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과 육식 - 사육동물과 인간의 불편한 동거
리처드 W. 불리엣 지음, 임옥희 옮김 / 알마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스티로폼에 랩으로 둘러싸인 빨간 고기를 보면서도 그것이 한때는 살아있는 동물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물체란 것을 잊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램수로 계산되어 부위별로 포장된 고기와 심하다 싶게 댕강댕강 잘라져 있는 각종 뼈들을 보면서도 공장에서 찍어내는 씨리얼을 보듯이 무심한 시선을 스쳐 보낸다. 조금전에 보았던 뼈가 내 몸 속의 뼈처럼 어떤 동물의 몸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걸 기어코 망각하고야 만 것이다. 고기를 얻기 위한 사육이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분리되어 이루어지면서, 우리는 동물의 목숨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해져버린 것만 같다. 

사람도 포유류. 소와 돼지도 포유류.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 아무리 특별대접을 해준다고 쳐도,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이 동물에게는 동물권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약육강식이 자연계의 법칙이어서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먹는 것 또한 자연의 이치인 듯도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여 먹지 못할 것을 먹이며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는 생육환경 속에서 살만 통통하게 찌우는 식의 사육방식은 분명 동물에겐 고문과 같을 것이다. 

사람이 고기를 먹어온 것은 오랜 역사를 지녔다. 불을 모르던 시절엔 날고기로도 먹었다고 한다. 육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기의 획득을 위해 키워지는 것은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양상이다.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맞고 비좁아 움직일 수도 없는 공간에 서로의 상품성을 훼손시킬까봐 부리까지 자른다는 닭의 사육방식을 놓고 보면 이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느낌이다. 쇠고기야 말할 필요도 없이 광우병으로 인해 그 순한 동물들이 먹고 살았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모두들 알게 되었고, 자신들의 똥무더기 위에서 쉬고 있는 사진 한 장은 경악 그 자체였다.

이 책의 설명은 좀 어렵고, 다루는 폭이 넓다. 역사에 신화에 웬 수간까지 나오는 바람에 내가 바라던 포인트와는 빗나간 느낌이다. 그래도 마지막 문장엔 동의한다.
--동물이 신과 교감하고 반인반수가 존경받던 시대, 동물을 죽이는 것이 경외감과 죄의식이 들도록 만들었던 시대의 마법을 재발견하려면 진정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p 421)--

인간의 장기기관을 살펴봤을 때 초식동물에 가깝다고 한 연구결과가 예전에 발표되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육식을 하지만, 지금의 사육방식은 많이 달라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적 입장에서 이득을 취하기 위한 논리로만 접근하는 사고방식의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휴머니즘의 시선으로 동물을 바라보면 답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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