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불구경 - 마음속 여행길
각운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방법으로는 호흡을 통한 멈춤을 수행하는 사마타와 관찰을 통해 대상을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법이 있습니다. 저자는 오랜 시간 경전을 연구하고, 공부하며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런 체험을 통해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법이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보완적인 수행법이란 것을 체득하게 됩니다. 어느 한 가지만 수행해서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수행법을 어떻게 융합하여 실천하는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이론이 아닌 삶에서 치열하게 수행에 정진한 후, 체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기에 명상을 실천하고 계신 분들에게 더욱 유용한 정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에서는 익숙한 삶을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했습니다. 여행은 그러한 불편과 고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은 여행입니다. 그러나 나의 인생여행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경험입니다. 곧 내가 걷는 이 길이 세상에 하나뿐인 길인 것입니다.

 

저자는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을 권유합니다. 그저 눈을 감고, 편안히 앉으라고 합니다. 조금 낯설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편안히 머무르라고 합니다. 마음속 여행인 명상을 이론이 아닌 몸으로 직접 체험하라고 합니다. 모든 여행은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납니다.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또 삶을 살아갑니다. 마음속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삶의 본질을 볼 수 있는 통찰을 얻기 위해 아무런 제약 없이 나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마음속 여행, 명상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친절하고, 상세하게 그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실천하여 경험으로 체험하는 것은 다릅니다. 오직 체험으로 체득한 이론만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명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 방법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은 이 책을 통해 경험에서 깨달은 저자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 훌륭한 스승과 도반을 구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의 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보는 것입니다. 즉 얼마나 멋진 설법을 하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한 말을 일상의 삶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p.35)

 

- 마찬가지로 우리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또 소멸하는 생각도 인위적으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 곧 마음이고 그 마음의 작용으로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멈춘다는 것은 열차가 멈추듯 마음의 작용이 멈추는 것이고, 이는 우리가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그 어떤 개체가 작동을 멈추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생명이 다하지 않는 한 생각을 멈출 방법은 없습니다.(p.47)

 

- 만약 당신의 수행이 이름을 널리 알리거나, 추종자들 모아 집단을 만들거나, 자신만의 생계를 위한 수단이거나, 영성 체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그런 세속적 관심사가 조금이라도 섞여든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험하고 먼 길을 걷더라도, 깨달음의 근처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p.57)

 

- 길은 찾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귀 기울여야 할 것은 오직 붓다의 가르침이며, 가르침에 따라 길을 걸으며 그 길이 바른 것인지 확인하는 것은 온전히 당신의 몫입니다. 그러니 달리 물어봐야 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 단지 걸어가야 할 뿐.(p.61)

 

- (......) 일상 속에, 여행의 노정 위에 명상의 색을 덧입혀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발견하는 것이, 단지 낯선 설렘에 그쳐서는 안 되고 진정한 자아를 대면하는 발견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발견은 돌아온 현실에서 일상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p.88)

 

- 있는 그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고,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순리에 맡기는 것, 좁게는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나의 잣대로 분별하지 않는 것이고, 넓게는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인 연기의 흐름에 순응하여 될 일은 이루어지고, 안될 일은 안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REACT 하는 반응의 삶인 것입니다.(p.103)

 

 

- 사마타가 개념이라는 표상을 대상으로 집중을 하는 것이라면, 위빠사나는 법이라는 보편적 현상을 대상으로 관찰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p.111)

 

- 명상을 통해 오랜 시간 쌓아온 집중과 알아차림의 힘은 마음속 내면의 눈을 열어주고 이원성의 간섭이 없는 중도의 바라봄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이러한 내면의 눈을 뜨고 일상의 모든 현상을 들여다볼 때, 수행자는 시시각각 날아와 박히는 화살에 상처를 입지 않고 상대적 실체를 여여히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p.129)

 

- 깨달음은 어렵게 설명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가능한 쉽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바로 지견을 얻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지견을 얻는다 함은, 세상의 이치를 분명히 알고 보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보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이고, 무엇을 안다고 하여도 그것을 직접 보지 못하였다면 제대로 안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올바른 이해는 알고 보는 것이 함께 가야 합니다.(p.147)

 

- 본능과 욕망과의 사투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태어난 이상 살아있는 모든 인간이 감내해내야 할 운명인 것입니다. 욕망은 괴로움의 원인임과 동시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지탱해주는 본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당신은 대체 왜 명상을 하게 되었는지를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속의 편안함에 그저 안주하기 위한 것인지,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것인지를.(p.154)

 

- 순복은 조건 없는 헌신을 통해, 자애는 온전한 자기희생을 통한 길입니다. 헌신은 에고의 내려놓음이며, 희생은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길입니다. 그렇기에 순복과 자애 두 가지 대안의 길은 에고가 없는 무아의 길로 통합니다. 하여 명상이든, 순복이든, 자애의 길이든, 당신이 진정으로 그 길에 당신을 온전히 내맡긴다면, 그 길은 의 모든 욕망과 이기심이 지워진 길이기에 결국 무심의 땅을 당신을 이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p.16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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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사는 소염제를 처방하지 않는다 - 통합의학의 세계적 권위자가 밝히는 염증과 치유의 메커니즘!
하비 비겔슨 지음, 박병오 옮김 / 라의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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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미국 통합의학의 선구자입니다. 현대의학이 인정하지 않는 전통의학의 다양한 치료방법을 통해 사람이 우선인 의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현대의학이 포기하거나 치료에 실패한 환자들을 전통의학으로 치료했다는 이유로 주류 의학에서 배척받고 의사면허도 박탈당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저자는 병균보다 의사가 해롭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의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일들이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질병을 무찔러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그 질병의 발생 원인은 도외시한채 무문별한 화학약품을 처방하고, 시도 때도없이 수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말이라면 그것이 진리인양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한계입니다. 그러나 의사들이 환자의 편에 서서 치료를 하는 것인지, 병원 매출이나 제약회사의 편에 서서 진료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저자는 질병을 치유의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어떤 질병이 발생했다면 거기에는 그것이 발생하게끔 만든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부위가 안좋다고 한다면 그 부분만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질병을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약품 처방과 수술 등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우리 몸이 스스로 치유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몸에 대해 지나친 개입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질병이 생겼다면 그것은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입니다. 어떤 불균형이 발생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휴식을 권하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몸이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도록 편안한 휴식과 안정, 그리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음식의 섭취 등의 행동을 취한다면 몸은 스스로 치유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질병을 공격하고, 억압하고, 죽여야 하는 적으로 간주합니다. 약품과 수술 등의 인위적 개입을 통해 몸이 스스로를 치유할 기회를 빼앗아 갑니다. 그것이 더 큰 질병을 부르는 계기가 된다는 것은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을 나누고, 쪼개어서 치료하기 때문에 특정 부분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다른 부분의 부작용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통합의학은 우리 몸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긴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소통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의학이 발달하고, 우리의 기대수명이 늘어났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까지 향상시킨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과도한 처방과 검사, 수술 등의 지나친 개입으로 우리의 삶의 질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현대의학도 질병이라는 증상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 원인을 찾아 없애고 몸을 돕는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현대의학의 무분별한 처방과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을 무시한 채 행해지는 여러 가지 수술, 검사, 약품 남용 등의 유해성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하고, 인간 중심의 전통의학에 대해 생각해보는 소중한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또한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을 신뢰하고, 대수롭지 않은 질병에도 병원을 찾고, 약을 복용하는 습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합니다.

 

 

 

본문중에서,

 

- 현대의학은 조기에 질병을 찾아내서 공격적으로 치료해야 생명을 살린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런 치료를 받고 나면 온전하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이고 질 높은 삶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우리는 수술과 약이 건강에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도외시하고 있다. 거기에는 위험과 결과가 따른다는 개념에 콧방귀를 뀌고 있는 것이다. 의사인 마가렛 슈왈츠는 이렇게 말한다. “환자들은 수술에 대단히 관대하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보다 못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다.”(p.6)

 

- 여러분도 알다시피 인체는 뛰어난 자연치유 능력을 갖고 있다. 외상이 발생하면, 우리의 몸은 그것을 고립시켜서 건강한 조직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염증이다. 즉 염증이란 인체가 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치유 작업이다.(p.14)

 

- 새로운 과학 정보가 계속 쏟아지고 있고, 새로운 생명 종들은 끝없이 발견된다. 세상에 몇 종류의 생명체가 있는지 가늠도 못하고 사막과 바다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입자를 계속해서 찾고 있다. 지금도 연구자들은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위해 연구 중이다. 과학은 자연이 일하는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줄기찬 노력이라 정의될 수 있다.(p.18~19)

 

- 우리는 모든 의약품에는 부작용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정신 차려야 한다. 이것은 애피타이저처럼 부차적인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작용이다. 그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절대 없었을 작용이다.(p.24)

 

- ‘생체환경이란 모든 인자들, 상황들,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주는 경험들을 아우르는 전일적 존재를 의미한다.(p49)

 

- 우리의 건강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생체환경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매일 생체환경의 일부를 만들어낸다. 삶은 끝없는 창조 과정이고 우리가 창조자다. 질병도 이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따라서 질병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질병이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우리를 덮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인과관계를 분명히 봐야 한다. 그 실마리를 찾는 열쇠는 신호와 징후, 즉 증상 너머를 보는 것이다.(p.51)

 

- 생물학적 의학은 한 개인의 육체만 독특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 순간까지 겪은 경험들이 육체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다. 그것이 바로 생체환경이다. 생체환경은 우리의 경험, 우리가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 정서적 특징까지 설명해준다. 이 모두를 육체와 별개가 아닌 하나로 보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인정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이다.(p.60~61)

 

- 스트레스를 받고 쉬지 못하면 몸은 경고를 보낸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균형 상태가 길어진다면, 몸은 당신을 물러서게 하기 위해 더 힘든 방법을 선택한다. 감기에 걸리는 것이다. 질병을 독립된 실체로 보면 아주 중요한 진실을 놓칠 수 있다. 증상들의 원인과 그 증상이 드러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다. 우리는 적응 능력을 가진 생물학적 존재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해간다. 삶은 과정이다.(p.69)

 

- 몸이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다는 이론에서 시작한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 과정을 지원하는 것뿐이다. 어떤 질병이나 질환, 건강상의 문제는 몸이 치유를 끝내는 데 어떤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온전한 사람이므로 늘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몸이 어떻게 일하는지, 우리가 왜 몸의 자연스러운 치유를 도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자신의 몸과 싸우고 있다.

 

- 이런 상상을 해보자. 당신이 누워 있다가 일어날 때마다 누군가 당신의 머리를 후려친다. 당신은 점점 더 천천히 일어날 테고 결국은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감기약이 우리 몸의 치유 시스템에 하는 짓이다.(p.86)

 

- 통증은 그곳의 균형이 깨졌다고 말해주는 신호다. 기존의 소염제들은 통증에 무디게 해주고, 염증 과정을 늦추거나 멈추도록 한다. 근본 원인인 관절에 윤활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약을 삼킴으로써 사실상 인체의 치유 반응을 꺼버린 셈이다.(p.88)

 

- 수술은 몸에 상처를 입히고, 몸은 염증을 만들어서 상처를 치유한다. 수술로 생기는 상처는 워낙 커서 몸은 흉터를 만들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 다음 수순으로 흉터는 염증을 가두고 갇힌 염증은 몸이 치유 과정을 정상적으로 끝마치도록 놔두지 않는다. 갇힌 염증에서 나오는 유독한 노폐물은 처리되지 못한 채 몸을 순환한다. 염증의 노폐물이 배출되지 않으면 더 큰 손상을 초래하는 것이다.(p.93)

 

- 자연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오리지 균형과 불균형만 있을 뿐이다. 자연의 모든 작용은 모든 것을 반영한 것이고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아인슈타인은 작용과 반응이 끝없이 일어난다고 말했다.(p.109)

 

- 몸의 생리와 이와 관련된 움직임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반응한다. 염증과 질병은 현재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들이며 적응 과정을 말해주는 증상이다. 조화로운 상태로 돌아가려는 몸의 노력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다. 염증과 같은 어느 한 곳의 변화는 모든 계통, 기능, 장기, 호르몬 등에 영향을 준다. 두 사람이 시소에 마주앉아 있다고 해보자. 한 쪽이 앞이나 뒤로 움직이면 다른 쪽도 움직여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으로 기울거나 넘어지게 된다. 우리 몸도 이와 같이 균형의 원리를 따른다. 인체는 항상성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율적 공생 체계이다.(p120)

 

- (......) 하지만 현대의학은 를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증상과 검사 수치들을 하나의 질병 이름에 맞아떨어지게 한다. 약이나 수술이 치료다. 방사선 스캔과 약물, 갈수록 늘어가는 수술이 예방이다. 의대생들은 환자에게 귀 기울이기보다 질병과 검사 결과를 잘 다루라고 배운다. 어쨌거나 누군가의 병력에 관심을 갖는 유일한 시점은 개입을 정당화할 때뿐이다. “부친에게 고혈압이 있었다면 당신도 그럴 가능성이 높으니까 이 약을 드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행위를 예방이라 부른다.(p.133)

 

- 현대의학이 질환과 질병이라 부르는 모든 반응은 우리의 몸과 박테리아가 함께 조화로운 치유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증표이다. 우리가 반응하고 적응하는 방식이 우리를 만든다. 삶은 우리 내부와 외부를 끊임없이 들고 나는 흐름이다. 결코 분리란 없다.(p,140)

 

- 의학이 질병에서 건강으로방향을 되돌릴 수 있는 정확한 지점이 바로 염증이다. 생물학적 의학은 사람의 모든 것을 다룬다. 한 명 한 명의 염증과 질병의 과정은 독특하다. 우리는 절대로 의학에서 개인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사람마다 독특한 생화학적 흔적을 갖고 있으므로, 어떤 증상 또는 어떤 이름이 붙은 증상들의 모음(질병)에 단 하나의 의학적 해결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과정을 되돌리려면 반드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질병을 없애는 마법의 탄환이나 유일한 방법은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원래 없기 때문이다. 질병은 과정이고, 이것이 전부다.(p141)

 

- 질병은 과정이다. 경고도 하지 않고 난데없이 나타나는 법은 절대로 없다. 몸의 흐름이 그리 좋지 않다는 초기 징후들을 무시하거나 억지로 누르니까 갑자기 덮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징후를 무시하면서 더 나빠지는 조건을 만드니까 그렇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언제나 관찰이다. 징후를 보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휴식, 음식, 물이 건강의 기본 구성요소다. 이 세 가지로 의학이 하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닥터 앨런의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약과 스캐너와 메스를 너무나 쉽게 허용하고 있다.(p.23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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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라
문진희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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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명상하라>는 혜민 스님의 스승으로 알려진 문진희님의 첫 번째 명상 안내서입니다. 저자는 그 어떤 순간이라도 명상하라고 합니다. 영성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노력과 의무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을 넘어 실생활의 수행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길이 명상입니다.

 

저자는 명상의 방법으로 미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과 암송을 제시합니다. 또한 살아 있는 스승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스승의 도움을 받아 실제적인 수행을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는 지식은 공허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요원한 일입니다. 영성을 물질을 축적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이비 스승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살아 있는 스승의 안내와 개인의 수행 없이는 영성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과연 이 세상에는 참스승이 존재하는가?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매순간 나의 감정과 느낌을 알아차리고, 세상과 동떨어진 수행이 아닌, 세상 속에서 부딪치며 열심히 명상해야겟습니다. 이 책 <명상하라>는 저자의 명상 수행의 경험과 명상 고전서, 여러 스승의 가르침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풀어쓴 명상 입문서로서 유용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본문 중에서,

 

- 이 세상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우연은 없습니다. 인생의 고통과 기쁨은 자신의 행위의 결과입니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더라도 지나가는 사건은 모두 기록된다는 것을 각성해야 합니다. 이전 기록들은 잊혔지만, 그렇다고 그 기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p.19)

 

- 성인들께서는 항상 어떤 상황에도 순응하고 수용하라고 하십니다. 환경이 우리에게 순응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우리에게 순응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순응해야 합니다. 행복이란 순응하고 수용할 때, 그곳에 있습니다.(p.32)

 

- 영성은 수행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깨달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프나 기타 또는 플루트 같은 악기에 대해 쓴 책이 수없이 많지만 책을 읽기만 해서 훌륭한 연주자가 된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명상도 수행 없이는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책을 읽고 어느 정도의 지식을 얻을 수는 있지만 개인의 경험과 자아에 대한 각성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명상도 이와 같습니다.(p.41)

 

-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차이가 크듯 명상을 아는 것과 하는 것도 차이가 큽니다.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했다고 박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은 여러 해 동안 수업에 참석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명상을 지식으로 안다 해도 실제 명상을 하지 않으면 경험은 없습니다. 영성에 관한 책을 아무리 많이 봤다 해도 명상하지 않고는 우리의 영적 발전은 없는 것입니다.(p.51)

 

- 땅바닥에 당구공 하나를 떨어뜨려도 지구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보기에는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다 하더라도 하나의 행위로 인한 카르마는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세상은 당구공이 떨어지기 전과 결코 똑같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카르마입니다.(p.156)

 

- 신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불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가 생긴 것은 그 이후입니다. 500년 전에는 시크교인이 없었으며, 1,400년 전에는 회교인이 없었고, 2,000년 전에는 기독교인이 없었고, 2,500년 전에는 불교인이 없었고, 4,000년 전에는 유대교인이 없었습니다.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모두 똑같은 창조자의 분신으로 그들 안에는 영혼이 있으므로 모두 평등합니다.(p.237)

 

- 성인들은 한 종교를 포기하고 다른 종교에 동참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세상 또는 가족을 버리라고, 생활양식을 바꾸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평소처럼 배우자와 자식들과 함께 살고 직업을 갖고 일하며 다른 모든 의무를 이행하라고 권합니다. 다만, 날마다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무에 얼마간의 시간을 내라고 요청할 뿐입니다. 그것은 신에 대한 헌신이며, 그분의 목소리, 내면의 천상 음악을 듣는 것입니다.(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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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속의 힘 - 인생의 파도에서 초월명상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밥 로스 지음, 허윤정 옮김 / 인간희극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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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명상의 창시자인 마하리시 마헤쉬 요기의 제자인 저자는 45년 동안 억만장자, 연예계 스타, 교도소 수감자 등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초월명상을 가르쳐 왔습니다. 이 책 <고요 속의 힘>은 초월명상의 우수성을 과학적인 비교·실험을 통해 검증하고, 초월명상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사례 등을 통해 초월명상이 다른 명상법보다 배우기 쉽고, 수행하기가 편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초월명상은 단순하고, 쉽고, 종교와 무관하며, 학력이나 나이, 직업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월명상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선생에게 일대일 지도를 받아야만 합니다. “명상은 아침에 한 번, 그리고 늦은 오후나 이른 저녁에 또 한 번 수행하며, 아침식사 전과 저녁 식사 전에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당신은 이 명상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지도자로부터 일대일 수업의 형태로 배울 수 있다. 명상 지도자는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만트라를 줄 텐데, 만트라는 그 자체로 아무 의미가 없는 말소리다. 지도자는 당신에게 그 만트라를 떠올리는 올바른 방법, 즉 간단하고 쉬우면서도 조용히 떠올리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p.12~13)”

 

본문 중에 구체적인 초월명상의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문가에게 일대일로 배워야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공인된 초월명상 센터는 한국초월명상원이 있습니다. 초월명상을 배울려면 현재로선 이 곳을 방문하여 배우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빠진 듯하여 조금 아쉽지만, 초월명상의 우수성과 전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명상법이라는 것은 책을 읽는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명상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초월명상의 창시자인 마하리시의 초창기 목표였습니다. 저자는 그 뜻을 이어받아 현재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명상의 효과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초월명상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본문 중에서,

 

- 초월명상의 목적은 이 무한 지대로 통하는 문을 여는데 있다. 초월명상에서는 의식을 집중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안내도 받지 않으며, 암시나 소극적 관찰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의식이 가닿을 수 있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갈 뿐이다. , 모든 생각과 감정을 뛰어넘어 실제로 초월하는 것이다. 이런 경지는 당신이 생각하고 창조하고 계획하고 정리하고 결정하고 걱정하고 축하하는 따위의 행위를 시작하기 이전의 조용한 내적 자아와 만나는 것이다. 그 자아는 언제나 당신의 마음속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하루하루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음과 산만함으로 말미암아 그곳으로 가는 길이 가려지거나 쉽게 잊힐 뿐이다.(p.30~31)

 

- 원래 마음은 정처 없이 방랑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만족을 느끼고 끌리는 대상, 즉 더 큰 지식과 더 많은 행복을 찾아가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 마하리시의 통찰이다. 그리고 이 통찰은 초월명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의 명상과는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p.49)

 

- 그러나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금세 지나가버리지 않으며, ‘외부에 있는 것을 뛰어넘는 만족과 행복의 지대가 존재한다. 그곳은 가장 깊고 조용한 곳에 있는 마음에서 발견된다. 초월명상은 마음의 표면과 심연 사이에 놓인 다리다. 더 많은 만족을 추구하는 마음의 본성을 활용하여 관심을 밖으로부터 안으로 돌려서 곧장, 저절로, 쉽게 내면에 주목하도록 이끈다. 그러면 활동을 멈추지 않던 마음이 안정되고, 가장 큰 만족을 주는 깨어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명상에 관한 문헌들에서 여러 시대에 걸쳐 예찬하는 내면의 경험이다.(p.51)

 

- 개인이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면 대인관계와 우정, 결혼생활이 최대한 즐거워진다. (......) 그러므로 인간관계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우리가 명상을 하면 수련 과정에서 스스로의 잠재력을 점점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그때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크게 성장한다. 그리고 마음과 정신이 크게 성장하면 타인에게 우리 자신을 최대한 내어줄 수 있으므로 모든 인간관계가 즐거워진다.(p.97)

 

- 근본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명상은 나를 가장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게 해준다. 또한 이 세상에서 나의 가치가 무엇인지 되새기게 한다. 오늘날의 삶은 온갖 것들이 우리를 멀어지도록 만든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도전과 야망에 사로잡히고, 너무나 많은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여 있다. 그 곳에서 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시간, 명상은 나에게 그런 의미다. 무슨 신비주의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아주 기본적인 얘기다.(p.248)

 

-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일 뿐입니다. 불을 켜면 어둠이 사라지죠. 당신에게는 하루 동안 어두웠던 방이 존재할 수도 있고, 천 년 동안 어두웠던 방이 존재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방에 불을 켜면 두 방 다 금세 어둠이 사라집니다. 어두웠던 시간이 하루였든 천년이었든 마찬가지죠. 바로 이런 이치로 초월명상이 개인의 삶에, 더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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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주는 선물 - 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아서
설영상 지음, 홍명이 그림 / 라의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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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학문화원에 참나찾기과정을 개설,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 <깨달음이 주는 선물>에서 자신의 오랜 수련과정과 여러 가지 종교제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종교와 종교제도는 구분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종교는 궁극적 가르침,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종교제도는 우리가 흔히 종교라고 오해하고 있는 불교, 기독교, 유교, 힌두교 등이 있습니다. 진리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정 중에 생긴 것이 종교제도인 것입니다. 세상의 근본 원리이자 최고의 가르침인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단지 해석만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종교제도는 아전인수격으로 하나의 진리를 자신들의 편의대로 해석하고, 자신들만이 진리를 말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세상을 분열과 증오로 서로를 불신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랑에 기초한 진리를 말하는 종교제도가 오히려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를 삶 속으로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경전에 적혀있는 말씀대로 삶을 유지하고, 실천하며, 살아나갈 때 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삶은 지식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궁극의 진리를 수행하고, 거기에 맞게 진리를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 것입니다. 저자는 여러 가지 종교제도와 철학, 과학에 이르는 방대한 진리를 설명하며 우리에게 늘 그러하냐?”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우리는 늘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중에서,

 

- 지금부터 여러분은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자신이 불행하다고 하는 분은 정확히 말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불행한 것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p.47)

 

- 암기를 통해 지식은 쌓일지 모르지만, 지식이 아무리 높이 쌓여도 그것이 지혜로 전환되지는 않습니다. 지혜란 자기의 체험을 통하여 승화된 것입니다. 스스로 소화한 진리여야 진정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내 것이냐, 아니냐는 삶에서 판가름난다는 얘깁니다.(p.62)

 

-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 안에는 전체인 우주가 들어 있고, 모든 구성요소들은 맞물려 끝없이 돌아가고, 구조적으로 제일 작은 수준까지 내려가도 계속해서 그러합니다. 이것이 바로 화엄의 세계입니다. 티끌 하나에도 전체인 그 하나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신이라고 할지, 우주라고 할지, 자연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벗어날 재간이 없음은 분명합니다.(p.95)

 

- 덕이 있는 자는 남에게 아량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선악의 개념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겁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과 같습니다. 백팔번뇌가 왜 생깁니까? 선악과 호오를 분별해서 생기는 겁니다. 자신의 본성을 깨달으면 비로소 번뇌에서 벗어나고 선악의 경계를 넘어섭니다.(p,108)

 

- 최고의 가르침은 민족, 문화, 언어에 영향 받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글이 되면서 달라지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곳에 전파되면서 변질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수십, 수백 세대를 거치면 얼마나 변질되었는지 파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도에 얽매이지 말고 본질을 봐야 합니다. , 종교제도를 있게 한 종교에 초점을 맞춰 공부하라는 뜻입니다.(p.118)

 

- 그렇다면 어떤 경우가 아는 것일까요? 생활 속에서 활용하고 실천할 때, 말씀 안에 거할 때입니다. 화엄경을 외운 것이 아니라, 화엄경이 내 삶의 기준이 될 때, 그때서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사 논문을 쓸 만큼 화엄경에 대한 지식이 많더라도 그건 아는 게 아닙니다. 입으로 천 번 만 번 자비와 사랑을 말한들, 아무 때나 화내고 약한 자 앞에서 거들먹거린다면 그 또한 아는 게 아닙니다. 삶에 녹아 있지 않으면 지적 허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p.135)

 

- ‘이것이 맞다나는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는구나는 완전히 다릅니다. 후자는 처음부터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놀라운 수련법입니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그런 태도가 당연하지 않냐고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당연한 것을 당연한 줄 알고 당연하게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p.143)

 

- 우리는 감각기관의 한계와 잘못된 지식 때문에 사물, 상황 등을 바로 보지 못하고 이미지(있는 그대로가 아닌)가 가미된 상()으로 봅니다. 따라서 상에서 편견이 가미된 이미지를 없애고 참모습을 보는 것이 명상입니다.(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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