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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아이라 재판소동
데브라 하멜 지음, 류가미 옮김 / 북북서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기록이란 참 흥미롭다. 오래전 재판의 기록은 현 2008년의 시점에서 기원전 343~34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을 눈앞에서 벌어지듯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귀족 남성들만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 불완전하긴 했지만, 나름대로의 민주정치가 발달되었던 고대 아테네에서 벌어졌던 일이라 상당히 오래 전임에도 불구하고 번듯한 재판 제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 직업창녀로 자라나다가 몸값을 치르고 자유의 몸이 되어 한 남자에게 정착하여 살던 여인 네아이라가 있다. 그녀가 재판에 연루된 것은 함께 살던 스테파노스에게 보복을 하고자 했던 아폴로도르스 때문이다. 아폴로도르스는 그간 여러 소송 문제로 앙금이 깊게 남아있던 스테파노스를 공격하기 위해 그와 한 가정을 이루어 살던 네아이라의 출신성분이 외국인이란 것을 공격한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테파노스와 네아이라가 공식적 부부였음을 증명하려 애쓴 것이다. 네아이라는 아폴로도르스에 의해서 온갖 과거가 까발려지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말 한마디조차 할 수 없었다. 그당시 여성에게는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폴로도르스가 법정에서 발표하기 위해 작성한 연설문은 고스란히 남아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 연설문 이외의 많은 참고문헌을 이용하여 네아이라의 삶을 통한 당시 사회상을 실감나게 전하며 아폴로도르스가 작성한 연설문 내용의 진위에 대한 생각도 덧붙인다.
재판이 진행되어가는 과정을 읽으면서 언제부터인지 네아이라 측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누가 재판에서 이겼는지 몹시 궁금해졌지만, 아폴로도르스의 연설 이후에 행해졌을 스테파노스의 반박 자료는 아쉽게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재판의 결과 역시 알 수 없다. 단지 네아이라에 대한 기록이 재판 이후에도 간간히 보이는 것을 보면, 스테파노스와의 삶을 이후에도 이어간 것으로 추측된다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스테파노스의 승리를 점쳐볼 수 있다.
고대 아테네의 결혼 풍습과 여성의 지위, 관련 법률, 잦은 소송이 이루어지던 사회의 모습 등 한 건의 재판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은 많았다. 관련 자료를 모아 집필한 저자의 노력으로 코앞에 펼쳐지듯이 지켜본 재판과정은 한 여성의 인생유전과 사회상을 여과없이 전해주는데, 의외로 기원전의 시대와 현 시점의 생활상은 시간상의 거리에 비해 닮은 점이 많아보인다. 인간의 본성은 오랜 세월을 거쳤어도 그대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