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홍신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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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늘은 며칠 째 흐렸다. 비든 눈이든 내리지 않고는 갤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품고 있다.  바람은 낮게 발목을 자르며 지나가거나 귀를 물어 뜯으며 지나갔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비명 대신 더욱 몸을 움츠리며 갈 길을 재촉했다.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었다.마주치지 않고 유연하게 왈츠의 우아한 스텝처럼......

  얼마전 소천했다는 바다 건너 , 마르케스 옹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낱말들이 쌓여서 시간이 되고 시간은 역사가 되어 퇴적된다. [백년동안의 고독]은 마콘도라는 마을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다. 러시아 소설을 읽다보면 한 사람을 호명하는 다양한 지칭 때문에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콜롬비아 출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 인물의 이름을 메모지에 옮겨 적는다. 러시아 이름이 한 사람의 지칭 때문에 혼란스럽다면 [백년 동안의 고독]은 집안 사람들의 비슷한 이름과 반복으로 혼란스럽다.

  글을 읽다가보니 원피스 -  오다 에이치로의 원작 에니메이션-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말도 안되는 원피스의 캐릭터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넘어선 인간들과 행동들 , 말도 되지 않는 기상상황들의 연속과 인과율을 벗어난 삶과 죽음의 혼재들은 현실이라기보다는 환상의 공간에서나 일어날 일들이었다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환상성은 소설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리얼리즘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소설 어딘가에도 리얼리즘을 규정할만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환상성과 리얼리즘은 궁합이 맞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르케스 옹의 글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읽어본 서사라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천명관의 '고래'와 비슷 - 사실 천명관의 '고래'를 읽다가 초반에 그만 둬버려서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초반 이야기를 시작하는 부분의 서사가 매우 닮아있다. - 했다. 두 이야기를 비교해서 읽어보면 -검색을 해보니 누군가가 천명관과 마르케스의 글을 비교해 놓은 것이 있는 듯하긴 하다 -  재미있을 것이지만 시간이 별로 없다 안타깝게도 내 글 읽기 속도는 하루에 50쪽을 넘지 못하므로 [백년 동안의 고독]을 다 읽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그러므로 천명관의 '고래'를 다 읽는 일은 불가능 한 일에 가깝다.

'고독'이란 말은 깊이와 부피를 가늠하기에 너무나도 모호한 낱말이다. 고독이란 말은 언제나 생각해도 정확하게 인식되거나 술회할 수 없었다.-  표준 국어 대사전의 설명을 옮겨보면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라고 규정한다.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란 얼마나 개별적인 의미들인가. 외롭고 쓸쓸함의 개별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지 않나? 그렇다면 고독에도 사람마다 밀도가 다른 것인가? -  그저 모호하므로 이미지를 제시할 수 밖에 없는 성가신 낱말이다. 다행히 오늘 하늘이 '고독'을 설명하기 충분한 하늘이긴 했다.고독은 곳곳이 멍든 하늘의 이미지와 닮아있다.

 

  고독하다는 말을 흔히 쓸까? 나는 고독하다는 말을 잘 쓰지 못하는데 , 고독하다고 말해버리는 순간에 도대체 고독하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해일처럼 혹은 살안자의 치명적인 칼처럼 내게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쓸쓸하다 , 외롭다는 의미는 이해가 가긴 하는데 도저히 고독하다는 말을 이해할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다. 나의 말 꾸러미에는 고독하다는 말은 잊혀지거나 사라져가는 낱말이다.

 

  문득 생각이 든 것은 '고독'이라는 낱말은 어쩌면 개인이 느낄 수 있는 의미의 층위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 규정지어지는 낱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고독했다고 말하면 조금 어색하지만 ,  그/그녀는 고독했다고 말할 때는 그 어색함이 조금 더 줄어든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고독을 탐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러했다.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며 가족의 이야기였다. 굳이 고독이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면 사람들 사이의 일이었으나 크게 보아 일가 즉 한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에 지나지 않았으며 개별을 넘어 대중성을 획득하지 못했고 그러므로 백년동안 고독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기록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일요일이 저물어 간다. 문장과 문장 사이 , 벌어진 틈 사이로 틈입하는 소음들에 정신을 빼았기기도 했고 졸음이 몰려와 잠시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기록- 소설이지만 하나의 기록이다. 흥망성쇄를 모두 품은 이야기는 하나의 온전한 기록일 수 밖에 없다. -의 끝을 보았다는 것이고 결국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기억마저도 희미해져 지워져갈 것이지만 지금 내가 쓴 문장들은 남아서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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