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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
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넘기면 초반부터 컬러판의 유적과 유물 사진이 마음을 빼앗아 간다. 32쪽에 달한 지면을 빌려 펼쳐지는 사진들을 그렇게 구경한 후 본격적으로 글을 읽게 되는데, 사실에 입각한 고고학에 저자의 상상이 더해져 유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감성적이고 가슴을 울리는 유적 소개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총 26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목차를 따라가는 동안 신화 속 인물들은 현실이 되었고, 앙상한 미라와 유골들은 금새라도 따뜻한 체온을 되찾아 움직일 것만 같다. 저자인 스티븐 버트먼이 고고학에 문학을 가미하여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고고학의 학문적 접근이라기보다는 발굴된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머나먼 과거의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수메르 문명 발굴을 다룬 2장이었다. 장례식에 늦을까봐 서둘러 가던 여인은 묘지에 이르러 잊어버린 건 없는지 준비물을 챙겨본다. 그리고, 사제들로부터 잠이 오는 액체가 들어있는 잔을 받아마신다. 시대 배경은 바뀌어 1930년대에 우르의 발굴이 시작되어 둔덕을 파헤쳐 내려가는 동안의 유적과 무덤들의 발굴 과정이 사실적으로 전개된다. 무덤 속에서 발굴한 것들을 찬찬히 둘러보다가, 문득 포커스는 한 여인의 해골 옆에서 발견한 리본에 맞춰진다. 머리에 달려 있어야 할 리본이 주머니에 들어있었던 이유는 장례식에 늦어 몸치장할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데, 여기서 이 리본의 주인은 글의 초반에 등장했던 바삐 걸어가던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메르 문명의 발굴을 순장을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던 한 여인과 연결시켜 써내려감으로써 발굴된 유물에 상상력을 더하며 역사보다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점을 유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토리노의 수의에 대한 심층적인 글도 재미있었으며, 투탕카멘 왕과 왕비, 폼페이 유적, 이스터 섬의 석상 등 호기심이 가는 고고학의 사례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속에 푹 빠져 과거여행을 하게 된다. 고고학을 통해 역사 속의 인간과 만나는 경험, 시공을 초월해 마음이 연결되는 새로운 느낌을 체험하게 된 것은 이 책 덕분이다. 고고학이라는 학문으로의 정통적 접근법에서 살짝 비껴난 듯하지만, 그것이 단점이 아닌 매력으로 작용했다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