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 고종황제 -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역사를 배우는 중에 한없이 답답해져버리는 시기가 구한말의 시대이다. 야금야금 넘어 들어오는 일본을 앞에 두고도 약한 국력 탓에 청나라와 러시아에 의존했던 권력층이 있었고, 살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내던 농민들의 존재 또한 두드러지던 시절이었다.
왕실에서는 일본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서구와 미국에도 도움의 손길을 벌렸으나, 일본 위주의 정책을 펼쳤던 그들 나라들은 우리 말을 귀담아 들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미국 역사 속 두 명의 루즈벨트 대통령 중, 잘 알려지지 않은 편에 속하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박물관이 살아있다'란 영화에 인디언을 사랑하며 호탕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도 잠깐동안 그 이름을 볼 수가 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당시 일본 위주의 외교를 폈으며, 조선의 도움 요청을 묵살한 미국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주변 나라들 중 그 어떤 나라 중에서도 조선을 위한 우방은 없었다. 또한, 을사5적들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내며 을사조약을 맺을 때뿐만이 아니라 이후 고종의 퇴위에도 관여할 정도로 반조국의 길을 걷는다. 

고종황제는 독립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채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했고, 일본세력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에서 정치를 하며 일본에 대한 반항을 꾸준히 전개한 왕이다. 퇴임 후에도 해외로 나가 망명정부를 만들려고 시도하다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챈 일본측에 의해 독극물이 든 음식을 드시고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된다. 입관하자 시신이 녹아내렸다는 설이 있으며, 시신을 본 민영휘는 폭탄테러로 죽음을 맞았으니 누가 봐도 자연사라고 보기는 힘이 든다. 명성황후에 이어 고종황제까지 우리의 왕실 어른들을 외부세력들에 의해 잃었다는 것은 씁쓸하고도 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종황제는 책에 나온대로 고종의 마지막 승부사였던 것일까?
적에 맞서기 위해 다른 세력을 불러들이는 것이 이 시기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며 약한 국력 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치더라도, 고종은 국정을 주도하며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함으로써 유약한 왕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왕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12살이란 어린 나이에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왕위에 등극하였으나 대원군으로부터 뚜렷한 황제 수업을 받지 못했던 고종이 후에 왕으로서의 역할과 통치기술을 스스로 쌓아 뭔가를 이루어보려는 의욕에 불탔을 때는 국제적 여건이 그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책은 구한말 조선의 역사를 순서대로 설명해놓고 있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대원군과 민비 사이에서 표류하던 무능한 독재자로서의 이미지는 일본 식민사관이 의도한 것이라 한다. 식민사관에서 탈피하여 고종을 재평가하고자 하는 의도는 건국절과 광복절이 혼재하는 현 상황 속에서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음은 분명하나, 책 속에서 고종의 승부사적이며 개혁적인 면모가 크게 부각되진 않은 느낌이다. 뚜렷한 성공을 거둔 시도가 없어서일까, 역사의 암울한 현실을 고종이 뒤집어써야만 해서였을까? 고종은 대한제국의 꺼져가는 역사를 대표하며 지금도 그렇게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다. 국수주의에 물든 과장도 경계해야 하긴 하지만, 고종의 업적에 좀더 중점을 두어 상세히 기술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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