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인열전 - 파격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조선의 뒷골목 히스토리
이수광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요즘 조선 중심의 역사서가 많이 쏟아져 나오면서 조선사회를 다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여성을 중심으로, 희대의 역모사건 위주로, 또는 경제학자들을 집대성한 책도 있으며 연애사건 중심으로 다룬 책도 있다. 마침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잘 보존된 역사실록이 있어, 조선의 역사를 다룬 많은 책들의 기초자료로서 존재해왔다. 그러나, <잡인열전>은 말 그대로 잡인들의 인생이 주가 되어야 하기에 왕조실록이 아닌 <파수록>, <어우야담>, <역옹패설>, <청구야담> 등 많은 책의 기록을 참조한 것으로 나온다.

<잡인열전>을 읽어보면, 자주 보고 듣던 역사와는 달리 생소한 이야기들이 있다. 사대부댁을 돌아다니며 책을 읽어주었다는 남자 이업복의 얘기가 그랬고, 붓을 잘 매던 필공 김원탁의 내용도 처음 접하는 얘기였다. 붓 만드는 필공들이 많이 살아 필동이란 지명이 생겼고 묵동 역시 먹 만드는 사람들이 산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거라는 걸 김원탁편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또한, 당시 심각한 전염병이었던 마마를 고쳐 많은 생명을 구하고 치료법을 퍼뜨린 이헌길 의원의 얘기도 새로웠으며, 이름정도밖에 모르던 천재화가 장승업의 일생은 자유를 꿈꾸는 예술인을 닮아 있었다.

평안도 감영의 창고지기 노비로 일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라의 은전을 야금야금 갖다 쓴 장복선이란 인물이 가장 처음에 소개된다. 유명한 체제공이 마침 이곳의 관찰사로 와서 관의 은이 횡령된 사실을 알고 사형에 처하려 했으나, 빼돌린 은 중에서 단 한 푼도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않았으며 자신의 재산까지 보태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 장복선을 사람들은 잊지 않고 있었다. 사형 현장에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은 장복선의 죄를 사하여 줄 것을 청하며 은가락지와 은비녀 등 몸에 지닌 패물을 내놓아 횡령된 만큼의 재물을 모으려 한다. 이런 드라마적인 삶은 역사의 돌출된 흥미요소로 존재하며 뭉클한 감동도 준다.

전문 대리시험꾼인 유광억의 삶도 볼 수 있었다. 조선의 과거시험이 변질되면서 대리시험을 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던데, 유광억이 그런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을 합격시켜 줬다는 일화는 그의 지식의 넓이가 대단하다는 것을 반증하지만, 정작 그는 감영의 출두 명령을 받고 자살로 생을 마쳐 안타까움을 준다.

조선의 대다수를 차지한 평범한 농부들의 삶에서 약간은 비켜난 열정과 끼를 지닌 스물 네명의 삶을 들여다봤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평범한 삶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들은 틀 속에 갇혀있는 것을 거부하고 훨훨 날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비록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후에 응당한 처벌로 연결되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의 열정은 불법과 훼손된 도덕성의 잣대로 판단하기를 주저하게 될 만큼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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