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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무슨 내용일지 잘 감이 오지 않았어요.
제목부터가 조금 낯설었거든요.
‘나는 그대의 책이다’라니, 보통은 내가 책을 읽는 건데 책이 나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 궁금해졌어요.
책을 펼치고 몇 장을 넘기다 보니
이 책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됐어요. 등장인물도 없고,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아요.
대신 책이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요. 천천히 하라고, 편하게 읽으라고, 굳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래서 저도 괜히 집중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이 책은 공기, 흙, 불, 물 이렇게 네 가지 세계를 지나가게 합니다.그걸 ‘여행’이라고 부르는데,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여행은 아니에요.
짐을 챙길 필요도 없고,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어요. 그냥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이미 여행이 시작되어 있어요.
공기의 세계를 읽을 때는 괜히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는데 잠깐 내려놓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흙의 세계로 넘어가면 조금 차분해집니다.
어디 멀리 가고 싶다기보다 그냥 지금 있는 자리에 잠시 머물러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불의 세계에서는 조금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어요. 애써 외면했던 감정이나
괜히 마음속에 쌓아둔 생각들이 슬쩍 고개를 들더라고요.
그리고 물의 세계에 이르면 모든 게 흘러가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 이 상태 그대로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솔직히 말하면 각 세계가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설명하라고 하면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 책 같았습니다.
이 책은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아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게 정답이다”
이런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계속 묻습니다.
지금 어떤 기분인지, 어디쯤 와 있는지, 잠깐 쉬어도 괜찮지 않은지.
그래서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생각하게 돼요. 요즘 내가 너무 바쁘게만 살고 있었나, 괜히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었나,
그런 생각들이요.
저는 이 책을
한 번에 끝까지 읽지 않았어요.
몇 장 읽고 덮고, 커피 마시다 다시 펼쳐보고, 그렇게 천천히 읽게 되더라고요.
빨리 읽으려고 하면 이 책은 자꾸
“천천히 가도 괜찮아” 이렇게 말리는 느낌이었어요.
다 읽고 나서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닙니다. 인생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머릿속이 말끔해졌다기보다는 잠깐 숨을 고른 느낌이 남았습니다.
이 책은 위로해 주는 책이라기보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책 같아요. 말은 많지 않지만 혼자 두지는 않는 책요.
그래서 언젠가 마음이 조금 복잡해질 때,
아무 생각 없이 다시 펼쳐보고 싶어질 것 같아요.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열심히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천천히 넘기며 나 자신을 잠깐 바라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읽었다기보다 조용히 나의 내부로 잠시 다녀온 느낌이 남은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