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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윤순식 옮김 / 미래지식 / 2022년 9월
평점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쓰여진 시기 1883~1885년이라고 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이 출판된 시기에 조선 최초의 사절단이 미국 뉴욕에 파견되었으며 갑신정변(1884)이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니체가 그러하듯 조선에서도 비록 3일천하였지만 봉건적 낡은 틀을 깨뜨리고 근대사회로의 움직임이 있었던 시기었다. 이 책“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지음/윤순식 옮김”을 읽어보기로 결심하고 이 책이 쓰여진 시기에 우리 한반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니체가 기존의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깨부수던 이시기에 조선에서는 개화의 새로운 생각이 꿈틀거리며 그 에너지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학생때 누구나 한번쯤 읽어봤을 책이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때문에 포기한 책이기도 한 것 같다. 지금 다시 그 여려움을 이겨내고 니체의 생각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다시 읽어보기로 하였다. 고등학교시절 문고판으로 읽었던 그런 문체는 아니고 번역이 좀 더 부드러운 것 같아서 부담이 덜하다. 우선, 이 책의 주인공“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의 이름이다. 패르시아의 현자의 이름이 차라투스트라다. 니체는 역설적이게도 당시 유럽의 종교적인 사고인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사고의 원조라고 말할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하여 그 사고를 깨부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기존 기독교적인 사고를 과감하게 혁파하고 새로운 철학의 길을 안내한 책이다. 당시 유럽사람들에게는 조선의 갑신정변만큼이나 충격적이고 구테타나 다름없는 사고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니체는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안다는 듯, 부제를“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면서도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고 적었다. 많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지만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 있다는 뜻이니 이해가 간다.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그 핵심개념은 '신의 죽음', '힘의 의지', '영원회귀', '초인(위버멘쉬)' 등의 개념을 잘 반죽하여 그 당시 모든 가치의 파괴, 전도를 꾀하였다는 점이다. 그 당시 유럽사람들이 믿는 모든 것이 다틀렸다고 외친 것이다. 이 책은 사유하는 철학서이지만 문학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고, 종교와 관련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갈릴리호수를 떠나 사막으로 간 예수의 행동을 패러디한 내용으로 책의 서문을 시작하는 것을 볼때 또 다른 니체만의 우쭐한 종교서적같기도 하고 그렇다. 니체 스스로가 그의 서간집에서 "이 책은 다섯 번째의 복음서이며 미래의 성서가 될 것이다."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하니 종교같은 의미가 없을 수 없다. 과연 철학적인 종교적인 구테타임에 틀림없으며 니체는 그가 말하는 것을 스스로 굳게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 소설같기도 한 이 책은 서문 그리고 1부애서 4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각 부별로 22개(1부),22개(2부),16개(3부), 20개(4부)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다만, 4부는 1,2,3부를 전제로 하여 나오는 내용이라고 하니 맨 나중에 읽는 것이 좋으나 1,2,3부는 어느 것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고 한다. 아무튼…서문을 읽어 가다가 눈에 들어오는 한 대목이 있다. 이렇게 뜬금없어 계속 튀어 나오는 비유가“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분명하다. 차라투스트라의 핵심 메세지는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초인"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 “나는 인간들에게 그들의 존재 의미를 가르치련다. 그것은 초인이며, 인간이라는 검은 구름을 뚫고 나오는 번개이다.<차라투스트라의 서문 7, p29~30>" 인간이 인간존재의 의미가 있으려면 초인이어야 한다는 것, 인간이 실존적인 존재가 되려면 반드시 초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 인간은 짐승과 초인사이에 걸쳐 놓은 하나의 밧줄이라고 말을 한다. 인간은 바로 이 짐승과 초인사이에 있으며 이런 초인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짐승에 가깝다고 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걸쳐 놓은 하나의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인 것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도중에 있 는 것도 위험하며, 뒤를 돌아보는 것도 위험하다. 또한, 벌벌 떨면서 멈춰 있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인간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운 점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 라는 데 있다.” <차라투스트라의 서문 4, p20>"
그러면 초인은 무엇인가?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p38>"나온 것처럼 낙타처럼 성실한 사람이 기존의 관습,규범,관계등에서 깨고 나와 사자와 같은 용기를 갖고, 결국 모든 것을 긍정하고 창조하는 아이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가 초인이다. 초인은 그 당시 종교적인 선악 기준의 도덕 관념을 넘어서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기가 새로이 창조한 가치를 끝까지 실현하고자하는 사람으로 정의할수 있다한다. 그야말로 그당시 유럽에 자리잡은 기독교적인 관념(예수 그리스도가 아닌)을 초월하여 형이상학적으로 잡히지 않는 높은 저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변화무쌍한 대지(땅)에 발을 굳건히 딛고 사는 초인이다.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초인이란 대지의 의미이다. 그대들의 의지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하라. 초인이야말로 대지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고!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간절히 원한다.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저 하늘나라의 희망을 말하는 자들의 말을 믿지 말라! 그들이야 말로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독을 섞는 자들이다.<차라투스트라의 서문 3, p17>:
그리하여 그는 기존의 가치관을 형성한 모든 신은 죽었다고 선언을 하고 이제 그 신들은 이 대지위의 초인이 대신하여야 한다고 외친다. 당시의 종교적인 관념으로 보나 모든 면에서 아주 파격적인 생각임에 틀림없다. 형이상학적인 이원론적 사고는 집어치우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존중하고 사랑하라고 한다. 죽어서야만 갈수있는 저세계는 의미가 없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상의 세계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을 한다.“위대한 정오"는 바로 초인으로 가는 시점으로 그림자나 허상이 없이 태양이 바로 우리 머리위에서 비추는 정오다.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이 것이 언젠가 찾아올 위대한 정오에 우리의 마지막 의지가 되게 하라!<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3, p127> " 이렇게 “초인”은 대지의 뜻이고, 인간 존재의 의미다.
초인(위버멘쉬)과 신의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니체 철학의 핵심인“힘의 의지"에 이르러 그 개념이 더 강화되고 확대된다는 점을 빼놓을수가 없다. "힘의 의지"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듯 하다. 자연과학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힘"이라는 단어와“의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힘의 의지"를 만들었고, 의지와 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자체가 힘을 가지고 있고 부단히 힘을 추구한다. 바로 초인은 이 힘의 의지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현재 상태를 넘어서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끊임없이 극복해야 하는 존재다. <2부, 자기극복에 대하여, p181>를 읽다보면 “힘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어서 <삶은 스스로 나에게 다음과 같은 비밀을 털어놓았다. "보라! 언제 나 자신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다.”, p185> 그래서, 초인은 내부의 힘의 의지에 따라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 — “그리고 그대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은 우선 그대들에 의하여 창 조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대들의 이성, 그대들의 심상 그대 들의 의지, 그대들의 사랑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대 인식하는 자들이 여, 진실로 그대들의 더없는 행복을 위해 그렇게 되어야 하리라!”<2부, 지극한 행복의 섬에서, p135>" 새로운 것을 창조함으로써“더없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고,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기극복적인 삶(초인의 삶)을 위하여 자기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존재의 의미, 대지의 뜻, 자기극복 등의 초인은 힘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는 또한 관계의 세계라고 한다. 왜냐면, 나만 힘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때문이다. 세계는 다른 사람, 동물, 식물 모든 삼라만상이 각자 힘의 의지를 가지고 있고 이 서로다른 힘의 의지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힘의 의지는 관계하는 인간 그러나 서로 상승하고 강화하고 고무시켜주는 의미 그러나 인과적이거나 선후관계의 그런 의미는 아니고 동시적 쌍방향적인 의미라고 한다. —“그대들이 적을 가지려거든, 증오할 적을 가지되 경멸할 적을 갖지 말라. 그대들은 자신의 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에 만 적의 성공이 곧 그대들의 성공이 되는 것이다.”<1부, 전쟁과 전사들에 대하여, p74>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가 이러 저러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존재에 대하여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세계전체에 대한 인정과 긍정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초인의 자세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하여 그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영원하길 바라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 "그리고 모든 무거운 것이 가벼워지고. 모든 육체가 춤추는 자가 되고, 모든 정신이 새가 되는 것, 그것이 나의 알파이며 오메가라면, 그리고 진실로 이것이 나의 알파이며 오메가라면! 아, 어찌 내가 영원을 갈망하지 않겠는가.<3부, 일곱개의 봉인(긍정과 아멘의 노래), p372>"
마지막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말을 한다고 우리 안에 힘의 의지에 따른 동물적 의지, 인간의 의지, 온갖 갈등이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갈등이 상존한다. 그리하여 어찌하면 지속적으로 초인이 되기위하여 노력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영원회귀"다 지금 나의 상태가 더할 나위없이 좋다면 이 인생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지금 사는 인생이 만족스럽지 못한데 그 인생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짐승처럼 살면 안되는 이유가 영원회귀의 사유에 있다. —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그대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지금까지 모든 존재들은 스스로를 초월하여 그 무엇인가를 창조 해 왔다. 그럼에도 그대들은 이 위대한 밀물의 한가운데서 썰물이 되 기를 원하며, 또 인간을 극복하기보다 오히려 짐승으로 되돌아가기 를 원하는가?<서문,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