밖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실업사태 등 엄청난 문제점을 드러냈다. 코로나19가 준 충격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와 자본에 대한 대안은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듯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가 무엇이고 어떤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이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의 문제점은 끊임없는 증식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며, 못 가진자는 이 수렁에서 벗어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자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왜, 대안적인 사회를 생각해보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지금이 그럴때 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자본시장, 그중에서도 주식시장에서 단연 으뜸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같은 인물의 천문학적인 금액의 자본 축적이다. 코로나19로 양적인 완화를 한 돈이 생산적인 활동에 투여된 부분은 적고 코로나19로 집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모두 주식에 투자를 하며 떠오르는 주식이 테슬라이고 이 회사는 지구상의 모든 자동차회사의 시총을 합한 금액보다 큰 시총을 자랑하고 있다. 우연이든 전략적인 투자던 이 회사의 주식에 투자를 한 사람들은 지금 큰 돈을 벌었다. 비트코인, 알트코인 등이 지난 몇 년동안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했고, 자산증식을 찾아 들어온 자본들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부풀려져 있다. 이런 비생산적인 자본의 증식이 커질만큼 그늘도 깊어지는 법, 해결해야 할 빈부의 차, 환경문제 등은 산적해 있는 가운데 미국은 아직도 돈을 풀고 있고, 이제 겨우 부유세를 걷어 각종 인프라에 투자를 하겠다고는 하고 있으나 이것의 혜택을 경제라는 이름하에 기업과 금융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한참 대통령 선거 후보들간의 논쟁이 벌어지는 것의 핵심은 자본, 이익의 배분, 그리고 거기서 벌어지는 각종 비리들이다. 일반 대중들은 아파트 한 채를 구하기도 어려울 만큼 올라가는 아파트 가격에 상심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수백억, 수십억을 대수롭게 생각하지않는듯한 일들이 벌어지며,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의 단면을 선명하게 보는듯 하여 우리에게도 이런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인 사회주의개념이던 대안적인 자본주의던 뭔가 다른 제도가 도입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