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 주는 선물 - 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아서
설영상 지음, 홍명이 그림 / 라의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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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학문화원에 참나찾기과정을 개설,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 <깨달음이 주는 선물>에서 자신의 오랜 수련과정과 여러 가지 종교제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종교와 종교제도는 구분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종교는 궁극적 가르침,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종교제도는 우리가 흔히 종교라고 오해하고 있는 불교, 기독교, 유교, 힌두교 등이 있습니다. 진리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과정 중에 생긴 것이 종교제도인 것입니다. 세상의 근본 원리이자 최고의 가르침인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단지 해석만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종교제도는 아전인수격으로 하나의 진리를 자신들의 편의대로 해석하고, 자신들만이 진리를 말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세상을 분열과 증오로 서로를 불신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사랑에 기초한 진리를 말하는 종교제도가 오히려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를 삶 속으로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경전에 적혀있는 말씀대로 삶을 유지하고, 실천하며, 살아나갈 때 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삶은 지식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궁극의 진리를 수행하고, 거기에 맞게 진리를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 것입니다. 저자는 여러 가지 종교제도와 철학, 과학에 이르는 방대한 진리를 설명하며 우리에게 늘 그러하냐?”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우리는 늘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중에서,

 

- 지금부터 여러분은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자신이 불행하다고 하는 분은 정확히 말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불행한 것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p.47)

 

- 암기를 통해 지식은 쌓일지 모르지만, 지식이 아무리 높이 쌓여도 그것이 지혜로 전환되지는 않습니다. 지혜란 자기의 체험을 통하여 승화된 것입니다. 스스로 소화한 진리여야 진정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내 것이냐, 아니냐는 삶에서 판가름난다는 얘깁니다.(p.62)

 

-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 안에는 전체인 우주가 들어 있고, 모든 구성요소들은 맞물려 끝없이 돌아가고, 구조적으로 제일 작은 수준까지 내려가도 계속해서 그러합니다. 이것이 바로 화엄의 세계입니다. 티끌 하나에도 전체인 그 하나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신이라고 할지, 우주라고 할지, 자연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벗어날 재간이 없음은 분명합니다.(p.95)

 

- 덕이 있는 자는 남에게 아량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선악의 개념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겁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과 같습니다. 백팔번뇌가 왜 생깁니까? 선악과 호오를 분별해서 생기는 겁니다. 자신의 본성을 깨달으면 비로소 번뇌에서 벗어나고 선악의 경계를 넘어섭니다.(p,108)

 

- 최고의 가르침은 민족, 문화, 언어에 영향 받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글이 되면서 달라지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곳에 전파되면서 변질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수십, 수백 세대를 거치면 얼마나 변질되었는지 파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도에 얽매이지 말고 본질을 봐야 합니다. , 종교제도를 있게 한 종교에 초점을 맞춰 공부하라는 뜻입니다.(p.118)

 

- 그렇다면 어떤 경우가 아는 것일까요? 생활 속에서 활용하고 실천할 때, 말씀 안에 거할 때입니다. 화엄경을 외운 것이 아니라, 화엄경이 내 삶의 기준이 될 때, 그때서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사 논문을 쓸 만큼 화엄경에 대한 지식이 많더라도 그건 아는 게 아닙니다. 입으로 천 번 만 번 자비와 사랑을 말한들, 아무 때나 화내고 약한 자 앞에서 거들먹거린다면 그 또한 아는 게 아닙니다. 삶에 녹아 있지 않으면 지적 허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p.135)

 

- ‘이것이 맞다나는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는구나는 완전히 다릅니다. 후자는 처음부터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놀라운 수련법입니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그런 태도가 당연하지 않냐고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당연한 것을 당연한 줄 알고 당연하게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p.143)

 

- 우리는 감각기관의 한계와 잘못된 지식 때문에 사물, 상황 등을 바로 보지 못하고 이미지(있는 그대로가 아닌)가 가미된 상()으로 봅니다. 따라서 상에서 편견이 가미된 이미지를 없애고 참모습을 보는 것이 명상입니다.(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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