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들 메이커
마젠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녕들 하시지요? 유랑인입니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져서 볼 살이 이제 제 것이 아닌 시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 연인들은 그 볼을 부비부비하면 해결될 터이고 말입니다. 뭐 연인도 없는 저 같은 사람은 책을 볼에 부벼서라도 언 볼을 녹여야 하지만 말입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화사한 꽃잎들이 피어날 시간이 다가오니 말입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시간을 살아내는 겁니다. 여러분

 

이번에는 중국 작가가 쓴 소설을 한 번 읽어봤습니다. 유랑인을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어지간하면 외국 소설을 꺼립니다. 한국에서 암약(?)하시는 뛰어난 번역가들이 잘 번역을 해 놓으셨을 겁니다만 원어와 번역어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존재한다고 믿어 온 유랑인이니까 말입니다. 안 읽으려고 했습니다만 , 읽게 만들어 버린 것은 한 문장이었습니다. '중국의 밀란 쿤데라'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 저와는 인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게 되더란 말입니다. 사실 제가 밀란 쿤데라 아저씨에게 일종의 부채감과 패배의식이 좀 있거든요. - 농담을 읽다가 식겁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패배의식을 조금이라도 만회해보자라는 심산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좀 후련하네요 역시 사람은 고백하면서 살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제목은 '누들 메이커'인데요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보면 '누드 메이커'로 보입니다. 표지그림도 누들하고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누드와는 밀접해 보이는 그림이 중앙에 장식되어 있단 말입니다. 누들을 누드로 읽기 딱 적당한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아마도 누들 메이커라는 말이 중국과 조금은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군요 . 마젠 아저씨를 만나면 물어봐야겠지만 멀리 계시니까 물어 볼 수 도 없습니다.

 

마젠 아저씨는 중국 작가지만 중국에서 작가 활동을 금지당해서 지금은 외국에 계신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망명작가라고 하는데 중국의 밀란쿤데라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홍보 문구니까 확인해보지 않고는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 아유 그냥 내용이 장난이 아닙니다. 웃깁니다.

 

그로테스크라는 말을 처음 배운 것은 기형도의 시를 평가하는 누군가 - 아마도 김현이었을 겁니다만 - 의 표현 때문이었을 겁니다. 마젠누들메이커에도 그로테스크란 수식어를 달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몇 자 더 적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로테스한 웃음 혹은 블랙코메디 정도 일겁니다. 상황은 전체적으로 기괴합니다. 그런데 그 기괴함을 희석시키는 것은 웃음입니다. 굳이 설명해보라고 한다면 상황이 만들어 내는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류승환 감독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라는 제명의 영화말입니다. 누들메이커의 소제목 들을 읽을 때마더 저는 영화를 생각했습니다. 둘 중에 하나 혹은 모 아니면 도라는 이야기입니다. 누들메이커의 제목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도취되거나 마비되거나' '자살하거나 표현하거나'

 

총 9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업작가와 전업 헌열자와의 만남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말입니다. 중국의 개방개혁 이후의 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듯 합니다. 과도기라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은 상황들이 제시되고 그 상황에 처해진 인간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나타내었습니다. 한참을 웃을 수 있지만 말입니다. 여러분 웃음 중에 가장 기분 나쁜 웃음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데 말입니다. 실컷 같이 웃고 즐겼는데 곰곰히  시간이 지나면서 치명적인 아픔이 되어 돌아오는 것 말입니다. 타국인이 제가 읽어도 아차싶은데 중국 사람들이 읽으면 무릎을 치면서 탄식할겝니다. 그래서 판매금지 되고 삭제되는 운명에 처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말입니다.

 

누들메이커를 읽으면서 말입니다. 근대화의 기치 아래서 서양문물을 허벌나게 받아들이던 한국의 어느 한 시기가 생각났습니다. 한구과 중국은 다를 바 없었던 모양입니다. 국가의 통제아래 개인의 삶이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단 말입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에겐 끄덕이면서 볼 수 있는 글인듯 합니다.

 

소설을 읽게 되면 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어떤 문장이 눈에 밟히면 포스트 잇을 붙여두는 습관이 있는데 말입니다. 뭐 이런 식입니다.

 

'모든 고통은 인간이 만든거야 '

맞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고통의 유발자는 인간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기 보다는 타인에게 고통을 부여하면서 반대급부로 안도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도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우리는 바깥세상과 격리된 채 정신적인 진공 속에서 자랐지. 허무한 세대 이 나라가 개방되었을 때 제일 먼저 쓰러진 세대. 지금은 외국 문물이 유일한 종교인데 , 우리는 그걸 이해하거나 그 가치를 인식할 방법이 없어 반세기가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느닷없이 현대라는 숲 속인데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꼴이지 독재 정부 때문에 마비된 사회인데 , 이 현대적인 세상 속에서 무슨 수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혼자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고 기준점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곳에서 길을 잃은 심정이지 낮은 자존감을 감추려고 피상적인 오만함의 가면을 쏙 있지'라고 전업 작가가 말하기도 합니다.

 

'법은 권력층만 보호하게 마련이지. 나머지 사람들은 피해자 역할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죽음과 연관되어야 한다고 여긴다면 그건 자네가 잘못 생각하는 걸세 요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고 ,삶은 인내 그 자체 아닌가. 나처럼 이를 악물고 견뎌야 하는 거란 말일세  나는 삶의 모든 것을 감당하고 있다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전업작가든 전업 헌열자는 조재현이 김기덕의 페르소나이고 배종옥이 노희경의 페르소나이듯 마젠의 페르소나 같아 보여요 마젠은 <누들 메이커>를 통해서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만 .......  인간이 만들어낸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고 인간의 숙명이라면 지금 처해진 중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삶을 이를악물고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감다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행동을 촉구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최소한 진실만은 외면하지 않고 현실을 이를 악물고 살아내라고 선동하고 있는게지요 웃음이라는 포장지와 웃음을 유발하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이라는 내용물을 가지고 말입니다.

 

아아 발이 시리고 손가락이 굳어갑니다. 너무 오래 쓰거나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이제 저는 다른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요 갑자기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한 고찰>인가 하는 책을 다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들지만 처음부터 다시 읽을 생각을 하니 다시 도망가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몸을 보중하고 고뿔 조심하시길 기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