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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낙원을 찾아서 - 내 마음속 가장 아름다운 그곳
림헹쉬 지음, 백은영 옮김 / 가야북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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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이 하나가 되어 더욱 빛나는 림헹쉬의 책이다.
림헹쉬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여 많은 연봉을 받았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평소 하고 싶어하던 그림 창작을 하여 말레이시아에선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책 속의 그림까지 모두 림헹쉬가 그렸다고 하는데, 예쁜 그림을 바라보면 마치 추억여행을 하는 듯 가슴이 부풀게 된다. 그림의 색감이나 디테일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글이기 때문에 요점을 잡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다른 화가가 그렸다면 이토록 글을 훌륭하게 보좌하는 그림이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림헹쉬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 같다. 그의 글과 그림 속에 일관되게 나타나 있는 현 세계에서의 탈피, 현실의 외로움, 유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보면 그렇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에 적응하며,
매일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한다.
나란 존재, 이 세상을 지나는 손님일 뿐.
언젠간 이 도시의 구멍을 찾아내어
나만의 하늘을 찾아 날아가버릴 거야.(p52)--


글의 수준은 평이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림과 함께 보면 뜻 전달과 함께 감성의 울림도 깊어진다. '바람에 말려봐'와 같은 글의 그림은 옷을 입은 채 빨래줄에 매달려 있으면서 울적한 마음을 날려보내는 소녀의 맑은 얼굴이 돋보인다. 그림이 글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그림도 큰 몫을 했을 거란 느낌이 든다.

--어릴 적 들었던 이야기는 늘 환상적이었다.
지금은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언제까지나 그 이야기들을 믿으리(p34)--


림헹쉬는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믿고 싶어하는 동심의 소유자로 보인다. 여리고 순수한 감정의 소유자이기에 대기업의 살벌함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 아닐지. 예술가가 된 지금은 예전 대기업 연봉의 반만큼만을 벌면서도 현재에 만족하므로 자신이 행운아라고 말한다. 아마도 책의 제목처럼 잃어버린 낙원을 찾은 기분일 것이다.

98쪽 '마음의 문'의 한 구절인 '난 어느새, 게임의 규칙을 잊어버렸다'처럼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의 많은 것을 과거에 놓아둔 채로 살고 있다. 가져오려고 되돌아가도 이미 잊혀진 게임의 규칙 때문에 들어설 수 없는 그곳을 이 책은 슬며시 건드리며 지나간다.
어쩌면 뚜렷한 목적으로 자기계발서를 찾는 사람들에겐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일면 삶의 회피로도 보이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그러나, 마음을 한번 물휴지로 깨끗이 닦아내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이 책을 손에 들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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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철학, 소크라테스의 변론 나의 고전 읽기 8
플라톤 원저, 나종석 지음, 신준식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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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달달 외우던 철학 사상들.
소크라테스 하면 악법도 법이다, 산파로서의 역할, 악처 크산티페, 소피스트들을 궤변론자라 비난 등등 앞뒤 이어지지 않은 암기거리들만 생각난다. 대체 왜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은 이 책처럼 설명해주지 않았냐 말이다. '밑줄 좍, 외우고~'의 명령으로 뭔지도 모르며 외워야 했던 사상들의 퍼즐조각이 이제 완성된 모습을 어렴풋이 본 것처럼 느껴진다.

철학이란 실생활과 동떨어진 학문인 줄 알았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버린 후에야 실생활의 밑바탕이 되는 학문이 철학이란 것을 깨닫고,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 번뜩이던 10대 시절에 철학책을 읽지 않았음을 후회했었다. 이 책도 읽고 나니, 고등학교 시절 읽었으면 철학 공부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기원전 470년 경이란 까마득한 예전에 태어나셔서 기원전 399년에 돌아가신 소크라테스.
아직도 그의 사상이 연구되고 회자되고 있음은, 사회적인 명성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최선의 삶으로 생각했던 아테네 시민의 가치관을 비판하고 지혜에대한 사랑을 모색하며 스스로가 자율적인 주체라고 각성했던 것이 그만큼 인류 역사에 획기적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헤겔은 '도덕적 자율성을 지닌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자각을 심어준 소크라테스를 '세계사적 개인'으로 평가한다.(p206) -

재판과정에서 이미 과반수 이상이 소크라테스의 유죄를 결정한 상황에서도 그는 사형을 면하고 형량과 벌을 낮추기 위해서 고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에게 질문을 통해 깨닫게 만들어주는 자신은 영빈관에서 식사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 자리에 있던 시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추방의 형벌을 제안하여 사형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도덕적으로 참다운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 없이 생을 사는 건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것은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철학의 활동을 포기하면서까지 육체의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았고, 행복은 세속적인 것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죽음을 피하지 않았다.
-이제는 떠날 시간입니다. 저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아가기 위해 떠날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 쪽으로 가게 될지는, 신을 배고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p202)-

참다운 지혜를 추구하며 자유로운 토론과 반박을 즐겼던 소크라테스.
상대방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토론의 과정으로 반감을 사서 독배를 마시게 되는 배경이 되긴 했으나, 도덕과 진리를 탐구하는 순수한 철학자의 모습으로 후세에 남아있다. 그러고 보면 그는 그의 죽음이 패배가 아닌 철학의 승리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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