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책 몰래 고치는 사람
심경호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차가운 기운들이 바람결 사이로 켜켜히 쌓였다가 눈이 되어 내리기도 하는 겨울의 한 자락을 지내고 있는 유랑인입니다. 다들 겨울 잘들 견디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랑인은 천연 고지방성 베둘레햄을 장착한 덕분에 그리 추운지 모르고 잘 견디고 있답니다.

 

유랑인이 이번에 읽어 본 책은 다소 생소한 - 제가 한문학에는 문외한이라 그러는 것이겠지만 - 심경호라는 한문학자가 쓰고 엮으신 『자기 책을 몰래 고치는 사람』이라는 책입니다.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말입니다. 딱 두 가지가 제 마음을 끌었습니다.

 

하나는 한문학자의 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고전에 살짝 관심이 있는데 우리나라 고전이든 우리나라에서 고전으로 여겨지는 책들은 한자에 기대어 있는 부분이 많지 않습니까?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발동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책을 몰래 고친다는 이미지 때문이었습니다. '몰래'라는 말이 조금 어감이 서걱거리기는 합니다만 자기 글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자인하고 늦었지만 타인이 모르게라도 고친다는 것은 자기 충족이며 만족이고 학자의 기본자세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번 읽어 볼만 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지요.

 

이 책은 분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들이 많고 논문의 성격이 강한 것들이 있고 논문이라고 하기에는 가벼운 글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뭐 굳이 이름 붙이자면 중수필 정도 될 것 같습니다만 책의 분류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옛 선인들의 방식을 빌면 한 권의 문집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이제껏 써온 글들을 가려 묶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은 네 부분으로 나눠져 있고 그 속에 수 많은 편린들이 켜켜히 쌓여 있습니다. 읽는 이의 기호에 따라 골라 읽을 수 있는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소소한 글 읽기의 재미는 제 1부 '자기 책 몰래 고치는 사람'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말입니다. 고전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제 2부 '책 읽는 풍경 - 고전의 양식'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전에 대한 서평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헤어나오지 못 할 했습니다. 모르는 책들이 저를 유혹했거든요. 좀더 깊은 이야기를 해 볼 요량이면 제 3부 '지금은 쓰이지 못하지만 뒷 세상엔 영원하리라 -지성사의 단편' 부분을 먼저 읽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네 번 째 장은 학문의 갇힌 틀을 넘어 문화담론을 이야기하는 장입니다.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 부분을 먼저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나눠져 있으니까 읽기 쉽기도 하고 읽기 어렵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읽기 쉽다는 것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고 말입니다. 읽기 어렵다는 것은 호흡이 그만큼 짧아서 몰입하기 쉽지 않아서 입니다.하지만 한시의 맛은 말이에요 그 문장이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읽고 맛을 음미하는 자의 것이겠지요. 글은 사람을 따라간다고 말입니다. 한학을 공부하신 분의 글이 묘한 생각거리를 준다고 생각하고 싶어집니다.

 

한학자라고 하면 말입니다. 생각되는 이미지 있지 않습니까? 그 이미지가 저자의 글에서도 느껴집니다. 꼿꼿하다고 할까요. 낡아 버린 말자루에서 꺼낸 제 표현 낱말들을 끌어오자면 사막에서 마른 바람을 맞으면서 견뎌낸 문체 같다고 해야할까요? 군살이라고는 없고 왠지 야위워 보이지만 안광만큼은 살아있어 쉬이 건드릴 수 없는 문장 같았습니다. 전문가이니까 당연한 것이겠지만 흘러 나온다라는 말을 뛰어 넘어 흘러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전에 관해서는 한문학에 관해서는 이제 흘러 넘치는구나 싶습니다. 이런 글을 읽는 순간은 정말 재미있는 순간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2부를 마지막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왜냐구요. 다른 부분들을 읽으면서 조금은 한문학 혹은 동양고전에 대한 흥미가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고전에 대한 소개글에 해당하는 부분이 2부거든요 한자가 어렵고 한문이 어렵다구요. 걱정하지 마세요. 읽고 또 읽다가 보면 문리가 트일 것 입니다. 저는 '코 묻은 진보'라는 '고문진보'를 찾아 읽어 볼 생각인데 , 생각만 앞설 뿐 언제 읽을런지 기약이 없습니다. 이 번 한 해가 가기 전에 꼭 한 번 읽어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2008년 우리나라 고전 읽기를 하다가 만 것이 생각나는데요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