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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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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가장 처음에 나오는 최북의 '공산무인도'부터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솔직히 최북 그림의 첫인상은 그냥 밋밋한 편이었다. 나무와 정자에 뒷배경이 살짝 가미된 단순한 동양 풍경화라는 것 외에 특별히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없었다고 할까? 그런데, 이런 마음은 이내 책 속의 설명을 읽어가는 중에 달라지고 만다. 그림 왼쪽 귀퉁이에 있는 '공산무인 수류화개'란 말은 '빈산에 사람 없고,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 없이 물과 꽃이 있는 자연 풍경이 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제 책은 그림을 잠시 치워두고 이 '공산무인 수류화개'란 시 구절부터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구절이 실려 있던 나한도라는 노래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면서 결국은 깨달음 후에 다시 보는 산수의 의미라는 것, 즉 나와 외물과의 경계가 사라진 물아합일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란 걸 알려준다.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한몸이 된 것이다. 동양적 사고방식이 물씬 풍기는 시 한구절의 뜻을 파악하고 나서 다시 그림을 보면 그림이 내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림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평가했던 게 조금은 미안하고 뻘쭘해진다. 책에 나온 스물 여섯 점의 그림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시와 사연과 엮여 있어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선시대에는 시의 이해를 돕고자 시를 그림으로 그리는 교육 프로젝트까지 진행된 적이 있다 하니, 그림과 시가 별개인 서양화에 비해 동양화의 운치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어 보인다.

그림을 읽는다는 건 참 흥미로운 작업이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화폭에 담은 것뿐이라면 그저 그림을 잘 그렸니, 못그렸니, 색이 곱니, 충충하니 따위를 따지며 외면적인 것에 치중해서 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책 속의 그림들은 사연이 있다. 김홍도의 '추성부도'를 언뜻 본다면 하늘로 뻗은 곧은 나무의 기세가 당당한 산수화라고 할 것이고,. 가을 '추'자가 들어가서인지 고즈넉해보이다는 말을 덧붙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 속 가옥의 등근 문 안으로 선비가 있고, 그 좌측으로는 어린 소년이 뭔가를 가리키고 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 건지 그림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이럴 땐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 돌려 그림의 여백을 따라 조화롭게 자리한 한시를 보자. 한시의 내용은 바람소리, 물소리, 쇠소리, 말이 내달리는 소리를 기이하게 여긴 구양수가 어린 동자에게 소리의 근원을 물으니 동자가 나무숲에서 나는 소리라고 대답했고, 이에 구양수가 만물의 질서와 인간의 어리석고 수고로운 삶을 탄식한 것이다. 시를 소설처럼 풀어놓은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그림의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었고, 다시 그림을 보니 이전에 그림만 볼 때와는 견줄 수 없이 그림에서 힘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아는 것은 힘이라더니 정말로 그랬다.

이 외에도 삼강행실도 중에서 누백포호의 설화를 형상화시킨 그림과 김정희의 세한도, 날카로운 매가 게으른 토끼를 잡아채던 호취박토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이 기억에 남는다. 흐르는 물에도 사연이 있었던 그림들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읽노라면 동양화의 깊이와 운치에 더욱 빠지게 된다. 문학에 취한 그림을 보며 다시 그림에 취하는 연쇄효과 속에서 선조들의 정서를 짙게 느끼는 경험은 꽤 근사한 것이었다. 서양식 주택애서 서양식 옷을 입고 사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구 문물의 영향에 깊이 빠져 있지만, 동양 철학과 사상이 스며든 그림을 보고 편안한 공감을 느끼게 되는 걸 보면 뼈 속까지 아시아인이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극명해지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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