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계단 by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에서)

 

모든 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그때그때 피었다 지는 꽃처럼

영원하진 않으리.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문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만 한다.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느 장소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 한다.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면 임종의 순간에도 여전히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하리라.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없다. 그 시간을 잡으려는 욕심과 되돌릴 수 있는 과욕이 고뇌와

고통을 부른다. 강물이 흘러 가는 것을 보듯 시간이 흘러감을 볼 수 있다면 인생은 더욱

편안하고 즐거우며 앞으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인숙 by 잘랄루딘 루미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 인간은 여인숙이며 안내자이다. 칠정을 받아들이며 순응할 줄 아는 장소로서의 여인숙.

오욕을 다스려 나를 정리하도록 해 주는 안내자. 누구나 받아들이는 여인숙이 되고 싶으나

혼자만을 겨우 담을 수 있는  밥 그릇이 되었으며,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안내자가 되고 싶으나

스스로가 방황하고 헤매는 방랑자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감.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도구이다. 생존의 문제뿐 만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너무나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오감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걸까?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을 제외하고 겉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만을 오감이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외부조건에만 기계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조금의 훈련을 통해 좀 더 풍부하게 주위의 사물 뿐 만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방법은 예술(미술)일 수도 있지 않을까?‘ 미술이라는 것이 오감을 통해 느낀 평범한 모습들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석해 묘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힘으로써 우리의 오감을 더욱 발달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며 놓치고 있다. 첫 번째, 학창시절에 미술이라는 과목은 거의 모든 선생, 학생들의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혹 수업을 하더라도 미술에 대한 이해-전체적인 역사를 통해 그 흐름을 파악하기, 그림을 감상 또는 즐길 수 있는 방법-보다는 맥락 없는 화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 흐름이 없는 기법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림 그리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오감을 사용할 기회를 제대로 제공해 주지 못했다.

 

두 번째는 학창시절 이후 나와 같은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림과 접할 기회를 가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예술이라는 것은 금전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에 위치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여가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매체에서 나오는 미술관 장면을 보면 다들 멋진 옷에, 비싼 악세 사리를 하고 등장하는 모습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더욱 예술은 나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술을 접다한다는 것이 또 다른 공부라는 생각, 사는 것과 별개라는 생각 등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여있어 예술이라는 것은 딴 세상 것인 것으로 인식한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시간적 투자, 물질적 투자를 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오감의 자극을 통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좋은 안내서이다. 가독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가 즐기는 미술 방법이 제시되어 있어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을 비교해 보고 배워나갈 수 있다.

 

인생을 즐기자. 오감의 발달을 통해 마음의 풍요, 생각의 풍요, 정서의 풍요를 즐기자. 그러다보면 물질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뜻으로 본 한국역사 - 함석헌저작집 30 함석헌 저작집 30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사람의 생애를 크게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등으로 나뉜다. 이렇게 단계를 지어 구분하는 이유는 각 단계별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곧 성장이라는 것을 하기 때문에 용어를 만들어 구별 짓고 거기에 맞는 사회적, 개인적 권리, 의무와 책임을 부여한다.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읽는 한국사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역사라는 것도 성장이라는 것을 할까? 한국의 역사에서 고구려 때에 가장 최고점을 찍었으며 그 이후로는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몇 번의 재성장의 기회를 있었지만 번번이 놓쳤다. 고구려는 크지 않은 나라임에도 대국인 당시의 수나라 당나라에게서 당당히 맞서서 자력으로 이겨낸 전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성기 때에는 많은 영토를 확보했다. 그러나 고구려가 아닌 신라가 당나라의 도움을 통해 통일을 이루다 보니 중국에게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후삼국기를 지나 고려시대에는 유교의 도입이 시작되고 점차 자리를 잡아간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유교는 그 영향력이 절정에 다다르고 중국의 황제를 섬기며 사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스스로에게 물질적 정신적 족쇄를 채운다. 조선 말기에는 세도정치 그리고 일본의 침략과 해방 그 이후의 이념전쟁으로 인한 6.25, 군사정권 수립된다.

 

단순 사실만을 배열해 보면 분명 고구려 이후로 한국역사는 퇴보한 듯하다. 그 때에 비해 영토도 작을 뿐 만 아니라 반도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자력으로 무언가를 하기에 많은 눈치가 보인다. 그럼에도 분명 한국역사는 성장했다. 신라시대 때에는 당시의 문화적인 요인들을 일본으로 수출해 그 나라의 문명에 영향을 끼쳤으며 조선시대에는 한글이라는 독창적인 문자를 만들어 냈다. 동학운동이 있었으며 독립 운동가들이 있었다. 육체적 물리적 한계를 우리 조상들은 문화, 사상, 그리고 정신적인 면들의 성장으로 극복해 나갔다. 역사의 후퇴처럼 보이지만 더뎌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 이어짐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촛불혁명, 문재인 정권의 등장 그리고 6.13선거의 결과 등은 한국역사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을 의미한다. 또 다시 역사의 퇴보가 있겠지만 그래도 분명 역사는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한걸음 한걸음마다 성장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순수하고 깨끗한 눈빛으로 세상을 마냥 긍정적으로 밝게만 바라보던 나의 모습은 어느 덧 사라지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누군가에게서 득을 보기 위해 나를 꾸미고 거짓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해 가면서 무엇이든 빨아들일 수 있는 블랙홀 같은 아이의 마음은 가식과 아첨과 타락으로 가득 채워진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다 똑같아진다는 변명으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어린 시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의 모습에 적응하며 만족하려고 노력하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의 어린 모습을 회상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린 시절 그토록 혐오하고 싫어하던 어른의 모습을 지금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다닐 수 있는 것일까?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주인공 콜필드에게 어른들의 불합리성과 자신들만 옳다고 여기는 이기주의, 남의 앞에서 말할 때와 뒤에서 말할 때가 틀리는 이중적인 모습, 착한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못되고 나쁜 행동을 일삼는 존재로 가득한 어른의 세상은 가까이 하기 싫은 곳이다. 자신이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되어가거나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콜필드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대학을 가고 난 후에는 말이야..... 난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택시나 매디슨 가의 버스를 타고 출근하겠지...... 극장에 가서 시시하기 짝이 없는 단편영화나, 예고편, 영화 뉴스 같은 걸 보게 될거야. p.179" 그는 그 곳의 가식적인 삶에서 벗어나 그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한다. 그것이 그가 여러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퇴학당한 이유이고,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 바로 그의 여동생 피비이다. 그녀는 아직 너무나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그녀에게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재미있는 곳이다. 피비와 함께 이야기하고 노는 것은 청량음료처럼 더운 날의 갈증과 짜증을 말끔히 해소시켜준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그녀의 모습이 변해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에게 죽기보다 싫은 것이다. 결국 그는 여동생 피비를 지키고 싶고 보호해 주고 싶어 떠나지 못한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며,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P.229-230" 가식이 존재하지 않는 호밀밭에 사는 아이들을 가식만이 존재하는 절벽인 어른들의 세상으로부터 지켜내는 것 그것만이 주인공 콜필드가 하고 싶은 일이다.


 호밀밭에서 절벽으로 이미 떨어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절벽에서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소설은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계속 이런 삶을 이어가는 경우 또는 주인공 콜필드처럼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이 두 가지만 우리가 가진 선택지의 전부가 아니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