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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소설, 향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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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작가정신의 [소설, ] 시리즈에서 발간한 중편소설이며, ‘소설, 향 리마인드를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된 개정판이다. 조경란 작가님은가족 서사를 주로 그리는 작가님이며, 이 책 또한 가족 서사를 토대로 한다.

인물들은 크게 두 가지 요소, ’시간에 귀속되어 고통을 겪는 존재들이다. 주인공이경의 가족 구성원들은 불행의 근원이 가정임을 인식하면서도, 적극적인 변화를 꾀하려기보다는 오히려 구성의 고착화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적극성만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걸, 그들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변화 없이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도피혹은죽음뿐이라는 점이, 절망의 상징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이모의 도피는, "이경"이 내심 의지하던 존재인 "옆집 남자"까지 홀연히 데리고 가버린다. ”이경은 결국 수용을 택하는데, 능동적인 수용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답습으로 느껴진다.

시간와 가정의 공통점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시간은 객관적으로는 공평하나 흐름에 있어서는 개인차가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인물들은 시간을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감내해야 할 고통으로 인지한다. 그 시간은 마치 자아와 상관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버리는 "강물"과도 같다.

"이곳에서는 시간도 늘 완류로만 흐르고 있다.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38p)

"강물은 내가 처음 온 날과 똑같은 형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저렇게 썩어 가고 있는 물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이제는 궁금하지 않다." (48p)

시간을 간주하는 척도는 두 가지가 있다. 시간을 축복으로 여기는지 혹은 저주로 여기는지. 이 둘 사이를 끈임없이 진동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겠지만, 시간을 저주로 여기는 나날들이 삶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확실한 고통이다. "이경"은 장님들을 보며 "장님은 결코 웃는 법이 없다"(42p)라고 말하지만, 미래에 좌절만이 예상되는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꽃은 핀다.

"채송화, 분꽃, 그리고 뒤늦게 핀 봉숭아꽃. 꽃들은 활짝 피어 있다. 이틀 동안 무섭게 비가 퍼부었고 나는 꽃들을 돌보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물도 주지 않았고 쓰레기들을 골라내지도 않았다. 한데도 꽃들은 만개했다. 몇 개 대궁은 부러지거나 휘어져 있긴 하지만 뿌리가 뽑힌 것은 없다. 이상한 일이다. 강물이 범람했고 전기가 끊어졌었다. 목욕탕집 전체가 빗물에 휩쓸려 갈 정도였다. 그런데도 꽃들은 죽지 않았다. 활짝 핀 꽃들은 벌어진 대합 속살처럼 징그럽기만 하다. 나는 매운 손끝으로 꽃모가지들을 똑똑 부러뜨린다. 입을 꾹 다문다. 한쪽 손바닥이 채송화, 분꽃, 봉숭아 꽃잎들로 가득해진다." (93~94p)

태풍에도 만개하는 꽃들, 징그러울 정도로 질긴 생존력이다. 하지만 꽃은 살아남아 아름다움을 전한다. 절망 속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을 표현하는 존재이다. 그렇게 『움직임』은 한 켠에 고이 모아 놓은 희망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여담으로, 떠나기 전에 다정해지는 사람의 모습도 인상 깊은 슬픔이었다. 사라져 버리기 전에 처음으로 불러준 ("신이경"이 아닌) "이경아"라는 목소리. 왜 사람들은 상실이 다가옴을 직감할 때 더 온화해지는 것일까?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것을 잘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 중편소설이라 단시간 내에 읽기 좋다. 초판이 1998년에 발행되었기에, 당시 시대상과 감성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흡입력 있게 흠뻑 빠질 수 있는 가족 서사 소설을 찾는다면, 이 책 『움직임』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 해당 콘텐츠는 작정단 12기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 작가정신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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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전면 개역판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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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 소설이다. 그렇기에 이미 수많은 버전의 도서가 출간되었으나, 작가정신의 『모비 딕』은 여러 모로 특별하다. 먼저 김석희 번역가님이 "내 혼이 담겼다"라고 표현했을 만큼, 번역에 매우 크게 공을 들인 완역본이다. 장엄하면서도 엄숙한 소설의 그 분위기가, 문장 곳곳에 녹아 있어서 읽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더불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자료도 있다. 등장인물 소개, '피쿼드' 호의 항해 지도, 이미지를 통한 포경선 설명, "옮긴이의 덧붙임"과 독자와의 대화를 통한 풍부한 해설 등. 책을 읽어나가기 어렵다면 이러한 자료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을 터이다.

내용에 대해 말해보자면, 고래잡이를 생업으로 삼는 포경업자들이 포경선을 타고 항해하는 스토리이다. 당시 고래의 머리기름은 큰 가치가 있었다. 그렇기에 포경업자들은 고래를 사냥하여 돈을 벌었다. 하지만 고래잡이라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으며, 고래는 거센 반항으로 많은 이들을 다치게 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고래의 이러한 행동을, 공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한 방어로 보는 것이 더 옳아 보인다. 하지만 "피쿼드 호"의 선장 "에이해브"는 고래 "모비 딕"이 자신을 "공격"했다고 믿고, 이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일등항해사인 "스타벅"은 이에 반대 의견을 표하지만, 에이해브의 광기를 막기는 어려웠다. 광기는 또 다른 비극을 낳는다.

바다와 고래에 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고래 · 포경업 · 포경선에 대한 설명과 묘사는 소설에서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하나의 백과사전이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풍부하다. 소설을 읽으며 포경선을 타고 함께 항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작가정신의 『모비 딕』은 읽는 재미와 원활한 이해, 두 가지를 모두 잡은 전면 개역판이다. 책의 두께에 괜스레 두려워하기보다는, 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본래 텍스트의 훌륭함과 더불어 이번 개정판에서의 여러 요소들은, 위험하지만 찬란한 바다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끌기 충분하다. 고전 완독이 어렵다면, 작가정신의 『모비 딕』을 통해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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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랑한 예술가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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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단 12] [책 리뷰]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 조성준 저, 작가정신(2024)

 

 

예술이라 함은 왠지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 같다. 예술가들의 삶의 방식이 우리와 크게 다를 것이라는 편견 때문일까? 하지만 예술가들 또한 벅차게 기뻐하고, 부딪히며 좌절하고, 삶을 지속하며 희로애락을 느끼는 같은 사람들일 뿐이다. 다만 그 표현의 수단이 예술이라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는 국내외 25인의 예술가를 소개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가도 그렇지 않은 예술가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사상·이념·인종차별 등으로부터 비롯된 갈등에 짓눌려 살아야 했던 예술가, 예술에 온 인생을 바친 예술가, 시대상으로 인해 그 능력을 꽃피우지 못한 예술가, 대중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정작 자신을 사랑하지는 못하였던 예술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었던 예술가.

 

스타의 삶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무시당한 채 찬양과 경멸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스타들의 삶. 이것은 비단 스타뿐만 아니라 예술가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아픔인 것 같다. 아픔을 아픔으로, 고통을 고통으로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의 모습.

 

그런 순간들이 왔을 때 표출할 수 있는 각자만의 예술을 각자의 마음에 품고 살았으면 한다. 삶을 사랑하려 하는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삶과 접목시켜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책이 바로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이다.

 

 

- 책 속 예술가의 말

 

김중업 "건축은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또 하나의 자연이다." - 「권력에 맞섰던 건축가, 김중업」

존 케이지 "사람들이 왜 새로운 생각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오래된 생각이 두렵다." - 「이것도 음악이다, 존 케이지」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끈질기게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그는 인간과 건축만을 위해 싸웠다." (르코르뷔지에의 장례식에서 읽힌 추도문) - 「아파트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

샤넬 "허무에 빠져 있기보다는 차라리 실패하는 편이 더 낫다."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 - 「세상을 바꾼 스타일, 코코 샤넬」

 

 

 

- 책 속 문장들

 

스산한 영화가 어떻게 스산한 마음을 녹였는지에 대해선 의문이지만, 마음의 작동 방식엔 때론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인간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 한 편이 축 늘어진 마음에 인공호흡을 할 수 있고, 무심코 들은 음악 덕분에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고된 하루 끝에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을 삼키면 안도감이 드는 것처럼 때론 예술도 인간을 위로합니다. - 「작가의 말」

 

예술가 중 상당수는 상당히 반골이다. 그들은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고, 균열을 낸다. 이들에게 세상은 혁신해야 하는 과제다. 하지만 어떤 예술가는 동시대의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면서 낙관적으로 미래를 그리기도 한다. 백남준이 그랬다. - 「새로운 파도, 백남준」

 

온 세상이 자신의 사생활을 캐내려 덤벼드는 상상을 해보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많은 사람에게 손가락질받는 건 어떤 기분일까. 누군가는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것도 스타의 의무라고 말한다. 스타도 실수하고, 상처받고, 두려워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는다. - 「누가 스타를 죽였는가, 에이미 와인하우스」

 

대중은 스타를 동경한다. 화려하게 빛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스타를 손가락질한다. 사람들에겐 찬양과 경멸의 대상이 동시에 필요하다. 그래서 스타의 화려함 속엔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다. - '멍청한 금발 미녀'라는 편견, 매릴린 먼로」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소멸은 스타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영원히 빛나는 건 없다. 그럼에도 어떤 소멸은 더 쓸쓸하다. 무지개 너머의 희망을 노래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 희망을 보지 못하고 떠난 이 스타의 삶이 그렇다. - 「잔인한 나라의 도로시, 주디 갈란드」

 

"영화가 탄생한 이래 인간의 수명이 세 배나 늘었대." 영화로 타인의 삶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인생 경험치도 늘어난다는 의미다. ···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타인을 헤아려보게 하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들. 인간에게 영화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 「영화가 수명을 늘려준다, 에드워드 양」

 

가츠가 끝나지 않을 싸움임을 알면서도 계속 검을 휘둘렀듯이, 작가도 묵묵히 그리고 또 그렸다. 어떤 완벽주의자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붙잡고자 자기 자신을 통째로 내던진다. - 「전력투구로 싸웠던 남자, 미우라 겐타로」

 

 

 

* 해당 콘텐츠는 작정단 12기 활동의 일환으로 작가정신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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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 열 편의 인권영화로 만나는 우리 안의 얼굴들
이다혜.이주현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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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7기 서평]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이다혜·이주현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한겨레출판(2023)


이 책은 <씨네21>에서 활동한 기자분들이 집필하였으며,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획과 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책이다. 국내 인권영화 10편을 다루며, 그것이 어떻게 현대 사회와 연결되는지 서술하고, 그리고 이 책을 보는 독자들에게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게 화두를 던진다. 청년, 학습권과 교육권, 아이돌, 노인 문제, 성적 만능주의, 존엄한 죽음, 고독사, 양심적 병역거부, 장애인 차별, 디지털 파놉티콘 ······. 인권에 관해 이렇게나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아래는 인권영화에 대해 작가님들이 쓴 글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인용한 것이다.

“우리 안의 선한 본성을 믿는다. 우리 안의 선한 천사를 늘 응원한다. 그럼에도 인권 감수성이라는 건 저절로 길러지지 않는다. 판단력과 논리력을 기르는 것처럼 폭력과 차별과 통제와 억압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인권 감수성도 기를 필요가 있다. ”

”이런 상상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진다면 우리는 그 길로 가야 한다. 총을 드는 세상이 아닌 꽃을 드는 세상으로.

세상이 이렇게 흉흉한데, 허무맹랑한 상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뻔한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이다. 엉뚱한 상상이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상상하는 건 중요하다. 영화는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이처럼 책에서는 영화가 가질 수 있는 힘, 그리고 이것이 인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소외당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이입할 수 있는가? 또, 얼마나 이입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선뜻 답하기가 쉽지 않다. 나 하나 보호하기조차 벅찬 사회에서 타인에게까지 노력을 쏟는 것은 말은 쉬워도 그렇게 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되고 싶지 않은 면에 대한 공감은 본능적으로 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품 한 편으로 세상이 모두 변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이 누군가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것이고, 이것이 어떠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생각이 비관으로 물들어갈 때 그로부터 구제해주는 수단이기도 하니까.


- 10편의 인권영화


<메기>

그러면 청년을 위한 해피엔딩은 어디 있을까.

이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크루의 협업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로 호명되는 대신 스토리텔링 하는 창작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아니, 희로애락의 사건들을 자신의 언어로 재정의 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청년의 삶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그는 사랑과 혁명을 나란히 언급 하며 '사랑의 현재적 혁명성'을 얘기했다. "혁명을 하기에 적절한 시점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적절한 타이밍을 찾는 동안 혁명의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다. 혁명을 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지금 당장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지금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일종의 사랑의 혁명성에 대해 생각했다.” 중요한 건 과거와 미래의 사랑이 아니라 현재의 사랑이다. 사랑은 유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수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떡볶이 혁명의 투사가 된다.


<힘을 낼 시간>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을 향해 간다. 길을 찾는다는 것은 그토록 단순한 행위지만, 목적지를 상실했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혹은, 이렇게 길을 찾아본 적이 없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봉구는 배달 중>

노화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 노화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이것이 노인 문제를 대할 때의 우리의 본능적이고 본질적인 마음인지도 모른다고 신아가 감독은 말했다.


<4등>

성적이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행복과 안녕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 입시 경쟁이 과열된 이곳에서, 성적을 올릴 수만 있다면 무엇과도 바꿀 수 있다는 각오가 된 이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하늘의 황금마차>

행복한 죽음이라는 뜻을 지닌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도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한때는 너도나도 웰빙을 얘기했다면 이제는 너도나도 웰다잉을 얘기한다.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는 지금,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이 중요해졌다.

··· 삶이 평등하지 않은 것처럼 죽음 또한 평등하지 않다. 존엄한 돌봄을 받다가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선 경제적, 사회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소주와 아이스크림>

누군가에게 가정은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존투쟁의 장이나 마찬가지다. 이 딜레마를, 영화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다짜고짜 연결되면 해결될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영화를 통해 서서히 드러난다.


<얼음강>

징병제 국가이자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군대 문제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이자 이성적 합의점을 찾기 힘든 주제다.


<두한에게>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사진에 감동적인 문구가 덧붙여지는 이런 이미지들을 스텔라 영은 “감동 포르노”라고 일축한다. ‘포르노’라는 단어는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한 그룹의 사람들을 물건 취급해서 다른 그룹의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과대망상자(들)>

무한 경쟁과 무한 소비의 시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시대, 온라인 쇼핑몰의 장바구니 품목이 개인의 요강과 취향과 정체성까지 설명해주는 시대. 우리는 새로운 디지털 감시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 해당 콘텐츠는 하니포터 7기 활동의 일환으로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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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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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7기 서평]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저, 한겨레출판(2023)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일기를 꾸준히 쓰는 사람들이 주변에 그리 많지는 않다. 나 또한 그렇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루의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잠들기 전에 유튜브나 SNS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대부분의 루틴이 되었고, 그 사이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끼워 넣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일기를 쓰고 싶어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일기와 수다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도서이다. 세 분의 수다 같은 일기, 일기 같은 수다를 접하면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살아가며 하는 고민은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인간관계, 실패, 사랑, 번아웃, ∙∙∙∙∙∙. 그러한 고민들에 때로는 재치 있게, 때로는 누구보다 울적하게, 때로는 솔직하게 답변해주신다. 그게 왠지 위로가 되었다.

또한 이 책은 팟빵의 팟캐스트 “일기떨기”에서 시작한 책이다. 호기심에 팟캐스트도 들어 보았는데, 다른 콘텐츠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매력을 느꼈다. 시각적 자극 없이 온전히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기분을 느꼈다. 이 책 덕분에 일기뿐만 아니라 팟캐스트의 매력도 알게 되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드는 생각은,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팟캐스트 1화에 일기에 대해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별로였지만 내일이나 모레쯤엔 또 모르지'라 는 막연한 낙관으로 일기를 쓴다. 기다리던 내일과 모레가 한참 늦게 와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우선은 별로인 오늘에 최선을 다한다. 일기장 앞에선 최선을 다해 하루를 미워하되, 아침이 밝으면 뒤끝 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내 하루를 미워하는 것이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최악의 하루는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이 최악의 ‘나’로 이어지지 않게 해주는 수단이 일기인 것 같다. 이리저리 산재된 내 잡념을 한 데 모으는 과정, 하루 동안 겪었던 불행을 하나의 글에 집적시키는 과정이 오히려 그것을 털어낼 수 있게 도와준다.

언젠가는 꼭, 일기를 쓰기 시작해야겠다. 이런 마음이 들게 해준 이 책에게 감사하다.

- 문장들

좋아하는 게 많은 것과 표현하는 건 좀 다른가? 그래, 다를 수도 있겠다. 좋아하는 게 많은 건 그저 내 안에 담아두고 쌓아두고 간직하면 되지만 표현하는 건 꺼내야 하니까. 꺼내어 주는 걸, 어릴 때부터 못했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 거라고 믿었지만 이십 대의 나는 만남보다 많은 이별을 했고, 누구의 잘못도 없는 다툼을 했으며 그렇게 원망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들었다.

이십 대는 내게 정말 최악이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지만 삭제하고 싶은 시절은 아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삼십 대가 될 것이다. 삼십 대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문제에 직면해 상처받고 좌절하고 또 다른 최악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나는 이십 대의 나를 견뎠으니까. 그런 의미로 이십 대의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가련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살아가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은 그리움에서 그리움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까지도.

∙∙∙∙∙∙ 그러고 나서 나는 섬에 그리워하러 온 게 아니라 누군가를 더 깊이 좋아하기 위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굳셈을 과신하지만 동시에 그런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여기기 때문에 나약함을 들키려거든 부디 안전한 곳에서 무너지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여전히 밀어붙이기를 멈추지는 않은 채로 살게 되는 시기가 있다.

“저는 난관이나 처한 상황을 게임이나 하나의 소재로 생각하는 게 진짜 잘 돼요. 마치 내가 주인공 같잖아요. 나를 저 드라마 속에 주인공으로 넣어놓고 잠깐 떨어져서 어떻게 깨나 보자! 약간 이런 게 있어야 해요.”

나는 모두가 꿈을 꿨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은 마치 모두가 외로웠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어차피 우리는 모두 외로우니까 외로운 김에 꿈을 더 꾸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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