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괴담
온다 리쿠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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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네 명의 중년 남자들이 한 찻집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괴담을 나누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처음 설정만 보면 조금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괴담집이라서 밤에 읽어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잔잔하게 흘러간다.
무섭기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 같고,
괴담보다는 수다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들은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
혹은 직접 겪었다는 기묘한 경험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누군가 혼자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하고,
둘이서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하며
어느새 넷이 모두 모여 대화를 완성한다.

그들이 마시는 것도 꼭 커피만은 아니다.
어떤 날은 맥주를 마시고,
어떤 날은 그냥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의 분위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런 사소한 설정들이
이야기를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괴담이라고 해서 모두 소름 돋는 이야기만 나오지는 않는다.
읽다 보면 웃음이 나는 이야기들도 있고,
“이건 좀 그렇다” 싶을 만큼 허탈한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진짜 같았다.
실제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완벽하게 무서운 이야기만 하지는 않으니까.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괴담이 중심이면서도
결국은 사람 이야기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각자의 삶에 쌓인 기억과 경험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여섯 번째 모임쯤 되면
이들이 느끼는 감정도 조금 달라진다.
이제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 자리에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해진 것처럼 보인다.

괴담을 나누며 확인하는 것은
세상에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혼자 간직하면 무서운 기억도
누군가와 나누면 조금은 가벼워진다는 사실이다.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건
괴담의 내용이 아니라
찻집의 분위기와 커피 향,
그리고 중년 남자들의 느긋한 대화였다.
조용한 공간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마치 옆 테이블의 대화를 몰래 듣는 기분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무서움을 기대하고 읽으면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 이야기,
대화가 중심이 되는 소설을 좋아한다면
의외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괴담을 핑계로 모여
각자의 삶을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사람들.
그래서 이 책은
무섭다기보다는
조금 쓸쓸하고, 조금 따뜻한 이야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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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김치 레시피 - 한국의 맛, 김치의 모든 것
배명자 지음 / 상상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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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김치 레시피』를 처음 펼쳤을 때는
김치 책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하는 마음이 조금 있었어요.
김치는 늘 집에 있었고, 너무 익숙해서
굳이 책으로 다시 배워야 할까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책을 천천히 넘기다 보니
이 책은 김치를 잘 담그는 방법을 알려준다기보다
김치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바꿔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재료가 달라지고
손이 가는 방식도 달라지고
기다리는 시간도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아주 조용한 말투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마음이 괜히 차분해졌어요.

어려운 설명이나 전문적인 표현은 거의 없고
마치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는 느낌이에요.
“이 계절엔 이런 김치가 어울려요.”
“이때는 조금 기다려 주세요.”
그런 말들을 들으며
김치는 기술보다도 계절과 마음을 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도 과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번듯하게 차려진 상차림보다는
막 담가 놓은 김치, 익어가는 김치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어서
괜히 더 믿음이 갔고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당장 김치를 담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아, 계절이 또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먼저 들었어요.
김치를 통해 사계절을 다시 느끼게 되는 기분이랄까요.

요즘은 뭐든 빨리 배우고, 빨리 따라 하고,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지는데
이 책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김치도, 계절도, 생활도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요.

김치를 잘 담그고 싶은 사람에게도 좋겠지만
저처럼 그냥 김치를 좋아하고
계절의 흐름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조용히 곁에 두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에 다 읽기보다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꺼내 보고
“아, 이제 이런 김치를 담글 때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

그래서 이 책은
요리책이라기보다
사계절을 담아둔 기록 노트 같아요.
천천히, 오래 두고 보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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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유령들
M. L. 리오 지음, 신혜연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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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어요.무섭다기보다는,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달까요.
페이지를 넘길수록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지는데 그래도 이상하게 손에서 놓이지는 않더라고요.

이야기의 배경은 셰익스피어 연극을 공부하는 엘리트 연극학교의 학생들이에요.
매번 무대에 올라 비극을 연기하고,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누군가는 악역을 맡죠. 그런데 그 역할들이 무대 위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예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사소한 감정도 더 크게 느껴지고,
질투나 비교 같은 마음이 쉽게 숨길 수 없는 상태가 돼요. 그러다 결국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이야기는 그 이후를 조용히 따라갑니다.

이 책은 누가 범인인지 빠르게 알려주지 않아요. 대신 왜 아무도 솔직해지지 못했는지를 보여줘요.

읽다 보면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요. 침묵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모른 척하지 않았을까 하고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과장돼 보이면서도
이상하게 낯설지는 않았어요.비교하고, 뒤처졌다고 느끼고, 그래도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못하는 마음들이 우리 일상과 꽤 닮아 있었거든요.

읽고 나서 한동안 책 내용을 곱씹게 됐어요.
우리는 얼마나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나도 상황에 맞는 역할을 연기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착한 사람, 이해심 많은 사람이라는 얼굴 뒤에 외면하고 있는 감정은 없었는지도 생각해 보게 됐어요.

이 책은 시원한 결말을 주지는 않아요.
그래서 더 오래 남았어요.
읽고 나면 마음 한쪽이 조금 묵직해지는데,
그 여운이 싫지 않았어요.

조용히, 천천히 읽기에 좋은 책이에요.
그리고 다 읽고 나서 혼자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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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의 나라
남킹 지음 / 청년정신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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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의 나라》를 읽으면서 처음 느낀 감정은 ‘참 묘한 이야기다’라는 생각이었다. 표지 속 붉은 보석처럼 반짝거리지만, 그 안에 감춰진 어둠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독자로서 마음이 흔들렸다. 주얼리는 이책속의 여인 안나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라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다루는 줄 알갰지만 실상은 권력과 욕망, 거짓과 위선이 뒤엉킨 인간의 민낯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여러 생각이 이어졌다.

이 책의 중심에는 윤산군과 그의 아내 안나라는 인물이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예술을 사랑하고 품격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속을 열어보면 누구보다도 강한 욕망을 품고 있다. 그 욕망은 시작해 결국 사람과 권력으로 향하고, 두 사람은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한 나라를 뒤흔드는 선택들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은 과장된 악인은 아니지만, 현실 속에서 충분히 존재할 것 같은 권력자들의 그림자를 닮았다. 그 점이 이 소설을 더 현실감 있게 만든다.

읽다 보면 이 부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그리고 그 기만이 어떻게 그들 스스로를 집어삼키는지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안나는 예술의 뮤즈라 불리며 외면적으로는 품위와 감성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권력을 움켜쥐고 주변을 조종하려는 욕망이 살아 움직인다. 윤산군 또한 안나의 야망과 맞닿아 더 큰 힘을 탐하면서 점점 어두운 선택을 반복한다. 이들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감탄과 분노가 번갈아 찾아왔다.

특히 재미있었던 건, 이 소설이 단순히 누군가의 악행과 몰락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나는 욕심에서 자유로운가?’, ‘사람이 욕망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소설 속 인물들은 극단적이지만, 그 욕망의 씨앗은 우리 주변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이야기의 전개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책 속 시대적 배경 또한 인물들의 욕망과 잘 맞물려 있다. 특정 시대를 지목하지는 않지만,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현실의 여러 모습이 떠오른다. ‘가면을 쓴 권력’, ‘위선으로 포장한 예술’, ‘주변을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려는 사람들’…. 이런 요소들이 지금의 시대에 일어난 일과 묘하게 (?!) 겹쳐지며 더 큰 공감을 준다. 그래서 윤산군과 안나가 결국 맞이하게 되는 결말 역시 단순한 소설적 장치가 아니라, 욕망의 끝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결말 부분에서는 후련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두 사람의 끝은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이 욕망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이 책이 단순히 ‘권력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였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닿았다.

《주얼리의 나라》는 화려한 제목과 달리, 보석보다 더 날카롭고 깊은 인간의 욕망을 다룬 소설이다. 인물 하나하나가 현실에서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그들이 겪는 갈등 또한 독자로 하여금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읽고 나면 화려함 뒤에 숨은 그림자,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씌우는 가면을 돌아보게 되는 작품이다. 과연 지금 현실에서도 소설속 결말처럼 그리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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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도, 궂은 날도 모여 인생이 꽃 피리 - 마음에 쓰는 에세이 필사 노트
오유선 지음 / 베이직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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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이 조금 지쳐 있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손이 가게 된 책이 있었다. 바로 『맑은 날도, 굳은 날도 모여 인생이 꽃피리』라는 책이다. 처음에는 표지의 꽃 그림이 예뻐서 펼쳤는데, 읽다 보니 그 꽃들처럼 마음에 조용히 피어오르는 위로가 있었다.

이 책은 총 네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의 장이 모두 다른 얘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바로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메시지였다.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아주 작은 감정들을 다루고 있어서,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이 책을 읽을 때 좋았던 점은 각 편의 마지막에 있는 큰 글씨 문장들이다. 우리가 그대로 따라 적어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 필사 페이지를 보면서 잠시 멈춰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요즘은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감정 하나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는데, 그 문장들을 적으면서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주 떠오른 생각은 “모든 날이 결국 모여 나를 만든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맑은 날만 기억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굳은 날들이 쌓여야 비로소 단단해진다는 걸 다시 느꼈다. 저자는 힘든 날도, 흔들렸던 날도, 마음이 시렸던 날도 결국 인생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 말이 참 따뜻하게 와닿았다.

책의 제목처럼 인생은 결국 다양한 날들이 모여 하나의 꽃이 되는 과정이라는 걸, 읽는 동안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막상 살아보면 좋은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을 때도 있지만, 그 모든 날들이 결국 나를 조금씩 자라게 한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들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한 번에 쭉 읽지 않았다. 마음이 조금 흔들리는 날,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한 장씩 꺼내 읽었다.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문장 하나가 하루를 조금 가볍게 만들어주곤 했다. 책이라는 게 꼭 정답을 알려주는 건 아니지만, 그저 “괜찮다”고 말해주는 존재가 될 때가 있다. 이 책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정말 맑은 날도, 굳은 날도 모여 결국 인생이 꽃피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 바람이 전해졌으면 한다.

요란하지 않고, 조용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을수록 더 깊게 스며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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